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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표창원, “화성연쇄살인사건 범인 이춘재에 대해 경찰이 신중한 이유는…”

  • 진병훈 기자
  • 승인 2019.09.20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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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병훈 기자] 경기도 화성 일대에서 여성 10여 명을 살해한 것으로 알려진 이른바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용의자가 30여 년 만에 특정됐다. 이 유력한 용의자는 또 다른 강간 살인 사건을 저질러 현재 부산교도소에 복역 중인 50대 무기수였다. 경기남부지방경찰청은 지난 7월 증거물 일부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보내 DNA 분석을 의뢰했다.

국과수는 9차 사건 피해자와 또 다른 사건 피해자의 옷가지 등에서 채취한 DNA가 범죄 데이터베이스에 보관된 이춘재의 DNA와 일치한다는 결과를 통보했다. 경찰은 9차 사건 외에 나머지 사건들의 증거물도 국과수에 감정을 의뢰하고 당시 수사기록과 사건 관련자들도 재수사하기로 했다. 이춘재를 진범으로 확정하는데는 약 한 달이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 10차례의 사건 중 8차 사건은 모방 범죄로 드러나 진범은 검거된 바 있다.

이춘재는 지난 94년, 충북 청주에서 당시 20살이었던 처제를 성폭행한 뒤 잔인하게 살해한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아 24년째 복역 중이었다. 화성에서 마지막 살인사건이 벌어진 1991년 이후 3년째 되는 시점이다. 당시 경찰 조서에 따르면 이춘재는 충북 청주시에 거주하면서 포크레인 기사로 일하다 실직해 무직 상태였다. 아내는 가출한 뒤였고 처제를 집으로 불러 이 같은 범행을 저질렀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처제의 시신을 집에서 약 900미터 떨어진 철물점 마당에 버렸는데 화성연쇄살인사건과 상당히 유사하다. 사건을 당시 수사한 경찰관이 묘사한 이춘재의 인상착의는 화성연쇄살인사건의 몽타주와 비슷했다. 170센티미터 정도에 갸름한 얼굴과 보통 체격을 가졌다. 이춘재는 1심과 2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대법원이 파기 환송하면서 최종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9차 사건 때 화성경찰서에서 근무한 바 있다. 표창원 의원은 9월 20일 tbs FM ’김어준의 뉴스공장’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인생을, 더 나아가 경찰의 역사 자체를 바꾼 사건”으로 기억했다. 표창원 의원은 과거 모 방송에서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용의자는 “장기간 복역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밝힌 바 있다. 결과적으로 그의 분석은 옳았는데 모두 프로파일러의 분석 방향이었다.

표창원 의원은 “(자신의 분석이 잘못될) 위험성은 있었다. 미국의 대표적인 연쇄살인범은 20년에서 30년 동안 회사원이나 목사로 멀쩡히 있었다. 사망하지 않고 수십 년 동안 안 잡혔을 가능성도 있다. 연쇄살인범은 유형마다 다른데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용의자는 충동성이 강했다. 스스로 멈출 수 없는 유형이었다. 1991년 이후 유사한 사건들이 발생하지 않은 것으로 봐서 교통사고나 지병으로 사망하지 않는 한 사망했거나 장기 복역으로 봤다”고 설명했다.

9차 사건 당시 화성경찰서에서 근무했던 표창원 의원은 1986년부터 경찰대학생으로 셜록 홈스를 꿈꿔왔다. 화성연쇄살인사건 소식이 계속 들려오자 꼭 해결해야 할 숙명적인 숙제로 여겼다. 화성경찰서의 기동 6중대 소대장으로 배정된 표창원 의원은 화성연쇄살인사건 예방, 검문·검색 강화, 여성 안심 귀가 등을 맡았고, 가장 끔찍한 것으로 알려진 9차 사건이 발생하게 된다. 피해자는 당시 14세 여중생으로 가장 잔인한 케이스였다. 수법도 포악했기 때문에 영화 <살인의 추억>에서도 소재로 쓰였다.

유튜브 tbs TV ‘김어준의 뉴스공장’ 방송 캡처
유튜브 tbs TV ‘김어준의 뉴스공장’ 방송 캡처

표창원 의원은 “현장 수색 당시 큰 충격을 받았다”며 담당 경찰관들의 트라우마에 대해서 언급했다. 모방 범죄로 알려진 8차 사건의 진범은 붙잡혔으나 당시 검거하고, 특진까지 한 경찰관이 몇 년 뒤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다. 표창원 의원은 “해결은 했지만 그 트라우마가 엄청나게 컸다. 술도 많이 드시고, 악몽도 꾸면서 죄책감에 시달린 것으로 보인다. 이성적으로 이해하기 힘들지만 감성적으로 느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DNA 기술은 이미 개발됐는데도 왜 지금에서야 유력한 용의자를 특정할 수 있었을까? 표창원 의원은 “당시 사건 현장은 야산이라서 지문에만 의존했다. 범인이 버리고 간 우유 팩 등이 있었으나 환경이 열악해 지문 검출이 어려웠다. 당시 영국 레스터 대학교에서 DNA 염기서열 자동 분석법으로 신원을 확인하는 개발이 이루어졌다. 1986년에 실제 수사에 도입됐지만 워낙 초기였고 신비한 토픽 정도였다”고 설명했다.

이어 “국과수 연구원분이 이메일을 보내 그 방법을 도입하고 싶다고 했다. 9차 사건이 났을 때는 일본에서 이미 도입하고 있었다. 수사진이 일본에 현장에서 채취한 시료를 보냈지만 일본도 그 기술이 초보적이었다. 시료 자체가 오염됐었고, 양이 적다고 해서 DNA 검출에 실패한 것”이라며 최근의 기술에서야 밝혀냈다는 점을 강조했다. 경찰은 당시 시료를 지금까지 보관하면서 이 미제 사건을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었다.

표창원 의원은 10여 년 전 DNA 데이터베이스 입법화에도 힘썼다. 당시 논쟁은 있었지만 결국 도입됐고 전국적으로 시행된 지는 몇 년 되지 않았다고 한다. 표창원 의원은 이 유력한 용의자에게 여죄가 남아 있을 것으로 거의 확신하고 있었다. 당시 4차 사건 발생까지 연쇄살인사건으로 인정하지 않았고 알리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창 사건이 발생하고 있을 때 오산과 수원에서도 유사한 사건이 있었다.

표창원 의원은 해당 사건들이 화성에서 발생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무리하게 연쇄살인사건에서 밀어낸 것으로 기억했다. 1986년에는 서울에서 김선자의 여성 연쇄살인사건이 일어났는데 아시안게임 축제 모드에 재를 뿌린다는 이유로 보도 자체를 못 하게 했다고 한다. 당시 사회 분위기 때문에 사건의 아주 일부만 나타났을 가능성을 언급한 것이다. 

현재 유력한 용의자인 이춘재는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있다. 표창원 의원은 “협상력이 있어야 범인의 실토를 끌어낼 수 있다. 사형이 아닌 무기징역으로 감형할 조건을 (경찰이) 쥐고 있을 수 있는데 기밀상 공개할 수 없다”며 현재 경찰에서 조심스럽게 언급하고 있는 이유를 설명했다. 공소시효도 완료된 마당이니 자칫 잘못하면 경찰이 협상력을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표창원 의원은 “여죄도 밝혀야 하는 상황이라서 갈 길이 멀다”고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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