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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길이 다시 산다’ 인요한, 아버지 죽음과 얽힌 앰뷸런스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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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톱스타뉴스 임라라 기자) ‘길길이 다시 산다’ 인요한 교수가 한국 최초 앰뷸런스를 탄생시킨 비화에 대해 이야기했다.

지난 23일 방송된 채널A ‘길길이 다시 산다’에서 최명길, 김한길 부부가 순천 여행을 가 인요한 교수와 만났다.

이날 이들은 순천 선암사를 방문했다. 추워진 날씨에 세 사람은 따뜻한 온돌방에 들어가 이불을 덮고 군고구마를 먹으며 여러 이야기를 나눴다.

인요한 교수는 “온돌방에 들어오면 전라도에서 어린 시절 중 가장 감사한 생각이 든다”라며 “군불 때고 들어와서 지식을 많이 배웠다. 여수 순천 사건은 뭐고, 6.25는 뭐고, 일제강점기는 뭐인지”라고 입을 열었다.

그는 “아버지가 (온돌방에 대해) 이게 얼마나 효율적인지 아냐, 밥상도 되고 침실도 되고 거실도 된다고 하셨다”고 아버지를 언급했다.

채널A '길길이 다시 산다' 방송 캡처
채널A '길길이 다시 산다' 방송 캡처

인요한 교수는 “아버지가 굉장히 엄하셨다. 말씀이 없으셨다. 우리가 싸우면 ‘조용히’ 세 번 하시고 어두운 곳에 가서 (혼났다). 하지만 한 번도 아버지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 않았다”라며 “제가 광주항쟁 일어난 지 일주일 되는 날 광주를 간다고 하니 ‘너 가면 죽을 수 있어. 그런데 네가 판단해라’고 하셨다. 그렇게 광주를 갔다”고 아버지의 가르침을 전했다.

그렇게 광주를 간 젊은 시절 인요한은 5.18 광주 항쟁 당시 광주에서 외신기자들을 도와 통역 일을 했다. 

이어 김한길이 “아버지 돌아가실 때 그 이야기를 많이 알긴 하던데”라고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인요한 교수는 “저희 아버지가 교통사고를 났다. 이웃사촌들이 택시를 타고, 앰뷸런스가 없어서 병원을 가셨다”라며 결국 택시 뒤에서 아버지를 떠나보내야 했던 사연을 들려줬다.

이후 인요한은 아버지 지인들의 도움을 받아 한국형 앰뷸런스를 만들었다. 그는 “집 뒷마당에서 시작한 일이 1993년 2월에 교육하고 (소방서에) 기증했다. 그게 119가 발전하게 했다”고 말했다. 

1959년생으로 올해 나이 61세인 인요한은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세브란스병원 소장이자 연세대학교 교수다. 그는 한국에 첫 앰뷸런스를 만들었던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 2012년 특별귀화로 한국과 미국의 복수국적자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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