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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군 이복동생’ 영창대군, 조선 선조 13번째 왕자…’만 8세 나이에 죽임당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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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톱스타뉴스 김효진 기자) 광해군의 이복동생으로 알려진 영창대군의 이력에 관심이 모이고 있다.

영창대군의 이름은 ‘의’이고, 인목왕후의 소생이다. 선조의 14명 왕자 중 13번째 왕자이며, 유일한 정궁의 자식이어서 선조는 이미 세자로 책봉한 광해군 대신 영창대군을 왕세자로 책봉할 것을 영의정 유영경 등과 비밀리에 의논했다.

그러나 선조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자 광해군이 왕위에 오르고 이이첨 등을 등용했다. 대북파의 농간으로 형 임해군을 죽이고 인목대비를 서궁에 유폐한 광해군은 인목대비의 아버지 김제남도 죽인다. 

이어 영창대군마저 역모 연루죄로 서인으로 강등시켜 강화에 위리안치했다. 1614년 만 8세의 어린 나이에 강화부사 정항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JTBC ‘차이나는 클라스’ 방송 캡처
JTBC ‘차이나는 클라스’ 방송 캡처

영창대군은 선조의 아들 중 유일한 정비 소생으로 왕의 특별한 총애를 받았다. 선조는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권정례로 공빈 김씨의 소생 광해군을 세자로 책봉했다. 그러나 그 뒤 정비의 소생인 영창대군이 태어나자 선조는 세자를 바꾸려는 생각을 가지게 됐다.

당시 실권을 잡고 있던 유영경을 위시한 소북파가 이 뜻에 영합했으나, 선조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실현되지 못했다. 왕은 죽으면서 대신들에게 영창대군을 돌봐달라는 유교를 내려 뒷일을 부탁했다. 이 사실로 광해군을 지지하던 이이첨 등 대북파의 미움을 받게 됐다.

그러던 중 1613년(광해군 5) 소양강을 무대로 시주(詩酒)를 즐기던 서양갑, 박응서 등 7명의 서출들이 역모를 꾸몄다는 이른바 ‘7서의 옥’이 일어났다.

이이첨 등은 이 역모 사건에 그들이 영창대군을 옹립하고 영창대군의 외조부 김제남도 관계한 것으로 진술을 유도했다. 이 결과로 영창대군은 서인으로 강등돼 강화도에 위리안치됐다.

그 뒤 조야에서는 끊임없이 구원의 상소 등이 이어졌고, 형제의 의를 따지는 전은설과 여덟 살밖에 안된 유자라는 이유로 영창대군을 비호했다. 그러나 대북파의 계속된 요구로 이듬해 봄에 이이첨 등의 명을 받은 강화부사 정항에 의해 살해됐다.

‘광해군일기’에 의하면 정항이 영창대군을 굶겨서 죽게 하였다거나 정항이 온돌을 뜨겁게 달구어 영창대군을 증살했다고 되어있다. 그러나 ‘인조실록’에 의하면 광해군의 밀명을 받은 별장 이정표 가 음식물에 잿물을 넣어 영창대군을 죽게 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어 양자 사이에 논란이 있다. 1623년 인조반정 후 관작이 복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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