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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화성연쇄살인사건 정리… 배상훈, “추가 범행 자백은 프로파일러 고도의 심리전 덕분”

  • 진병훈 기자
  • 승인 2019.10.03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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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병훈 기자] 경기도 화성 일대에서 여성 10여 명을 살해한 것으로 알려진 이른바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유력한 용의자 이춘재(나이 56세)가 살인 사건 14건과 30여 건의 강간과 강간 미수를 자백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이춘재의 자백이 자세하고 구체적이었던 점을 들어 진술의 신빙성을 확신하고 있다. 다만 자백의 내용이 초기 단계이고, 기억이 단편적이거나 사건에 따라 범행 일시, 장소, 행위 표현 등이 편차가 있어 계속 확인할 필요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춘재의 자백을 끌어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프로파일러 고도의 심리전 덕분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모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9번의 면담 중에 충분히 신뢰 관계가 형성이 돼서 자백이 이뤄졌다고 보인다. 어느 날 갑자기 심경의 변화가 생겨서 기적적으로 한번에 한 게 아니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범죄 심리 분야의 전문가인 프로파일러들이 시간을 두고 꾸준히 노력한 결과라는 것. 전문가들은 이를 라포르(Rapport)로 불리는 상호 신뢰 형성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배상훈 프로파일러는 10월 3일 tbs FM ’김어준의 뉴스공장’과의 인터뷰에서 이춘재가 권위에 치중하는 떠버리 사이코패스로 분석하고 말을 못 하게 함으로써 지속적으로 심리를 기울게 한 것으로 진단했다.

권위에 치중하는 사이코패스는 경찰이 제복을 입고 면담을 하거나, 성적 살인범은 여성 프로파일러가 치마를 입고 향수를 뿌리는 등 고강도의 심리전이 펼쳐진다고 한다. 공식적으로 49명이 넘는 매춘부를 살해한 미국의 역대 최대 연쇄 살인마 게리 리지웨이에 대해 FBI가 적용했던 방식으로 이번 이춘재도 같은 방식을 적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춘재를 한 사람의 자연인으로 만들어 놓고 인간적으로 관계를 맺게 한 뒤에 범행을 자백하게 만든다는 것인데, 이는 범행 상황과 유사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 배상훈 프로파일러의 설명에 따르면 프로파일러는 3인 1조가 원칙으로 인터뷰는 2명이 들어가고, 1명은 밖에서 범인의 얼굴이 아니라 팔과 다리 등 미세한 신체 언어를 관찰하고 동료에게 신호를 보낸다. 이른바 비언어적 행동을 관찰하는 것이다.

나머지 한 명은 120도를 원칙으로 범인을 지켜보는데 긴장도를 떨어뜨리는 역할을 한다. 일종의 보조 면담자로 범인이 폭주하지 않도록 방지하는 역할이다. 범인의 각성 포인트, 어떤 순간에 살인범으로 돌변하는지, 어떤 말과 행동에 반응하는지도 밝혀낸다. 하지만 범인이 우쭐해지는 바람에 진술 과정에서 과장이 있을 수도 있고 프로파일러를 골탕 먹일 수도 있다고 한다.

배상훈 프로파일러는 이춘재가 추가로 자백한 범행은 프로파일러의 연기력, 즉 오버액션으로 얻어낸 것으로 분석했다. 이춘재의 심리를 우위 상태에 만들어서 자랑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든다는 것이다. 프로파일러는 범인의 진술 과정에서 놀라는 연기도 해야 한다는 것인데, 배상훈 프로파일러는 “범인이 실제로 그렇게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 방송 캡처
SBS ‘그것이 알고 싶다’ 방송 캡처

화성연쇄살인사건 정리는 다음과 같다.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을 열흘 앞두고 경기도 화성시에서 사건이 시작됐다. 잠자리를 잡으러 목초밭에 들어간 아이들이 이 씨 할머니의 시신을 발견한다. 1986년 9월 15일 1차 사건이었다. 사인은 목 졸림으로 인한 질식사였다. 범인과 몸싸움을 한 흔적이 역력했고, 현장은 어수선했다.

그런데 시신의 자세가 이상했다. 하의는 벗겨진 채로 두 다리가 마치 알파벳 X 모양으로 되어 있었다. 범인이 일부러 만든 자세로 보이는데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이후 1986년 10월 20일 2차 사건이 발생한다. 피해자는 25살의 박 양으로 밤 10시경 선을 보고 집으로 돌아가던 중 실종됐고 3일 만에 농수로 안에서 발견됐다. 사인은 역시 목 졸림으로 인한 질식사였다.

몸 이곳저곳에 흉기에 찔린 흔적이 있어 협박당한 채 끌려간 것으로 보인다. 1차 사건과 달리 옷은 모두 벗겨졌고 성폭행 흔적이 있었다. 1차와 2차는 당시 이춘재가 살았던 집과 직장 사이에서 발생했다. 1986년 12월 12일 3차 사건은 이춘재가 다니던 직장과의 500미터 거리에서 발생했다. 피해자는 130일 전 실종된 가정주부였다. 빨간 옷을 입었던 그녀는 거들을 입에 물고 있었고 속옷을 뒤집어씌운 채 발견됐다.

그런데 1986년 12월 14일 4차 사건 현장은 이춘재의 직장과 거리가 있었다. 피해자는 빨간 옷을 입고 있었고 얼굴에 거들이 씌워진 채 숨져 있었다. 블라우스로 두 손이 결박되어 있었고, 신고 있던 스타킹은 모두 매듭지어서 발견됐다. 이춘재의 출퇴근 거리에서 거리가 있는 살인 사건으로 아직까지 연결 고리가 발견되지 않고 있다. 1차부터 4차까지 공통점은 돈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범인이 매듭지어 놓은 스타킹을 두고 범인의 서명 행위, 즉 시그니처라고 분석한다. 시그니처 뜻은 범인이 특정한 행동을 함으로써 남겨지는 흔적 혹은 남겨지지 않는 흔적을 말한다. 피해자의 특정 물건을 수집하는 등의 행동이다. 4차 사건 현장 인근 지역에서 미수 사건이 발생했는데 시기는 2차와 3차 사건 사이였다. 그녀 역시 스타킹으로 결박을 당했는데 범인의 손이 매우 부드러웠다고 전했다. 

1987년 1월 10일 5차 사건의 피해자는 19살 홍 양이었다. 두 팔은 뒤로 묶여 있었고 성폭행 흔적이 발견됐다. 이 사건 현장에는 이춘재의 DNA가 발견됐다. 그의 DNA가 확인되지 않았지만 2차와 4차 사건에서도 5차와 마찬가지로 음부 폭행이 있었다. 전문가가 설명하는 시그니처는 5차 이전의 사건과 닮아 있다.

1차부터 5차 사건은 모두 1번 국도를 경계로 왼편에서 발생했다. 그러나 5차 사건이 발생한 지 넉 달이 지나고 오른편에서 6차 사건이 발생한다. 1988년 9월 7일 7차 사건은 1번 국도를 경계로 왼편으로 크게 이동한다. 전문가는 범인이 도로와 같은 심리적 장벽을 두고 움직였다고 분석했다. 7차 사건의 피해자는 남편이 좋아하는 복숭아를 챙기고 귀가하고 있었다. 범인은 복숭아 조각을 피해자의 음부에 넣어 두었는데 이춘재의 DNA가 발견됐다.

1990년 11월 15일 9차 사건의 피해자는 스튜어디스가 꿈이었던 13살 김 양이었다. 이 사건은 당시 가장 끔찍했던 것으로 영화 <살인의 추억>의 소재로도 쓰였다. 잔인한 음부 폭행은 피해자가 살아 있을 때 벌어졌고, 가슴을 스무 번이나 난도질했다. 사인은 목 졸림으로 인한 질식사였고, 스타킹으로 결박했다. 전문가가 주목한 시그니처가 가장 많이 발견됐다. 이 사건 현장에서 이춘재의 DNA가 발견됐다. 8차 사건은 당시 22세의 모방범이었으며 처벌을 받았으나 10차는 아직 범인이 잡히지 않았다.

이춘재는 수사 대상에 올랐다가 용의자선상에서 제외된 바 있다. 1987년 5월 2일 6차 사건의 피해자는 입고 있던 옷으로 결박이 되어 있었다. 경찰은 당시 이춘재를 유력한 용의자로 봤으나 현장에서 발견된 혈액형이 문제였다. 6차 사건 현장은 이춘재가 거주하는 집 근방에서 발생했다. 이춘재는 지난 1994년, 충북 청주에서 당시 20살이었던 처제를 성폭행한 뒤 잔인하게 살해한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아 24년째 복역 중이었다.

화성에서 마지막 살인사건이 벌어진 1991년 이후 3년째 되는 시점이다. 당시 경찰 조서에 따르면 이춘재는 충북 청주시에 거주하면서 포크레인 기사로 일하다 실직해 무직 상태였다. 아내는 가출한 뒤였고 처제를 집으로 불러 이 같은 범행을 저질렀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처제의 시신을 집에서 약 900미터 떨어진 철물점 마당에 버렸는데 화성연쇄살인사건과 상당히 유사하다. 사건을 당시 수사한 경찰관이 묘사한 이춘재의 인상착의는 화성연쇄살인사건의 몽타주와 비슷했다. 이춘재는 1심과 2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대법원이 파기 환송하면서 최종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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