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톱스타뉴스 유혜지 기자) '꼬꼬무'에서 이리역 폭발사건에 대해 다룬다.
21일 방송되는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에서는 '1977 사라진 도시와 맨발의 남자' 편이 공개된다.
이는 1977년 11월 11일 금요일 밤 전라북도 이리(현 익산)에서 벌어진 사고에 대한 이야기다.
사고 발생 이틀 전인 그해 11월 9일, 다이너마이트 914 상자와 전기 뇌관을 비롯해 40톤 이상의 폭발물이 담긴 한국화약주식회사의 화약열차가 인천에서 출발했다.
최종 목적지는 광주였는데, 출발한지 하루가 지나 이리역에 도착한 열차는 4번 입환대기선에 40시간 가량 대기하게 됐다.
화약열차는 역내 대기하지 않고 직통 운행하는 게 원칙이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원칙을 훼손하고 '급행료'라는 명목의 뇌물을 낸 열차를 우선 통과시켜줬다. 돈을 내지 못한 화약열차는 긴 대기 시간을 감당해야 했다.
당시 한국화약주식회사 호송 직원 신무일씨는 이리역에 항의를 하고 나섰지만 묵살당했다고 전해진다. 신씨는 항의를 포기하고 이리역 앞 주점에서 음주한 뒤 열차 안 침낭에서 잠을 청했다. 잠이 꼬박 든 밤 9시15분, 화약 상자 위에 켜져 있던 촛불이 화근이었다.
불이 화약 상자에 옮겨붙었다. 열차 폭발 직전 신씨는 불붙은 상자를 보고 침낭을 이용해 불을 끄려고 해봤다. 불은 되레 더 크게 번졌다. 신씨는 현장을 방치하고 그대로 도망쳤다. 대부분의 철도 요원과 검수원들도 폭발을 막지 못하고 자리를 떠났다.
결국 열차 안에 있던 다이너마이트를 비롯한 폭발물이 연쇄적으로 터지면서 대폭발이 발생했다. 이리역에는 직경 30m, 깊이 15m에 이르는 큰 웅덩이가 생겼다. 반경 500m 이내 건물은 대부분 무너졌고, 4㎞ 안쪽 건물은 유리창이 깨졌다. 군산시까지 폭발음이 들렸다는 증언도 있다.
이 사고로 사망자 59명, 부상자 1343명, 이재민 9973명이 발생했다. 사고 원인을 제공한 신씨는 얼마 후 검거됐다. 그는 1978년 2월 법원에서 폭발물파열죄(부작위에 의한 폭발물사용죄)로 징역 10년을 선고받았다.
현재까지도 사망자 전원의 정확한 신원과 직접적인 사망 원인이 모두 알려지지 못했다. 신원이 확인됐으나 성명이 미상인 사망자는 3명이다. 연고자가 나타나지 않아 무연고 사망자로 분류된 사망자는 28명이다. 이리역 폭발 사고는 원칙을 무시해 대규모 참사로 번진 인재로 꼽힌다.
이 사고로 가수 하춘화와 개그맨 이주일이 부상을 당하기도 했다. 당시 하춘화는 이리역 인근 극장에서 공연을 준비 중이었으며, 전속 사회자가 이주일이었다.
하춘화는 최근 한 방송을 통해 "보통 오후 9시쯤 공연을 시작하는데, 폭발 사고가 9시15분쯤에 났다"며 "평소처럼 오프닝 공연을 마치고 약간 쌀쌀해서 난로를 쬐고 있는데 사고가 벌어졌다. 난로가 엎어졌으면 다 어떻게 됐을 것이다. 전기가 끊기면서 깜깜해졌다. 폭파되면서 흙 속에 나를 집어넣는 것 같았다"고 회상했다.
하춘화는 이주일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하춘화는 당시 이주일이 폭파 사고로 극장 지붕이 내려앉으면서 머리가 함몰된 상태였다고 전했다.
21일 방송되는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에서는 '1977 사라진 도시와 맨발의 남자' 편이 공개된다.
사고 발생 이틀 전인 그해 11월 9일, 다이너마이트 914 상자와 전기 뇌관을 비롯해 40톤 이상의 폭발물이 담긴 한국화약주식회사의 화약열차가 인천에서 출발했다.
최종 목적지는 광주였는데, 출발한지 하루가 지나 이리역에 도착한 열차는 4번 입환대기선에 40시간 가량 대기하게 됐다.
화약열차는 역내 대기하지 않고 직통 운행하는 게 원칙이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원칙을 훼손하고 '급행료'라는 명목의 뇌물을 낸 열차를 우선 통과시켜줬다. 돈을 내지 못한 화약열차는 긴 대기 시간을 감당해야 했다.
당시 한국화약주식회사 호송 직원 신무일씨는 이리역에 항의를 하고 나섰지만 묵살당했다고 전해진다. 신씨는 항의를 포기하고 이리역 앞 주점에서 음주한 뒤 열차 안 침낭에서 잠을 청했다. 잠이 꼬박 든 밤 9시15분, 화약 상자 위에 켜져 있던 촛불이 화근이었다.
불이 화약 상자에 옮겨붙었다. 열차 폭발 직전 신씨는 불붙은 상자를 보고 침낭을 이용해 불을 끄려고 해봤다. 불은 되레 더 크게 번졌다. 신씨는 현장을 방치하고 그대로 도망쳤다. 대부분의 철도 요원과 검수원들도 폭발을 막지 못하고 자리를 떠났다.
결국 열차 안에 있던 다이너마이트를 비롯한 폭발물이 연쇄적으로 터지면서 대폭발이 발생했다. 이리역에는 직경 30m, 깊이 15m에 이르는 큰 웅덩이가 생겼다. 반경 500m 이내 건물은 대부분 무너졌고, 4㎞ 안쪽 건물은 유리창이 깨졌다. 군산시까지 폭발음이 들렸다는 증언도 있다.
현재까지도 사망자 전원의 정확한 신원과 직접적인 사망 원인이 모두 알려지지 못했다. 신원이 확인됐으나 성명이 미상인 사망자는 3명이다. 연고자가 나타나지 않아 무연고 사망자로 분류된 사망자는 28명이다. 이리역 폭발 사고는 원칙을 무시해 대규모 참사로 번진 인재로 꼽힌다.
이 사고로 가수 하춘화와 개그맨 이주일이 부상을 당하기도 했다. 당시 하춘화는 이리역 인근 극장에서 공연을 준비 중이었으며, 전속 사회자가 이주일이었다.
하춘화는 최근 한 방송을 통해 "보통 오후 9시쯤 공연을 시작하는데, 폭발 사고가 9시15분쯤에 났다"며 "평소처럼 오프닝 공연을 마치고 약간 쌀쌀해서 난로를 쬐고 있는데 사고가 벌어졌다. 난로가 엎어졌으면 다 어떻게 됐을 것이다. 전기가 끊기면서 깜깜해졌다. 폭파되면서 흙 속에 나를 집어넣는 것 같았다"고 회상했다.
<저작권자 © 톱스타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2024/03/21 11:04 송고  |  reporter@topstarnews.co.kr
기자의 보도 내용에 비판은 수용하며, 반론권을 보장합니다. 그러나 폭력적인 욕설이나 협박에 대해서는 합의 없는 형사 처벌을 추진하므로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톱스타뉴스의 모든 콘텐츠(영상, 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재, 복사, 배포, 유튜브 영상 제작을 금합니다. 발견 즉시 민형사상 제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