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톱스타뉴스 장영권 기자) 원세훈(67·복역 중) 전 국가정보원장이 김백준(78·구속기소)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 재판에서 "기억 안 난다"를 연발하다 재판장에게 강한 질책을 들었다.
원 전 원장은 18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3부(부장판사 이영훈) 심리로 열린 김 전 기획관의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뇌물) 방조 등 혐의 증인석에 앉았다.
검찰은 이날 국정원 예산관 최모씨가 원 전 원장 지시로 김 전 기획관에게 2억원을 줬다고 진술한 것을 제시했다.
이에 대해 원 전 원장은 "전혀 기억이 없었는데 검찰 조사 받을 때 그런 게 있었다고 했다"며 "최씨 말에 대해서는 기억도 안 나지만 조사 당시 검찰이 기념품 얘길 하길래 시계가 기억이 났다"고 대답했다.
이어 "당시 청와대가 기념품 시계를 마련할 예산이 없어서 도와줬으면 좋겠다는 부하 직원 보고가 있었던 것 같다고 진술했다"고 밝혔다.
원 전 원장은 이 부장판사가 "특활비 지원을 요청한 게 누군지 기억이 안 나느냐"고 묻자 "기억이 안 난다"고 말했다. 이어 "2억원은 어떻게 정해졌느냐"는 질문에도 같은 대답을 반복했다.
이 부장판사는 "청와대에서 비공식적으로 국정원 자금을 쓰겠다고 해서 지원한 2억원과 김진모 전 청와대 민정2비서관에게 준 5000만원은 절차를 거치지 않았으니까 잘못된 것 아니냐"고 묻자 "김 전 비서관에게는 제가 지원한 기억이 없다고 검찰에서 진술했다"고 말했다.
그러자 이 부장판사는 "말이 안 된다. 청와대에 수시도 아닌 불과 2~3번 지원했다면서 어떤 이유로 줬는지, 무슨 용처로 줬는지 기억 안 나는게 말이 되느냐"고 따졌다.
원 전 원장은 이 부장판사가 "민정실에서 장진수가 (민간인 사찰을) 폭로할 것 같으니까 (입막음 목적으로) 돈 줘야할 것 같다고 해서 줬다고 신승균 등 당시 국정원 관계자들이 그러는데 (원장이었던) 자신만 모른다는 게 말이 되느냐. 5000만원 지원 정말 기억 안 나느냐"고 재차 묻자 또 "안 난다"고 대답했다.
결국 이 부장판사는 언성을 높였다.
그는 "어떻게 그런 일을 모를 수가 있나. 지금 거짓말하는 것 아니냐"며 "원 전 원장 얘기는 지금 신빙성이 없다. 당연히 나올 수 있는 얘기를 어떻게 모른다고 하느냐"고 말했다.
이 부장판사는 원 전 원장이 "청와대에…"라며 어떤 진술을 하려고 하자 "됐다. 얘기가 그렇다는 걸(신빙성이 없다는 걸) 지금 얘기해주는 것"이라며 끊어버렸다.
김 전 기획관은 김성호 전 원장 시절인 2008년 4~5월께, 원 전 원장 시절인 2010년 7~8월께 현금으로 2억원씩 청와대 인근에서 전달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때 이명박(77) 전 대통령은 김 전 기획관에게 "국정원에서 돈이 올 것이니 받아두라"고 직접 지시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에 검찰은 공소장에 이 전 대통령은 '주범'으로, 김 전 기획관을 '방조범'으로 적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