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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팝도 '올드머니'·'회빙환' 시대…'고난 서사' 없어져 가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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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톱스타뉴스 편집팀 기자) "17평 아홉 연습생 코찔찔이 시절 (…) 좋은 건 언제나 다 남들의 몫이었고 불투명한 미래 걱정에 항상 목 쉬었고 연말 시상식 선배 가수들 보며 목 메였고 했던 꾸질한 기억 (…) 울기도 웃기도 많이 했지만 모두 꽤나 아름다웠어 논현동 3층 고마웠어"(방탄소년단 미니 3집 '화양연화 pt.1' 중 '이사')

글로벌 슈퍼 그룹 '방탄소년단'(BTS)은 K팝계 '피 땀 눈물'의 상징이다. 'JYP엔터테인먼트 수석 프로듀서 출신' 방시혁 하이브 의장의 힙합 아이돌 그룹으로 데뷔 초부터 주목 받은 만큼, '흙수저 그룹'은 다소 과장된 표현이기는 하다. SBS M '신인왕 방탄소년단 - 채널방탄'(2013), 엠넷 '아메리칸 허슬라이프'(2014) 같은 프로그램에 출연 가능했던 것도 방 의장이 제작한 아이돌이라는 배경이 컸다.

하지만 '신인왕 방탄소년단 - 채널방탄' '아메리칸 허슬라이프'를 눈물 없이는 볼 수 없었다는 방탄소년단의 팬덤 '아미'의 후기가 증명하듯, 방탄소년단 멤버들의 성장엔 '고난 서사'가 주축이었다. 실제 '이사' 가사에서도 묻어나지만 방탄소년단과 하이브(당시 빅히트 엔터테인먼트)는 2015년 미니 3집 '화양연화 pt.1'를 내기 직전까지 금전 등 다양한 측면에서 어려웠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 이제 방탄소년단 그리고 13인이라는 다인원으로 우려를 사고 실제 어려움을 겪었던 '세븐틴'(SVT) 같은 K팝 3세대 그룹 다음 세대부턴 K팝 메인 스트림 내 데뷔 과정에서 이 같은 고난의 서사는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

물론 지난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건물 사이에 피어난 장미'(건사피장) '하이키'의 예처럼, 중소기획사 아이돌 그룹에선 여전히 '고난 서사'가 남아 있다.

하지만 대형기획사 아이돌, 특히 데뷔 전부터 큰 관심을 받고 데뷔 직후 성과를 드러내는 '메이저 안의 메이저' 아이돌들에서 고난 서사가 확연히 줄어드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SM엔터테인먼트의 '라이즈', 플레디스 엔터테인먼트(하이브(HYBE))의 '투어스'(TWS) 같은 팀들이 대표적이다. 데뷔 이전부터 큰 관심을 받았고 데뷔 직후 음원차트 상위권에 진입하는 등 단숨에 스타가 된 이들의 노래엔 설렘이 주로 가득하다.
뉴시스 제공
아울러 YG엔터테인먼트 간판 프로듀서로 활약한 테디가 수장으로 있는 '더블랙레이블'이 올해 상반기에 론칭 예정인 걸그룹엔 신세계 가(家) 외손녀가 문서윤 씨도 포함돼 있는 것으로도 알려지는 등 K팝 신에 재벌가도 등장을 예고하고 있다.

더블랙레이블엔 인터넷 대기업 네이버의 공동 설립자인 이해진 네이버 글로벌투자책임자(GIO) 아들인 싱어송라이터 겸 프로듀서 로렌(이승주)도 소속돼 있다. 2020년 11월 '엠티 트래시'로 데뷔한 로렌은 블랙핑크 정규 1집 '디 앨범(The Album)'에 실린 '러브식 걸즈' 작사 명단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그간 '은둔의 아이콘'이었던 재벌가 자녀들의 등장은 K팝의 위상이 그 만큼 커졌다는 걸 방증한다.

이처럼 대형 K팝 기획사를 중심으로 데뷔 전부터 회사의 엄청난 화력 지원을 받거나 사회적으로도 주목할 만한 멤버들이 속한 K팝 그룹이 데뷔를 앞두면서, K팝 신인 그룹 론칭에서도 '부익부빈익빈(富益富貧益貧)' 가속화될 전망이다. 하이브에 대한 대기업 집단 지정이 확실히 되는 등 K팝이 산업화되면서 나타날 수밖에 없는 현상이다. 이제 K팝계에 '개천에서 용'이 나오는 상황은 지극히 드물 것으로 보인다.

작년 '피프티 피프티'가 '큐피드'로 영미권 싱글차트에 균열을 내며 소속사 어트랙트가 중소기획사로서 이변을 일으킬 가능성을 예고하기도 했지만, K팝 산업의 다양한 위험 요인들로 인해 현재 재정비 중인 상황이다.

임희윤 문화평론가(a.k.a 희미넴)는 "중소 아이돌도 좋은 곡과 퍼포먼스를 갖고 있으면 역주행을 통한 정상 공성(攻城)이 충분히 가능했던 시절이 있었다. 이런 현상이 근년 들어 현저히 줄고 있다"고 봤다.
뉴시스 제공
반면 "'큰' 아이돌은 데뷔와 동시에 수만 장에서 수십 만 장의 앨범을 팔거나 밀리언 셀러(제로베이스원·라이즈)를 기록하는 일이 생겨났다"면서 "연습생, 또는 프리-데뷔 때부터 대형 기획사들이 물량(현금 투자를 기반으로 한 바이럴 마케팅) 공세를 쏟아붓고 그것이 실제로 먹히고 있기 때문"이라고 부연했다.

◆남달라진 K팝 위상…국가 기간산업(基幹産業)처럼 여겨지기도

전 세계에서 일어난 K팝의 열풍의 공은 민간의 영역에 있다. 하지만 K팝 아티스트의 위상이 남달라지자 정부는 문화 행사나 외교 무대에 K팝을 적극 내세우기 시작했다. '2023 새만금 제25회 세계스카우트 잼버리' 파행에 구원투수로 나섰던 것도 K팝 콘서트였다. 일부에선 K팝을 중심으로 한 한류를 국가 기간산업(基幹産業)처럼 여기기도 한다.

이에 따라 K팝 아이돌의 위상도 전 세계적으로 상승했다. 국내에서 인기 있는 K팝 그룹은 곧 세계에서 인기 있는 K팝 그룹이다. 재벌가의 아이돌 그룹 멤버 데뷔설도 이를 기반 삼는다. 무엇보다 현재 인기 K팝 그룹 멤버들은 데뷔 전 연습생 때부터 스타인 경우가 수두룩하다.

이런 인기는 소셜 미디어 팔로어·좋아요 숫자로 수치화된다. 방탄소년단, '블랙핑크' '뉴진스' 등 톱그룹의 엄청난 소셜 미디어 팔로어 숫자는 곧 인기와 직결된다. 명품 브랜드들이 앞다퉈 K팝 스타들을 앰버서더로 발탁하는 이유다.

임 평론가는 "소셜 미디어 시대에서 젊은이들은 팔로어와 좋아요 숫자로 권력을 확인하고 '인기인' 앞에 쉽게 좌절하기도 하며 그들을 쉽게 동경하기도 한다"면서 "자신들의 대단함을 데뷔 초기부터 '숫자'로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이들 앞에 고난 서사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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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팝도 올드머니 시대…'회빙환' 정서 반영도

이미 데뷔 전 고난 서사가 정리됐다는 해석도 있다. 다양한 배경을 가진 멤버들은 기획사 연습생 오디션 또는 공개 오디션 프로그램이나 데뷔조 선발 과정에서 이미 걸러진다. 이 과정은 아이돌 팬들에게도 공유된다. 그렇기 때문에 데뷔한 그룹 사이에서 고난 서사나 경쟁의 재미를 굳이 찾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임 평론가는 "더욱이 근 몇 년간 수많은 아이돌 경연 프로그램(프로듀스 101 이후 그룹별 데뷔조 선정 경연 프로그램까지)이 방영됐다"면서 "그것을 봐온 요즘의 소비자들은 더 이상 연습생의 경쟁 과정이 기획사 건물 벽 안에 있는 신비로운 절차가 아니다"고 짚었다.

따라서 "소비자들도 이젠 '그 어마어마한 경쟁자를 다 제치고, 심지어 대형 기획사 아이돌로 데뷔한 사람'들에 대한 성실성이나 스타성에 대한 믿음과 리스펙트가 기본적으로 있을 수밖에 없다"면서 "데뷔한 멤버들 입장에서는 마음껏 자신을 '플렉스' 하는 가사를 써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라고 썼다. 이 경우는 르세라핌의 데뷔곡 '피어리스'가 대표적으로 "멋진 결말에 닿게 / 내 흉짐도 나의 일부라면 / 겁이 난 없지 없지"라고 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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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K팝 문화의 흐름은 당연히 사회현상도 반영한다. 최근 국내외 명문대 입학생들은 상당수가 부유한 자녀들이다. 실례로 2022년 서울대 입학생 중 서울 '강남 3구' 학생 비율이 11.9%였다. 어릴 때부터 비교적 좋은 환경에서 공부해온 학생들이 명문대를 나와 사회에서도 성공할 확률이 높아지고 있다.

K팝 업계 역시 마찬가지다. K팝 가수가 선망의 대상이 되면서 어릴 때부터 최적화된 교육을 받은 연습생들이 좋은 기획사에 들어가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황선업 대중음악평론가는 "어릴 때 개인의 기본적인 재능을 발견하고, 성장하기 위한 최적의 환경을 만들기 위해선 그 만큼 좋은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면서 "연습생 때엔 실제 수입이 거의 없는데, 삶을 영위하고 개별 레슨을 받기 위해선 돈도 꽤 들어간다. 사회현상의 단면이 K팝 업계에서도 그대도 보여지는 것"이라고 짚었다.

연습생이 돼서도 마찬가지다. 명문대 학생에 비유할 수 있는 대형 기획사 연습생은 춤·노래 레슨은 물론 어학 공부, 심리 상담 등 'K팝 고급 인재'가 될 수 있는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다. 하이브는 언테테인먼트 업계 처음으로 최근 전문 의료인이 상주하는 사내 의원도 만들기도 했다. 이제 K팝도 '올드머니(Old Money)' 시대가 왔다. 자수성가를 뜻하는 '뉴 머니(New Money)'가 아닌 K팝을 이끈 선배로부터 물려받은 K팝 유산으로, 태생부터 다른 이들이 성공하는 시대인 것이다.

이 풍경은 최근 웹툰·웹소설 또 이를 바탕으로 하는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 '내 남편과 결혼해줘'('내남결') 인기와 맞물리는 '회빙환'(회귀·빙의·환생) 주인공과도 비슷하다. 문화 소비자가 이전 내용 등이나 개별 서사를 어렵게 학습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더는 대신, 단숨에 '승리의 도파민'에 빠져들 수 있는 것이다. 일본에서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져 인기를 누리고 있는 웹툰 '나혼자만 레벨업'도 같은 맥락에 있다.

임 평론가는 K팝에 고난 서사가 없어진 이유 중 하나로 "'회빙환(회귀-빙의-환생)' 콘텐츠 열풍과 쇼트폼 유행의 영향(또는 방증)"도 꼽았다. "고난과 극복의 과정을 팔로우하고 정주행하기에는, 무한 콘텐츠의 시대에 시간이 없다"면서 "많은 소비자들은 이제 '저들(콘텐츠의 주인공들)의 사정'을 기다려주지도, 이해해주지도 않는다. 바로 슈퍼맨이고 슈퍼휴먼인 상황('나혼자만 레벨업'과 같은)을 많은 이들이 그저 즐기기를 원하는지도 모르겠다. K팝 서사에서도"라고 짚었다.

황 평론가도 "해외의 경우 자본이 없더라도 크레이티브한 측면이 있으면 남다른 차별점이 생길 수 있다"면서 "하지만 이제 K팝엔 콘텐츠 퀄리티도 자본에 종속된 사회의 단면이 녹아 들어가고 있다. 벌어들인 돈을 콘텐츠 질에 대거 투입하니 더 좋은 콘텐츠가 나올 수밖에 없다. 작년 '피프피 피프피' 사례도 있었지만, 이런 흐름에서 중소형 기획사는 회의감이 더 들 수밖에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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