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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꼬무’ 장흥공작, ‘신호수 의문사 사건’ 삐라 소지 간첩 수사 ‘사망’-전태일X이한열X박종철 부모와 함께 ‘시위’ [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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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톱스타뉴스 배수정 기자)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에서는 한 동굴에서 기이하게 발견된 시신과 죽음의 진실을 밝히는 ‘신호수 의문사 사건’을 다룬 ‘장흥공작’편을 듣게 됐다. 

18일 방송된 sbs 예능프로그램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에서는 이야깃꾼으로 장도연, 장성규, 장현성이 리스너로 여자아이들 미연, 배우 진구, 박효주가 출연해서 가파른 바위산의 한 동굴에서 기이하게 발견된 시신과 죽음의 진실을 밝히는 ‘신호수 의문사 사건’을 다룬 ‘장흥공작’편을 듣게 됐다.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방송캡처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방송캡처
1986년 평화로운 여수 바닷가, 49세 신정학 씨는 생선을 떼다 말려서 파는 일을 했다. 그날도 일을 마치고 잠자리에 들려던 참에 전화 한 통이 걸려왔고 가슴이 쿵 내려 앉았다. 전화의 내용은 호수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호수는 신 씨의 막내 아들로 당시 23살이었다.

호수는 인천에서 가스배달부로 일하고 있었는데 아버지는 곧바로 아들을 찾으러 인천의 직장으로 찾아갔는데, 동료 직원들에게 호수의 행방을 물었지만 호수가 사라진지 열흘이 넘었다고 전했다.

열흘 전 그날, 신호수의 직장에 낯선 승용차 한 대가 들어섰고 차에서 내린 세 명의 남자가 신호수의 얼굴 앞에 빨간 봉투를 들이밀었고 호수는 봉투 안 내용물을 보고 얼굴이 새파래졌다. 그 순간 남자들은 호수의 허리띠를 풀고는 러히춤을 움켜잡고 승용차 뒷자리에 밀어넣었다.

세 남자와 호수는 순식간에 차를 타고 사라졌고 직장 동료들의 기억에는 포니2, 회색, 무전기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회색 포니 자동차에 무전기가 달려 있었다는 얘기를 듣고 경찰서를 찾아가서 신고를 했는데 경찰은 그 정도 단서로는 수사가 어렵다고 했다. 

며칠 후, 아버지는 아들을 찾았다는 경찰의 전화를 받았고 경찰이 내민 건 끔찍한 모습이 담긴 사진 한 장이었다. 호수의 옷은 모두 벗은 채 팬티차림으로 바위에 눕혀져 있었고 흰 양말은 빨갛게 피로 빨갛게 물들어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3명의 방위병들이 돌아오는 길에 배가 고파서 산딸기를 따먹으러 다니다가 비둘기가 바위틈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목격했다. 방위병들은 비둘기를 따라가 봤는데 사람 하나 들어갈 정도의 구멍이 있었고 호기심에 발을 넣자 동굴로 빠지게 됐다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방송캡처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방송캡처
넘어진 방위병의 눈에 들어온 것은 어두운 동굴 속에서 한 남자가 팬티만 입고 서 있는 모습이었다. 방위병들은 경찰에 신고를 했고 이후 사망한 호수의 아버지 신정학 씨에게 전화를 했던 것이다.

하지만 경찰은 시신을 발견한 지 8일 만에 전화를 했고 매장을 이미 한 상태였다. 경찰은 바로 신정학 씨에게 연락을 하지 않은 이유로 호수가 동굴 안에서 주민등록증을 태워서 신분을 늦게 확인하게 됐고 지문으로 확인하는 중에 경찰이 매장을 해버렸다.

부검의는 호수의 사인을 극단적 선택이라고 했지만 수상한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제작진은 직접 동굴에 가서 혼자 죽을 수 있는지 실험을 해보았지만 불가능했고 호수의 아버지 신정학 씨는 아들 호수가 그 동굴을 알리 없다고 전했다.

신정학 씨는 아들의 사인을 밝히기 위해 동굴 근처의 가게에 들렀고 호수와 함께 온 경찰이라는 사람이 전화를 사용했다는 말을 들었고 호수는 서울 경찰에게 연행을 당했다. 신정학 씨는 청와대를 찾아가서 3명의 경찰에게 왜 호수를 연행해 갔는지 이유를 묻는 진정서를 냈다.

이후 신정학 씨에게 답이 왔는데 동행여부 확인한 바, 산하 서부 경찰서 대공과에서 위반혐의 사실로 인천에서 임의 동행을 했다는 내용이었다. 경찰은 호수는 장판 밑에 삐라를 34장을 모아서 숨겨 두었는데 호수는 당시 방위병이었는데 삐라를 모아서 휴가를 가려고 했다고 말했다. 

경찰은 잡은 지 3시간 만에 호수를 풀어줬다고 했고 당시 호수가 자신을 비관했다고 전했다. 신정학 씨는 아들이 극단적 선택을 할 리가 없고 경찰이 가혹행위를 하고 죽음에 이르게 됐다고 하며 부검을 요청했다.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방송캡처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방송캡처
하지만 매장한지 10여일 만에 부검을 했지만 ‘타살혐의는 없다’고 나왔고 집요하게 진실을 파헤치다가 5공이 몰락하면서 그동안 숨겨진 경찰, 검찰의 진실이 밝혀졌다. 신정학 씨가 받게 된 문서에는 ‘장흥공작’이라고 쓰여 있었고 삐라 습득 신고 접수가 1985년 9월 8일 적혀 있었다.  

호수가 연행된 날은 1986년 11월이었는데, 무려 9개월 전부터 수사가 시작됐고 1985년 9월 14일에 신호수와 같은 방에 살고 있는 친구 이름까지 적혀있었다. 친구는 한달 후에 경찰의 신문을 받았는데 신호수에게 삐라가 있다는 사실을 말하게 됐지만 휴가로 인해 갖고 있다는 말을 했다.

그런데 8개월이 지난 후에 호수를 연행했는데 그 이유는 군 생활이 힘들다고 불평 불만을 하고 방위병 동료들에게 불온 전단을 보여주고 불순분자와 연계활동을 한 것으로 추정됐다고 쓰여있었다.  대공수사과에서 군생활을 불평 불만을 했다는 이유로 호수를 잡아갔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후 경찰은 신호수의 가족관계, 전과 기록등을 조사했고 형사는 중범죄자를 연행하는 방식으로 데리고 갔고 3시간 만에 풀어줬다고 했다. 형사는 "호수가 차비가 없어서 3000원까지 주고 서울 지리를 모른다고 해서 서울역까지 데려다 줬다"고 하며 지나치게 디테일하게 말했다.

호수가 일했던 가스 배달원 동료들은 호수에게 수금한 돈 12만원을 가지고 있었고 형사가 연행 당일 6월 11일 훈방됐다고 했고 6월 12일에서 14일에 사망했다. 

또 신정학 씨는 납득하기 힘들어서 호수를 연행한 3명의 형사를 고소했고 검찰은 타살혐의점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는데 신정학 씨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전태일, 박종철, 이한열 부모들이 함께 하기로 하고 16년 만에 다시 부검을 하기 위해 유골을 꺼내고 일본에서는 타살로 확인됐지만 대한민국에서는 확인이 어렵다는 결과가 나오면서 시청자들에게 놀라움을 줬다.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는 매주 목요일 오후 10시 35분에 방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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