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톱스타뉴스 김효진 기자) 백정 출신 제중원 한국 최초 의사 박서양을 향한 관심이 뜨겁다.
박서양은 1885년 9월 30일 최하층으로 취급받던 백정 박성춘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박성춘은 1893년 서울에 도착한지 얼마 되지 않았던 에비슨이 신분을 차별하지 않고 직접 몇 번에 걸친 왕진을 통해 자신을 성실하게 치료해 준 것에 감명을 받아 개신교인이 됐다.
그와 에비슨의 만남은 백정과 양반이 같은 교회를 다니고, 백정이 처음으로 사람대접을 받아 상투를 하고 갓을 쓸 수 있게 된 계기가 됐다.
에비슨은 1895년 6월 콜레라가 만연하자 조선정부에 의해 방역 책임자로 임명받았다.
콜레라가 거의 퇴치될 무렵 조선정부는 내부대신 유길준을 통해 에비슨에게 사의를 표했다.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에비슨은 1895년 10월 내부대신 유길준에게 지방백정들의 신분해방을 부탁했고, 1896년 2월 11일 아관파천 이후 봄에 전국 백정의 신분이 윤허됐다.
박성춘을 비롯한 곤당골교회의 예수교학당 교사 채씨는 갑오개혁으로 시행되었던 신분차별 철폐법을 백정에게도 확대하고자 1895년 5월 6일 탄원서를 내부대신 유길준에게 보냈고, 6월 6일 백정 신분을 철폐한다는 포고문을 서울에 붙이는데 노력했다.
여러모로 에비슨과 인연이 있었던 박성춘은 그의 초대로 아들인 박서양의 혼인식에 참석한 에비슨에게 자식의 교육을 부탁했다.
얼마 후 박서양의 부친의 부탁을 받은 에비슨은 박서양을 병원에 데려왔고, 그의 사람됨을 알아보기 위해 처음에는 병원 바닥 청소와 침대정리 및 잡무를 시켰다.
박서양이 힘든 모든 일을 아무 불평 없이 거뜬히 처리하자 에비슨은 그에게 글공부를 시작하게 하고 1900년 8월 30일 정규과정으로 제중원의학교(세브란스의학교)에 입학시켰다.
박서양은 1908년 6월 우리나라 최초의 7명의 의사 중 한명으로 세브란스의학교를 졸업했다.
그는 졸업 직후 화학을 맡아 강의를 하다 해부학을 가르쳤고, 외과에서 근무했다.
또한 세브란스 간호원양성소의 교수로 활동했다.
<저작권자 © 톱스타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2018/01/18 12:31 송고  |  reporter@topstar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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