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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꼬꼬무’ 김경숙 열사, YH사건 ‘사망 미스터리’…‘부마항쟁사건’-‘10.26사건’까지 이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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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톱스타뉴스 배수정 기자)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시즌2 (꼬꼬무)’에서는 경찰이  YH 무역 여공을 무력으로 막는 가운데 경찰들에게 밀쳐진 김경숙 열사 사망 미스터리가 그려졌자. 

22일 방송된 sbs 스페셜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꼬꼬무)’에서는 이야깃꾼 MC 장도연, 장성규, 장항준 감독이 리스너 봉태규, 주우재, 김이나에게 '잔혹한 8월의 역사, 101호 작전, 흰장갑의 습격'을 들려줬다. 

 
sbs‘꼬꼬무’방송캡처
sbs‘꼬꼬무’방송캡처

1979년 8월 11일 새벽 2시, 신문사 사진부 박태홍 기자는 마감시간까지 혼자 신문사에 야근을 하게 됐고 새벽 1시가 넘는 시간까지 들어오지 않는 선배가 이상했다. 그는 '뭔가 일이 있구나'라고 생각하고 차를 끌고 나갔고 앞에서 젊은 남자들이 떼로 오는데 기자의 본능으로 사진을 찍게 됐는 후레쉬가 터지자 남자들이 박기자를 모두 쳐다봤다.

박기자는 마포거리에 흰장갑을 낀 남자들이 "너 뭐냐?"라고 하며 카메라를 던지고 발길질을 하면서 무차별적인 폭행을 당하게 됐다. 박기자는 한국일보 기자라고 하면서 야간통행증을 꺼냈지만 남자들은 "기자? 기자가 무슨"이라고 하며 더한 폭행을 가했고 옆에는 경찰이 바라만 보고 있었다. 

그런데 흰장갑들의 피해를 본 사람은 박기자 뿐 만이 아니었는데 이들은 집단으로 다니며 15명의 기자와 국회의원, 그리고 수백명의 젊은 여성을 끔찍하게 폭행했다.

기자들이 실려간 병원은 야전 병원이었고 기자들이 지나간 자리에는 한 남자가 나왔는데 톱, 망치등을 가지고 왔는데 건재 상인이 왔는데 전화를 받고 도착한 곳은 4층짜리 빌딩인데 여기저기 핏자국과 문들이 박살나서 전쟁터나 다름이 없었다고 했다. 

건재 상인은 당시 공포의 흰 장갑들이 자나간 자리는 아비규환이었는데 깨진 유치창과 박살난 집기들, 그리고 건물 한 쪽 구석에는 여셩용 신발 수백 컬레가 엄청나게 쌓여있었다고 전했다. 

YH 무역 장회장은 서울시 중랑구 면목동에 가발 공장을 차리고 빠른 기간에 근로자들을 4000명까지 고용하며 승승장구를 했다. 가발을 만들기 위한 머리카락은 가격이 4배였고 삭발모정, 삭발 효녀라는 유행어도 있어서 근로자들은 열심히 일을 했지만 당시 월급은 15,028원이었다. 

당시 보통 회사원 월급은 36,000원이었으니 일하는 시간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월급이었고 마치 다단계처럼 여공들에게 일할 사람을 데리고 오면 휴가를 줬고 한달에 2번 쉴 수 있고 퇴직금도 없었다고 전했다. 

YH 무역 장회장은 박정희 대통령에게 철탑 산업 훈장을 받고 종합소득세 랭킹 10위에 들면서 많은 돈을 벌어들였다.  하지만 장회장은 미국에서 문어발식으로 사업을 늘려서 돈을 밖으로 빼돌렸고 여공들은 노동조합을 만들었지만 아무도 그들의 항의 듣지 않았다.

이유는 못 배우고 나이도 어리고 여자이기 때문에 최약자였고 공순이라고 비하를 하고 작업장에는 번호로 불렸다. 당시 여공은 회사원 중에 가장 하층민이었고 어떤 공장에서 일하던 23살 여공이 투신자살하는 사건도 있었도 팔에는 '인간답게 살고 싶다. 내 이름은 공순이가 아니라 미경이다'라고 유서가 쓰여있었다.

노동시간은 가장 길고 임금은 가장 적었는데 몇 달의 월급을 밀린 YH 무역은 갑자기 폐업을 했는데 여공 기숙사에서 물과 전기가 끊긴채 감시를 받았다. YH 무역 여공들은 목욕탕을 가는 척 하면서 마포의 신민당사로 가게 됐고 각자 숨어서 몰래 나왔던 187명 여공들은 모두 신민당사로 뛰어들어갔고 김영삼 총재는 그들을 받아주고 함께 싸우기로 했다. 

YH 무역 여공들의 소식이 신문에 실리자 중앙정보부에서 회의를 하게 됐고 "오늘 중으로 경찰 투입해서 해산 시켜라"고 지시했다. 바로 2명의 경찰이 1명의 여공을 연행하는 101호 작전을 하게 됐고 여공들이 신민당이 들어온지 이틀도 안된 시각 투입 경찰은 1200명으로 사복 경찰에 흰장갑을 꼈다. 

창문이 너무 많았지만 안정망도 설치하지 않고 실행을 하게 됐고 여공들은 밖의 사정으로 보고 여공들은 부모님 쪽을 향해 절을 하고 애국가를 불렀다.ㅍ조합원들은 울분에 북받쳐서 울기 시작했고 그때 평소 조용하기만 했던 김경숙이 조합원들 앞에 서서 결의를 다졌다.

김경숙은 일기를 썼는데 남동생을 대학을 보내기 위해 청량리 견습 여공을 시작하고 처음으로 YH 무역에서 정식직원이 되고 야간학교 2시간 수업을 받기도했다. 김경숙의 일기장에는 "하루 건너 철야 작업을 하고 코에서 피가 펑펑 나오고 쓰러지기까지 해서 너무 힘들어서 자살하고 싶었는데 고향이 길을 막았다"라고 전했다.

모두가 잠든 새벽 2시 신민당사에 101호 작전이 비밀리에 강행됐고 경찰은 바리케이트를 치고 흰 장갑의 남성들이 들어갔다. 현재 팔순이된 이성춘 기자는 당시 사무총장 자리에 있었는데 깜빡 잠이 들다가 깼는데 "와!"하는 소리가 들렸고 김영삼 총재와 상의를 하려 했는데 바로 흰장갑이 벽을 뚫고 곤봉을 휘둘렸다고 전했다.

흰장갑들은 너희들은 얌전히 있지 않으면 가만 두지 않겠다라고 경고를 했고 움직이는 사람이 보이자 곤봉으로 때려서 피가 철철나게 하며 국회의원, 기자들을 무자비하게 폭행을 했다.
여공들은 서로 떨어지지 않으려고 팔짱을 꼈지만 질질끌려가고 "이 XX들 일이나 열심히 하지"라고 하면서 죽도록 때렸다고 말했다.

흰장갑은 곤봉을 뒤로 잡고 피가 나고 상처가 찢어지도록 때렸는데 너무나 잔인해서 전경조차 말릴 지경이라고 했다고 하면서 여공 1명당 4명이 전경이 잡고 데리고 나갔다. 건물 안에는 사람들의 비명소리로 가득했고 얼마 후 한 여성의 시신이 발견됐고 그가 바로 스물한 살의 여공 김경숙이었다.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이미 사망한 후였는데 사망 후의 과정이 이상하다고 전했다. 형사가 오전 11시 전남 광주의 김경숙의 집에 가서 남동생에게 어머니를 불러 오라고 했고 저녁 8시가 지나서야 출발했고 병원, 경찰서, 서울이 아니었고 수원의 한 여관이었다.

다음 날, 서울에서 내려 준 곳이 여관이었고 유족을 시신과 철저히 차단을 시켰던 것이고 겨우 도착한 어머니와 아들이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부검은 이미 끝난 후였고 빠른 화장을 하게 했다.

경찰은 김경숙 어머니에게 돈봉투를 주고 경찰은 기자회견을 했는데 김경숙이 성격이 예민하고 과격한 탓으로 자주 흥분했고 여공들을 선동해서 같이 뛰어내리자고 해서 경찰과는 무관하다라고 발표했다. 김경숙의 동생은 "당시 어렸기 때문에 몰랐는데 지금 생각하면 죄책감이 든다. 누나는 우편환으로 매달 돈을 보내왔고 그 돈으로 내가 학교를 다녔다"라고 하면서 오열을 했다. 

또 이후 신민당 총재 김영삼이 박정희 전 대통령을 향해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 그 자리에서 내려오라"고 YH 사건은 '부마항쟁사건'로 이어지고 박정희 대통령을 김재규가 암살하는 '10.26'사건으로 까지 이어지면서 시청자들에게 놀라움을 졌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는 배워서 '너' 주는 3인 3색이야기. 세 명의 '이야기꾼'이 스스로 공부하며 느낀 바를 각자의 이야기 친구에게 가장 일상적인 공간에서 1:1로 전달하는 프로그램이다.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시즌2’는 매주 목요일 오후 10시 35분에 방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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