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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톱스타 리턴즈] 육남매 ‘준희’에서 어엿하게 성장한 배우 '노형욱' / 8년의 긴 공백기. “목표도 없고 일이 없던 그 시절 정말 힘들었어요. 대본 인쇄소, 택배 상하차 등 여러 알바를 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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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톱스타뉴스 김혜진 기자) 지난 16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 위치한 톱스타뉴스 인터뷰룸에서 아역배우 활동 당시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배우 노형욱씨와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본 인터뷰 촬영은 촬영에 참여한 전 스태프들의 손소독과 마스크 착용을 하였으며 코로나 예방 수칙에 준수하여 안전하게 촬영하였습니다.
 

안녕하세요, 톱스타뉴스 구독자 여러분, 저는 육남매(준희), 몽정기(동현) 그리고 똑바로살아라에 나왔던 배우 ‘노형욱’입니다. 반갑습니다.
 
Q. 요즘 어떻게 지내고 계시는지?

요즘 아무래도 지금 시국이 시국인지라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계속 집에만 있어요. 가끔 정말 가까운 지인들 만나러 잠깐 나가는 정도고 계속 집에만 있는 거 같아요.

Q. 코로나 때문에 생긴 취미가 있으신지?

사실은 좀 밖에서 나도는 걸 좋아하는데 (코로나로 인해서) 전보다 조금 더 많이 TV를 보는 거 같아요.

Q. 어떤 프로그램 즐겨 보시는지? 

요즘 시사 프로그램에 빠졌어요. ‘그것이 알고 싶다’나 ‘차이나는 클라스’등 이런 프로그램을 계속 보고 있어요. 아, 쌤과 함께 뭐 이런 것들을 좀 많이 보는 거 같아요. 시사/기획 같은!

Q. 유튜브 라이브 활동 중심, 개인 유튜버를 하실 생각은?

그런 의도가 없던 건 아니었어요. 제가 처음으로 했던 콘텐츠가 연남동에 가서 “1시간 동안 제가 책상을 펴 놓고 있으면 몇 명이 사인을 받느냐”를 했어요. 딱 이렇게 좀 추울 때였어요. 연남동 가서 한 시간 앉아 있었는데 그때 정확히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열일곱 분 정도가 알아봐 주셨어요. 처음에는 이러고 있는 게 너무 민망했죠. 가만히 있다가 눈 마주치면 “안녕하세요~” 이렇게 인사를 했어요. 그제야 얼굴 확인하고 “누구구나~” 하고서는 사인을 이제 그때부터 하기 시작했죠. 한 5분 정도 이러고 앉아있었어요. 추워 가지고.. 그게 계기였는데 그런 식으로 모처에 가서 한 번씩 이런 콘텐츠를 해 보자라고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그다음 단계가 상암동을 생각하고 있었어요. “방송국 놈들의 본거지를 가자!” 이 생각을 했지만 바이러스가 퍼지면서 사람들 만나는 게 위험하더라고요. 그래서 그 뒤로 계속 못 하고 고민하다가 유튜브 라이브를 하기 시작했죠. 라이브를 하다가 우연치 않은 생각으로 내가 (팬 분들의) 주소를 받아서 싸인을 보내는 것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어서 온라인 사인회를 라이브로 진행을 했거든요. 반응이 나쁘지 않았어요.(웃음) 괜찮았어요. 그리고 팬 분들에게 감사했어요. (팬 분들이) 민망하지 말라고 메일을 많이 보내주시더라고요.
 
노형욱 / 비엔비 엔터테인먼트
노형욱 / 비엔비 엔터테인먼트
Q. 98년 드라마 육남매 데뷔, 데뷔 시절 아직 기억하시나요?

그럼요. 오디션부터 다 기억이 나요. 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보조출연을 많이 하다가 초등학교 4학년 즈음부터 지면 광고를 찍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광고 쪽에서만 활동하다가 간간이 TV 단역을 했는데 이제 드라마 오디션을 보게 됐죠. 처음에 오디션을 봤던 장소는 연기학원이었어요. 여의도 연기학원에서 한두 번인가 세 번을 보고 프로덕션으로 가서 오디션을 봤어요. 제 기억에는 육남매 중에 제가 제일 늦게 결정됐어요. 계속 불려 갔어요. 한 6번까지 갔나 그래요. 그리고 첫 촬영 나갔을 때도 기억이 나요.

Q. 첫 촬영 때 어떠셨어요?

그때가 정확히 1998년 1월 1일이었어요. 기분이 딱 “추웠다. 엄청 추웠다.” (웃음)

Q. 어린 나이에 배우를 하겠다고 결심하게 된 계기?

저는 결심을 하지 않았어요. 어머님이 결심하셨고 학교에서 보던 소년일보가 있어요. 거기에 주로 실리는 게 연기학원 광고였는데 그거를 보고 어머니가 “형욱아, 가볼래?”라고 물어보셔서 “맘대로 해~” 이렇게 했는데 진짜 가시더라고요. (웃음) 연기학원에서 오디션을 봤어요. 딱 오디션 장에 들어가서 “저는 커서 나중에 멋있는 군인이 될 거예요!”라고 하고 나왔어요. 그리고 합격이 됐어요. 그래서 그때부터 거기서 연기수업 하고 보조 출연을 하기 시작했죠.

Q. 어린 나이에 연기가 힘들진 않으셨는지?

처음에는 이제 어린 나이니까 아무것도 모르고 솔직한 심정을 얘기하자면 학교 빠지는 게 즐거웠죠. (폭소) 예를 들면 학교 끝나는 시간 보다 가끔 일이 일찍 끝날 때가 있잖아요. 그러면 행복한 거예요. 힘든 게 있었다면 추위랑 일찍 일어나는 거, 잠 못 자는 거 이렇게 세 개 빼고는 힘들다고 생각하진 않았어요. 아역들 많이 모이면 아역들끼리 놀아요. 다 또래 아역들이다 보니 또래들끼리 신나게 놀고.. 그냥 그런 시간들이 너무 즐거웠어요.

Q. 당시 함께 출연했던 분들과 연락하고 지내시는지?

육남매 때 같이 제 친구들로 나왔던 친구 중에 한 명이랑 첫째 형 태경이 형이랑 그리고 두희 역으로 나왔던 (이)찬호 씨랑 연락을 하고 있습니다. 근데 그분들이랑 연락을 안 한 지도 좀 됐어요. (웃음) 

Q. 오디션 많이 보러 다니셨는지?

아역 시절에는 광고 오디션도 엄청 봤던 거 같아요. 중학생 때 드라마 오디션을 많이 봤었어요. 육남매 이후로 오디션을 정말 많이 봤던 것 같아요.
 
MBC ‘육남매‘ 11회 캡쳐
MBC ‘육남매‘ 11회 캡쳐
Q. 연기를 해오면서 목표로 삼은 배우? 롤모델?

어릴 때는 없었던 거 같아요. 현재는 이제 <이준혁> 선배님이라고.. 그 선생님을 정말 좋아해요. 영화 내 안의 그놈을 봤을 때도 그 캐릭터가 어울리고 왕의 신하가 되셔도 어울리시고 이준혁 선배님처럼 다양한 옷을 입을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Q. 한양대 연극영화과, 부전공이 있으셨는지?

저는 부전공은 따로 없었고 연극영화과 안에서도 이제 영화랑 연극이랑 이렇게 대표적으로 있는데 영화도 뭐 촬영이 있고 연출, 제작 등 학생들이 선택할 수 있는 게 많아요. 연극도 되게 많아요. 공연 하나를 올라가려면 누군가는 연출을 해야 될 거고 누군가는 세트 이제 무대를 만들어야 되고 조명, 의상 이렇게 다양한 파트들이 있는데 저는 이제 거기서 무대를 선택했던 것 같아요. 그냥 되게 단순했어요. 무대를 만드는 형들이 되게 멋있었어요. 망치를 들고 못을 한 번에 넣는 그런 모습들이 어린 스무 살의 눈에는 굉장히 재밌고 멋있어 보였어요. (웃음)

Q. 무대 제작의 매력?

아, 더 멋있었던 건 그거였어요! 큰 소리가 나는 톱을 자를 때 전기톱으로 자르면 되게 소리가 커요. 그걸 형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저는 무서워 갖고 막 떨면서 했는데 처음에! 형들은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써겅써겅.. (웃음) 그다음은 드릴질 하는 거에 뿅 갔죠. 전동 드릴을 사용하는데 되게 쉽게 넣는 거예요. 그래서 뭐야 별거 아니네 왜 이렇게 아무도 못해 싶었는데 제가 했더니 안되더라고요. 처음에는 당연히 안 되죠. (웃음) 그래서 이제 무대 제작 관련해서 맛이 들렸죠.

Q. 드라마를 선택하는 기준이 있으신지?

솔직히 말하면, 아역 때는 기회가 이제 계속 들어왔었는데 성인이 되고 서는 크게 보여 주는 게 없어서 지금의 기준은 이제 많이 보일 수 있는 게 첫 번째 목표입니다.

Q. 8년이라는 긴 공백기, 공백기 동안 어떤 일을 하셨는지?

처음에는 이제 알바 이런 거 안 해봤죠. 할 줄 모르니까.. 경제 활동에 대해서 몰랐어요. 돈을 어떻게 벌어야 되고 모아야 되고 뭐 어떻게 써야 되고,.. 이런 걸 잘 몰랐는데 30대에 접어들면서 배우게 되고 알게 돼서 연기 입시 관련해서 개인 과외를 하다가 대본 인쇄소에 이제 취직을 하게 되었죠. 인쇄소에 다니면서 배송을 하다가 작품을 하나 만나기는 했어요. 대본 배송하다가 제작사를 갔는데 한 제작 PD님이 저를 기억해 주셔서 다른 프로그램을 하나 하실 때 저를 캐스팅해 주셨죠.

Q. 대본 인쇄소, 그곳에서 어떻게 일하게 되신 건지?

그때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생존이 안 되니까.. 다른 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거예요. 그래서 그러면 안 되겠다. 좀 돈을 벌고 모아서 그다음을 도모해보자. 무슨 일을 하면 좋을까 하다가 그래도 “이 근처에 있고 싶다,,” “방송 쪽 근처에 있고 싶다.”해서 구직 사이트를 열심히 검색하다가 대본 인쇄소에 취직을 하게 되었죠.

Q. 오랜 시간 연예인 생활을 해오면서 힘들었던 점?

일이 없고 제가 조금 목표가 없을 때 그때가 제일 힘들었어요. 그때는 어떤 생각이 있었냐면 그냥 왜 일이 없지 왜 안 오지 오겠지 하면서 시간을 보내니까 20대 중반부터 후반의 시간들이 굉장히 소중한데 더 많이 사람들도 만나보고 놀고 연애도 많이 해 보고 그랬어야 했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PC 방에 있던 거 같아요. 목적도 없고 목표도 없고 일이 없던 그 시절.. 그게 제일 힘들었던 거 같아요. 몇 년 동안 그렇게 지내다가 그걸 한 방에 객관화하면서 일깨워진 순간이 있었는데 그때가 세상에서 가장 창피했어요. (오열) 이 생각밖에 안 했던 거 같아요,

Q. 공백기 동안 힘드셨을 텐데, 의지가 되었던 사람?

어릴 때부터 같이 성장했던 친구가 한 명 있어요. 그 친구랑 저희 친형이랑 초중고를 같이 나온 완전 동네 친구가 있는데 그 3명이 참 많이 의지가 되었죠.

Q. 10년 전의 나에게 하고 싶은 말?

다시 오지 않을 휴식기야. 차라리 더 놀아. 그렇게 애매하게 놀지 말고! 아니면 지금 당장 나와서 일을 하든지..

Q. 10년 후의 나에게 하고 싶은 말?

고생했고 잘한 것도 있고 못한 것도 있겠지만 못한 거는 잘 정리하고 잘한 거는 잘 키워서 앞으로 10년 또 그렇게 잘 살아갔으면 좋겠어.

Q. 기억에 남는 팬분이 있으신지?

여럿이 있는데 그 중 오래된 팬분이 계세요. 연락처는 알고 있지만 연락을 잘 안하긴 하는데 제 팬카페를 처음으로 만들어 주신 팬이 있어요. 그 팬분이 가장 기억에 남고 최근에는 많은 분들이 기억에 남죠. 메일로 힘을 주시는 분들도 많고 뭐 먹을 거 보내 주시는 분도 있고 옷 보내주시는 분들도 있고.. 그래서 야.. 이게 되게 감사한 일이다! 근데 요즘에는 아무래도 이제 혼자 사는 걸 아시다보니까 자꾸 건강식품을 보내주세요. 비타민, 영양제 뭐 이런 것들이 많이 옵니다. 홍삼 뭐 이런 것들이 많이 와요. 많은 팬 분들이 기억에 남죠. 정말 고맙죠 감사하고.

Q. 감사한 팬분들께 영상편지?

세상에 좋은 분들이 참 많은데 그중에 저를 선택해 주셔서 너무 감사하고 앞으로도 그 취향이 변하지 않길 바라고요. 변하더라도 잠깐 변해서 멀리 떠나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 다른 곳을 보시더라도 멀리 안 가셨으면 좋겠고 또 그리고 많이 부족한 사람이지만 응원해 주고 지지해 주셔서 항상 감사합니다. 제가 할 수 있는 말이 항상 감사하다는 얘기밖에 없어서 죄송스럽긴 하지만 그래도 늘 감사하고 그 힘 받아서 제가 이렇게 잘 살아가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예뻐해 주세요! 고맙습니다.

Q. 앞으로의 활동 계획?

일단은 눈앞에 있는 거는 유튜브 라이브를 지속적으로 해서 사람들이랑 얘기해나가는 것이 1번이고요 두 번째로 제가 할 수 있는 거는 이제 드라마나 영화 이런 다양한 작품들로 좀 대중들이랑 만나는 게 두 번째 목표입니다.

네, 안녕하세요. 지금까지 배우 노형욱이었습니다. 시청해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톱스타뉴스 구독과 좋아요 눌러 주세요! 아 그리고 채널도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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