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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의 비극)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될 참사, 공분과 분노를 유발했던 그 당시의 공직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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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톱스타뉴스 임경진 기자) 1999년 6월 30일 새벽 경기도 화성군(현 화성시)에 있는 청소년 수련시설인 놀이동산 씨랜드 청소년수련원에서 화재가 발생하여 취침중이던 유치원생 19명과 인솔교사 및 강사 4명 등 23명이 숨지고 6명이 부상당하는 참사가 발생하였습니다. 

화재사고 당시 씨랜드에는 서울 소망유치원생 42명, 안양 예그린유치원생 65명, 서울 공릉미술학원생 132명, 부천 열린유치원생 99명, 화성 마도초등학교 학생 42명 등 497명의 어린이와 인솔교사 47명 등 모두 544명이 있었습니다.

화재발생시간은 12시 30분경으로 추정, 새벽 1시 40분에 최초 신고가 접수됩니다. 이후 20분후쯤인 1시 58분 소방선발대가 도착하지만 3분만에 물을 모두 소진, 2시 11분에 소방대 본진도 도착하지만 이미 불은 건물 전체로 번진 상태였고, 4시 25분경 완전히 진압됩니다.

화재는 가장 처음 수련원 3층 C동 301호에서 일어나 순식간에 건물 전체로 옮겨붙은 것으로 보였습니다. 화재 원인으로는 방 안에 펴둔 모기향이 옷에 옮겨붙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정밀검식을 하였습니다.

화재진압 후 301호에 소방관들이 들어갔을땐 어린 아이들의 유골이 창가쪽에 한데 뒤엉켜있었고 잠겨진 문 안쪽에는 아이들이 긁은 듯한 손톱자국이 발견됐다고 합니다.

후에 전기누전이 원인으로 지목되었지만 결국 원인 불명으로 남게 됩니다. 직접적인 화재원인 뿐 아니라 씨랜드참사는 대한민국의 불법과 비리, 무책임이 낳은 참사였습니다. 이 수련원은 콘크리트 1층 건물 위에 52개의 컨테이너를 얹어 2~3층 객실을 만든 임시건물로, 청소년수련원으로 사용하기에는 부적합하고 여러 위험요소를 안고 있는 구조물이었습니다. 

생활관에는 화재경보기가 있었으나 불량품으로 판명되었고, 사용하지도 않은 빈 깡통의 소화기들이 발견되었습니다. 

수련원 준공과 사업허가 경위 등에 대한 수사를 하였으며, 화성시 관련 공무원들에게 씨랜드 관계자는 청탁을 해서 불법건물임에도 불구하고 건축 허가가 난 것이 밝혀지게 됩니다. 애당초 씨랜드 건물은 양어장에서 수영장으로 용도변경이 됐으며, 숙소건물은 탈의실과 양호실 용도로 허가가 난 것입니다.

씨랜드 참사사고로 씨랜드관리자, 소망유치원원장이 업무상 과실치사로 각각 징역5년, 징역 3년6개월형을 선고 받았으나 화성군청 공무원들은 집행유예, 당시 화성군수 김일수는 무혐의 판정을 받습니다.

씨랜드 참사의 아픔이 잊혀지지도 않았는데 4개월이 지난 1999년 10월 30일 저녁 7시경 인천광역시 인현동에 위치한 4층 상가건물에서 발생한 화재로 건물 2층 생맥주집과 3층 당구장에 있던 10대 청소년 등 손님 52명이 불에 타거나 연기에 질식해 숨졌습니다. 

사고가 난 생맥주집 건물 지하 노래방의 내부수리 공사장에서 처음 발생하여 계단을 타고 2층과 3층 사이 번졌습니다. 이 화재로 청소년들이 있지도 않은 비상구와 비상계단을 찾아 갈팡질팡 헤매다가, 유독가스에 질식되어 의식을 잃고 쓰러졌습니다.

또한 출입구가 하나뿐이어서 일단 출입구가 막히면 실내에 있던 사람들은 탈출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창문이 있기는 했으나 구조변경을 할 때 통유리로 바꿔 달았으며, 베니어판을 덧붙여 비상시에 쓸 수 있었던 탈출구를 막아버렸습니다.

화재 원인은 당시 노래방의 알바생 17살 김모군과 14살 임모군이 시너와 석유 중 무엇이 더 불에 잘탈지에 대해 말다툼을 벌이다 소주 한잔 량의 시너를 뿌리고 붙을 붙였는데 공교롭게도 바닥에 페인트를 지우기 위해 이미 시너가 뿌려져 있는 상태였고 이 불이 삽시간에 번지게 된 것이었습니다. 이로 김모군은 그 자리에서 사망했으며 임모군은 나중에 과실치사 혐의로 경찰에 잡히게 됩니다.

많은 청소년들이 희생된 호프집은 문제업소로 경찰에 적발되어 업소 폐쇄 명령을 받은 상황에서 미성년자들에게 술을 파는 등 불법 영업을 계속 하다가 대형 참사를 빚었습니다. 이미 폐쇄 명령이 떨어진 상태였으나 여러 공무원들에게 뇌물을 주며 영업을 지속해 왔습니다.

당시 호프집 주인은 학생들이 화재로 대피하려 하자 돈을 내라며 소리치다가 화재가 난 것을 알자 자신만 아는 비상구를 통해 학생들을 버리고 탈출했습니다. 화재가 나자 바지 사장 이모씨에게 대신 감옥에 들어갈 것을 권유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호프집에 실소유주였던 정성갑은 화재가 난후 도망을 갔었으나, 4일 후인 11월 3일 충남 대천에서 자수를 합니다. 그가 잡히며 많은 공무원들이 뇌물을 받은 혐의로 조사를 받게 되는데 그 수만 백여명에 달했습니다. 업소에 불법 영업을 눈감아 준 혐의를 받은 경찰 공무원, 단속을 무마해주는 대가로 뇌물을 받은 혐의로 시청과 구청 공무원, 소방설비를 제대로 점검하지 않은 혐의로 소방공무원, 정성갑이 매달 20만 원씩 건넸다고 진술한 축현파출소 경찰, 언론에 공개된 비밀상납 장부와 정성갑 수첩에 이름이 적혀 있는 경찰들도 모두 조사를 받게 됩니다.

하지만 경찰과 구청공무원 등 모두 21명이 구속기소되는 선에서 사실상 마무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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