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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부대의 시위 진압 구실 ‘위수령‘, 68년 만에 폐지...문재인 대통령 “감회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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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톱스타뉴스 김희주 기자) 정부는 11일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 주재로 국무회의를 열고 4·27 남북정상회담의 후속 조처를 뒷받침할 판문점선언 비준동의안을 의결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정국 당시 군이 위수령을 근거로 촛불집회 무력진압을 논의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논란이 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11일 국무회의에서 위수령 폐지 안건이 통과된 것과 관련해 개인적인 짧은 소회를 밝혔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오후 춘추관 정례브리핑에서 “1950년에 만들어진 위수령이 68년 만에 오늘 정식으로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폐지됐다”며 “문 대통령은 폐지된 순간 ‘위수령이 폐지가 됐다. 참 감회가 깊다’고 간단하게 말했다”고 밝혔다.

앞서 국방부는 지난 7월 4일 ‘위수령 폐지령안’을 입법 예고한 바 있다. 입법 예고한지 69일 만에 폐지령안이 심의 의결된 것이다.

국방부는 위수령 폐지령안을 입법 예고하면서 “위수령은 1950년 3월 27일 육군의 질서 및 군기유지, 군사시설물 보호 목적으로 최초 제정되었다”면서 “이러한 위수령은 최근 30년간 시행 사례가 없는 등 실효성이 낮고, 상위 근거 법률의 부재로 위헌 소지가 많다”고 폐지 배경을 설명한 바 있다.

뉴시스 제공
뉴시스 제공

위수령은 1950년 3월 육군 부대 경비를 위해 대통령령으로 제정됐다. 군부대가 자기 보호를 위해 외부 침입을 막는다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경비를 위해 필요할 경우 군부대가 주둔지 밖으로 출동할 수 있다는 ‘독소조항’이 담겼다. 이 조항은 군사정권 시절 군부대가 집회나 시위를 진압하는 구실로 작용했다.

1965년 8월 한일협정 비준안 국회 통과 직후 서울 일대 병력 출동, 1971년 교련 반대 시위 때 서울 9개 대학에 대한 병력 투입, 1979년 김영삼 국회의원직 제명 당시 마산 일대 병력 출동 등이 위수령을 발동한 사례다.

위수령은 위수지역의 사령관이 재해 또는 비상사태 시 서울시장과 부산시장, 도지사의 병력 출동 요청을 받을 때 육군참모총장의 승인을 얻어 병력을 출동시킬 수 있도록 하는 조항이 있었다. 이 조항은 육군총장이 인사·교육·행정 등 군정권(軍政權)은 있지만, 군령권(軍令權)은 행사할 수 없게 되어 있는 국군조직법과도 배치된다.

특히 위수령은 ‘적극적·공격적인 병기 사용’은 금지하고 있지만, ‘자위 차원’이나 ‘병기를 사용하지 않고는 진압할 수 없을 때’ 등 위급한 상황에서는 무기를 사용할 가능성도 열어둬 시대에 맞지 않은 법령이라는 지적이 있었다.

국방부는 지난해 3월 한국국방연구원(KIDA)에 ‘위수 관련 제도의 개선 방안 연구’를 의뢰했고, KIDA는 위수령을 존치할 필요가 없다는 연구 결과를 제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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