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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자가 佛 피노컬렉션 미술관에 418개 거울로 만든 무한의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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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따리 작가' 김수자, '부르스 드 코메르스' 한국작가 첫 개인전
기획부터 실현까지 전권 부여…중앙 돔 공간 바닥 거울로 덮는 '호흡' 선보여

(톱스타뉴스 편집팀 기자) 프랑스 파리의 중심인 파리1구에 있는 사립 미술관인 부르스 드 코메르스-피노 컬렉션(BdC). 파리의 옛 상업거래소 건물을 일본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리모델링해 미술관으로 바꾼 BdC는 근현대 미술품 1만여점을 소장한 유명 컬렉터인 프랑수아 피노의 컬렉션(소장품)을 선보이는 전시장이다.

2021년 5월 개관 이래 유명 미술관이 즐비한 파리에서도 현대미술을 보기 위해서라면 꼭 찾아야 할 곳으로 떠오른 BdC가 새 전시를 열며 메인 전시 공간을 한국 작가로는 처음으로 '보따리' 작가 김수자(67)에게 내줬다.

연합뉴스 제공

BdC에서 20일(현지시간) 개막한 기획 전시 '흐르는 대로의 세상'은 피노의 소장품 중 1980년대 이후 작품 40여점을 선보이는 자리다.

김수자 작가는 이 중 '카르트 블랑슈'(전권 위임) 프로젝트 작가로 초대받아 이번 전시의 메인 작가 역할을 하고 있다. '백지 수표'라는 뜻의 카르트 블랑슈는 작가에게 전시의 기획부터 실현까지 전권을 부여하는 프로젝트다.

연합뉴스 제공

BdC는 카르트 블랑슈 프로젝트를 위해 전시장의 메인 공간이자 상징적인 공간인 로툰다 전시관을 비롯해 로툰다를 둘러싼 24개의 쇼케이스, 지하 공간까지 주요 전시장을 김수자 작가의 작품으로 채웠다.

김수자 작가는 인류 무역의 역사를 묘사한 19세기 프레스코화가 장식된 유리 돔 천정의 지름 29m 크기 원형 전시장 바닥에 418개의 거울을 설치하는 '호흡' 작업을 통해 전시장을 거대한 구체(球體)로 탈바꿈시켰다.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로툰다 전시장은 너무 완벽한 돔이고 아름답고 장엄한 공간이라서 작가라면 누구나 이곳에서 전시하고 싶을 것"이라면서 "필연적이라고 할까, 결정적이라고 할까, 이곳을 보자마자 바로 거울로 채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바닥을 채운 거울에 전시장 내부의 모든 것이 반사되면서 만들어내는 풍경을 바라보는 순간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물속으로 뛰어드는 것 같은 느낌에 주저하며 거울 위로 조심스레 발을 내디딘 관객은 비현실적인 경험에 압도된다. 거울 속에서 천정의 돔은 바닥이 되면서 공간의 질서도 뒤집힌다.

연합뉴스 제공

'호흡' 작업은 전시장을 새로운 느낌의 공간으로 변화시킬 뿐 아니라 서로 다른 것을 아우르는 동시에 집이나 이주 등을 상징하는 '보따리' 작업에서 시작해 이주와 정체성, 경계 등을 이야기해왔던 작가의 그간 작업 개념을 관통하는 것이기도 하다.

작가는 "로툰다 건축구조 자체를 모든 것을 싸고 있는 보자기로 봤다"면서 "두 개의 반구를 붙여 달항아리를 만들 듯이 실재하는 공간과 거울이 만들어낸 가상의 공간이 만나 하나로 연결되는 세계를 만들어 낸다"고 설명했다.

작가는 이어 "관객도 일종의 퍼포머(공연자)가 된다"면서 "이 (공간) 안에 들어온 관객이 거울을 보면서 공간과 관객이 만나고 거울이 비추는 가상의 신체와 실제 관람객들의 신체가 만나는 데서 일어나는 대화, 이런 모든 것들이 그동안 해 왔던 바느질 작업 개념의 연장선에 있다"고 덧붙였다.

에마 라비뉴 BdC 관장은 부임할 때부터 카르트 블랑슈 프로젝트의 작가로 김수자 작가를 염두에 뒀다고 소개했다.

연합뉴스 제공

라비뉴 관장은 "2016년부터 여러 프로젝트에서 김수자 작가와 함께 했다"면서 "관장으로 부임했을 때 (로툰다) 공간을 보면서 김수자 작가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이탈리아 베네치아에 있는 또 다른 피노 컬렉션 미술관인 푼타 델라 도가나에서 김수자 작품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은 피노도 라빈 관장의 생각에 흔쾌히 동의하면서 이번 프로젝트가 성사됐다.

피노는 "로툰다에 대한 인식을 뒤집기 위해 거울을 사용하자는 작가의 아이디어가 마음에 들었고 특히 방문객에게 단순히 관람자 이상의 역할을 부여하고 거의 무한한 깊이를 지닌 공간 배치 속에서 주제가 될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도 좋았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제공

로툰다 전시관을 빙 둘러싼 24개의 쇼케이스도 모두 김수자 작가의 작품으로 채워졌다. 보자기 작업의 연역적 오브제인 달항아리부터 작가의 팔을 캐스팅한 조각까지 24개 작품이 쇼케이스 하나하나에 놓였다. 19년간 사용해 작가 몸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는 요가매트, 굽는 과정에서 생긴 갈라짐(크랙)을 그대로 살린 도자기, 천체 사진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파리의 도시 불빛을 찍은 사진, 지난해 멕시코에서 했던 퍼포먼스를 담은 사진, 세상을 떠난 사람이 생전 실제 사용했던 물건들을 싼 보자기 등 작가의 핵심 작업 개념들을 담은 작품들이다.

지하공간에서는 피노 컬렉션 소장품이기도 한 김수자 작가의 대표작 '바늘 여인'도 상영된다. 상하이, 델리, 도쿄, 뉴욕의 번잡한 도시를 배경으로 부동자세로 서 있는 작가의 뒷모습을 담은 4채널 퍼포먼스 영상이다. 2010년부터 2019년까지 세계 여러 대륙을 옮겨가며 천을 둘러싼 문화 모자이크를 그려낸 16mm 필름 영상 연작 '실의 궤적' 여섯 편 전편이 처음으로 한데 모여 상영된다.

연합뉴스 제공

지난해 9월께 전시 제안을 받았다는 작가는 "그동안 40여년간 보따리를 중심으로 끊임없이 다른 각도에서 질문하고 실험한 여러 형식의 작업을 이곳에서 보여줄 수 있겠구나 싶어 기뻤다"라고 말했다.

작가에게 이번 전시는 작가의 과거와 현재를 구분지었다는 데서도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지상 전시장에 놓인 작품은 모두 흑백이거나 갈색 등 단색조 작업인 데 반해 지하 공간에는 색색의 보따리와 컬러 영상 작업을 배치해 색과 무색 작업을 의도적으로 분리했다.

작가는 "작가 커리어 단계에서 지금 내 상태는 무색의 단계라고 할 수 있고 색이 있는 작업을 보여주는 지하 공간은 과거라고 할 수 있다"면서 "언젠가는 다시 색이 있는 작업이 현재로 돌아올 것"이라고 말했다.

작가는 이번 전시 외에도 상반기에만 여러 전시가 예정돼 있다고 소개했다. 네덜란드 라이덴의 라켄할시립미술관에서 이달 초 전시가 시작됐고 다음 달에는 미국 뉴욕의 갤러리에서도 전시가 예정돼 있다. 다음 달 베네치아비엔날레 기간 열리는 한국관 건립 30주년 전시에도 김수자 작가 작품이 포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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