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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가 된 킬러, 쓸쓸함이라는 적을 상대하다…뮤지컬 '파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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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모션 활용한 액션 눈길…구병모 원작 소설로 문학적 표현 곁들여

(톱스타뉴스 편집팀 기자) 40년간 청부살인에 종사하며 닳고 닳은 60대 할머니의 육체는 마음과 같이 움직이지 못하고 고장 신호를 보낸다.

냉정하게 목표만을 쫓던 정신도 흐려져 업무에 방해가 되는 동정심과 연민이 끊임없이 머릿속을 흔든다.

연합뉴스 제공

주인공 조각이 썩은 과일의 녹아내린 껍질과 뭉그러진 살을 바라보며 늙어 쓸모없어진 육체와 정신을 떠올리는 이유다. 노화와 함께 찾아온 쓸쓸함이라는 감정을 상대하는 조각은 어떤 적을 만났을 때보다도 무력하게 무너진다.

연합뉴스 제공

지난 15일 서울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에서 개막한 창작 초연 뮤지컬 '파과'는 여성 킬러인 주인공 조각이 쓸쓸함에 맞서는 법을 배우는 이야기다.

극 중 앳된 나이에 킬러가 되어 생존만을 위해 살아온 조각은 모든 감정을 멀리한 채 노년을 맞은 인물로 그려진다. 언제 죽음을 맞이할지 모르는 그는 기르는 개에게 동정심을 느끼지 않으려 경계하고, 이성을 마주했을 때 느끼는 호감을 감추지 못하고 황급히 자리를 피하기도 한다.

조각이 갖춘 뛰어난 싸움 기술은 모든 감정을 버린 대가로 얻은 능력이다. 조각은 총과 칼은 물론 두르고 있는 스카프까지 무기로 활용하는 날카로운 판단력으로 청부살인 업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러나 경력이 쌓일수록 그를 향한 원한을 품는 인물 역시 늘어났기에 더욱 인간관계를 기피하게 된다.

작품은 조각의 손에 아버지를 잃은 소년 투우를 통해 상실로 인한 쓸쓸함의 감정을 주인공에게 일깨운다. 조각은 20년에 걸쳐 복수를 다짐했다는 투우와 맞서며 과거 자신이 떠나보내야 했던 인연을 돌아보고 비로소 자신의 연약한 내면을 직시하게 된다.

관객 역시 강인해 보였던 인물들의 여린 내면을 바라보며 감추고 살아왔던 쓸쓸함을 발견한다. 노화로 인한 감정의 변화가 낯선 젊은 관객도 인물들의 표현을 보며 그 공허함을 어렴풋이 이해한다.

연합뉴스 제공

작품은 구병모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눈을 사로잡는 액션 연기에 문학적인 표현을 곁들여 신선한 인상을 준다. 주인공의 처지를 뭉그러진 과일에 빗댄 대목이나 조각이 경험하는 연민의 감정을 그대로 가사에 담아 인물의 깊이를 살렸다.

액션 장면에서는 '순신', '곤 투모로우' 등에서 신체 움직임이 돋보이는 작품을 선보여 온 이지나 연출의 장기를 감상할 수 있다. 배우들이 서로의 몸을 의지해 적을 공격하는 장면, 열 동작이 넘는 무술 합을 맞춰 격투를 벌이는 장면에서는 세심한 연출과 배우들의 호흡을 실감할 수 있다.

특히 조각과 투우의 전투에서는 인물이 몸을 뒤로 완전히 젖혀 공격을 피하는 등 아찔한 싸움이 벌어지는 가운데, 점멸하는 조명으로 슬로모션 효과를 연출해 몰입도를 높인다. 소설 속에서 두 사람의 공격을 상세히 묘사한 대목은 보이스오버로 표현해 전투 장면의 속도감을 유지했다.

연합뉴스 제공

노년이 되어 새로운 감정을 깨닫는 조각 역에는 차지연과 구원영이 출연하며 20년 만의 복수를 다짐하는 투우는 신성록, 김재욱, 노윤이 연기한다.

2020년 뮤지컬 '세인트 소피아' 이후 4년 만에 무대로 돌아온 배우 구원영은 호소력 있는 목소리로 인물이 경험하는 감정을 충실하게 담아냈다. 자신의 감정을 직시하게 된 조각의 상황을 노래한 넘버 "주어진 모든 상실을 살아야 할 때"가 깊은 울림을 남긴다.

뮤지컬 '파과'는 5월 26일까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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