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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욘' 고선웅 연출 "우리 모두의 인생이 들어간 축소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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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선웅의 첫 입센 희곡 연출…"주제는 쉽게, 표현은 볼만하게"

(톱스타뉴스 편집팀 기자) 8년간의 수감생활을 마친 뒤 또다시 8년을 집 골방에 틀어박혀 지낸 아버지 욘은 아들 엘하르트와 소통하는 법을 모르는 인물이다.

그는 집을 떠나 살겠다는 아들을 향해 "좋은 것만 기억해라"라며 마지막 당부를 건네지만, 아들이 곧장 "좋은 기억이 없으면요?"라고 되묻자 "어쩔 수 없지"라고 멋쩍게 대답할 뿐이다.

연합뉴스 제공

헨리크 입센(1828∼1906)이 만년에 남긴 연극 '욘'은 오래 전 한 가족에게 일어난 갈등을 묘사한다. 권위에만 집착하는 아버지와 아들에게서 결핍을 채우려는 엄마, 부모의 기대에 질려 집을 떠나려는 아들의 이야기에는 현실보다 과장된 부분도 존재한다.

그러나 작품은 가족과의 소통으로 어려움을 느껴본 사람이라면 특정한 지점에서 공감할 수 있는 장면이나 대사를 곳곳에 품고 있다.

고선웅 연출은 11일 세종문화회관 예술동에서 열린 서울시극단 연극 '욘' 연습실 공개에서 "많은 관객분이 이야기 속 인물의 상황을 겪었거나, 경험할 것이거나, 앞으로 그런 상황에 놓이게 될 것"이라며 "우리 인생 모두가 들어간 축소판 같은 연극이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제공

작품은 젊은 시절에 누렸던 부와 명예를 모두 잃고 병든 늑대처럼 칩거하는 남자 욘과 그를 둘러싼 인물들의 갈등으로 절대 고독이라는 주제를 전한다.

자신의 결백을 믿는 욘은 매일 같이 골방을 돌아다니며 과거를 곱씹고, 그런 남편을 지켜본 아내 귀닐은 가정생활에 신물이 난 지 오래다. 여기에 사랑하는 사람에게 버림받은 슬픔을 조카에게서 채우려는 엘라까지 등장하며 집안은 점차 엉망이 되어간다.

욘을 연기한 배우 이남희는 "뭔가 잘못되어 있는 가족이 서로 싸우는 모습을 보면 흡사 막장 아침 드라마를 보는 듯 처절하다"며 "몇백년 전에 쓰인 작품이 어떻게 구현될까 궁금했는데 막상 연기해보니 지금과 전혀 다르지 않다는 인상을 준다. 하나의 생물 같다는 느낌을 받는 작품"이라고 말했다.

몰락한 집안의 희망이 되어버린 아들을 자신이 도맡아 키워야 한다며 옥신각신 다투는 욘, 귀닐, 엘라의 다툼은 처절하다 못해 우스꽝스럽다는 인상마저 든다.

엘라 역 정아미는 "배우들은 다투는 장면이라 할지라도 각을 잡고 멋있게 나오려는 마음이 있는데, 연출은 오히려 각을 무너뜨린다"며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다가도 연출의 지시를 따르면 나름의 재미가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제공

배우들은 작품 속에서 가족과 지독한 다툼을 벌이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주변 누군가의 모습이 떠올랐다고 돌아봤다.

엘하르트 역 이승우는 "작품 속 등장하는 아들의 나이는 지났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어릴 때 추억과 상처가 고스란히 남아있었다"며 "대본을 받을 때부터 아버지가 생각났고, 기억을 마주하는 시간이 어려웠다"고 말했다.

고 연출은 시대가 지났어도 근대극의 대가로 불리는 입센은 여전히 관객에게 통찰을 줄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입센 작품 연출이 처음인 그는 입센이라는 이름이 주는 압박감을 느끼면서도 마음을 움직이는 힘을 느꼈다고 한다.

원작을 각색하고 연출하는 과정에서도 파격을 택하기보다 배우의 에너지가 주는 감동을 살리려 노력했다. 특히 2시간이 넘어가는 원작 공연 시간을 20분가량 줄이고 세대 간 격차 등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주제를 풀어냈기에 쉽게 울림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어려운 연극은 극장에 모인 대다수의 사람에게 쾌락이 아닌 고통을 준다고 생각해요. 관객이 고통을 느끼면 배우들도 연기에 영향을 받죠. 주제는 쉽지만, 미학이나 배우들의 표현은 볼만한 연극을 만들어 보겠습니다."

'욘'은 이달 29일부터 4월 21일까지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공연한다.

연합뉴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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