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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고 싶은 길] 가야 문명 500년을 찾아서…창녕 송현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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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화유산 비화가야 고분군을 걷다

(톱스타뉴스 편집팀 기자) 한반도의 고대는 과연 고구려, 백제, 신라가 지배한 '3국 시대'였을까.

최전성기에 낙동강 동부, 경북 상주, 호남 동부까지 영토를 넓혔던 가야는 기원 전후부터 서기 562년까지 500년 이상 건재했다. 가야를 빼고는 한반도 고대사를 온전히 구성할 수 없으므로 고대 한반도는 삼국시대가 아니라 '4국 시대'라고 규정해야 옳다는 학설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연합뉴스 제공

삼국시대란 가야가 신라에 복속된 562년부터 백제가 멸망한 660년까지 98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 제4의 왕국·찬란한 문명…가야

유네스코가 지난해 9월 가야 고분군 7곳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올린 것은 '제4의 왕국'으로서 가야의 무게를 더했다.

연합뉴스 제공

찬란한 가야 문명을 국제적으로 공인한 셈이 됐다. 고분군은 연맹이라는 독특한 정치체계를 유지하면서 주변의 중앙집권 국가와 병존했던 가야를 실증하는 독보적 증거이며, 동아시아 고대 문명의 한 유형을 보여주는 중요한 유적으로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지녔다는 게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의 평가였다.

가야가 후세에 잊혀 '역사의 미아'가 될 뻔한 것은 문헌 기록의 부재 때문이다. 가야가 국내 문헌에 처음 등장한 것은 멸망 후 500년 이상 지난 뒤 편찬된 '삼국유사'에서이다. 그나마 몇 줄에 그친다.

가야사 연구는 1980년대 이후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바로 '가야 문명을 실증하는 독보적 증거'라고 유네스코가 칭했던 고분 덕분이다. 고분에서 출토된 많은 유물은 철기 문화, 토기 제작술, 음악 등 가야 문명에 다시 빛을 비췄다.

'철의 나라' '토기의 나라'라고 불리는 가야는 해상을 통해 품질 좋은 철을 중국과 일본, 한반도 동북부 지역에 수출했다. 쉽게 부서지지 않는 토기 제작술을 일본에 전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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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가 종국에 신라에 병합된 것은 중앙집권적 정치체제를 이룩하지 못하고 소국가 연맹에 머물렀기 때문이라는 게 정설이다. 소국들의 연맹체였기 때문에 대외의 적을 물리칠 힘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세계유산 등재를 계기로 가야의 정치 체제는 동아시아 고대 문명의 다양성을 구성하는 요소로서 재조명되고 있다.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가야 고분군 7곳에는 경남 창녕군 송현동과 교동 고분군이 포함돼 있다. 나머지 6곳은 김해 대성동 고분군, 함안 말이산 고분군, 고성 송학동 고분군, 합천 옥전 고분군, 경북 고령 지산동 고분군, 전북 남원 유곡리와 두락리 고분군이다.

가야를 구성하는 소국은 김해의 금관가야, 고령의 대가야, 함안의 아라가야, 고성의 소가야, 창녕의 비화가야, 성주의 성산가야, 상주의 고령가야 등이다.

◇ 비화가야 고분군을 걷다…송현이 길

비사벌이라고 일컬어졌던 비화가야 지역인 창녕에는 송현동 고분군과 교동 고분군을 이은 걷기 길이 있다. '송현이 길'이다. 낙동강 동부에서 신라와 국경을 맞대고 거대한 세력을 형성했던 비화가야의 옛 모습을 머릿속에 그려보며 산책할 수 있는 길이다.

또 창녕은 현존하는 것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배가 출토된 곳이다. 이 길에 서면 수천 년 전 선사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고도 창녕의 숨결을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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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현이 길은 창녕박물관에서 시작해 송현동 고분군∼송현동 마애여래좌상∼진흥왕 척경비(만옥정 공원)∼창녕 석빙고∼창녕 향교∼명덕수변생태공원∼교동 고분군을 거쳐 창녕박물관으로 원점 회귀한다. 거리는 4㎞이지만 문화재와 유적을 얼마나 찬찬히 들여다보느냐에 따라 긴 시간이 필요할 수도 있다.

창녕 중심지인 송현동과 교동의 고분군은 비화가야 왕과 지배층의 무덤들이다. 고분들은 가을이면 정상의 은빛 억새밭이 매혹적인 화왕산을 머리 위로 이고, 발밑으로는 평화로운 시가지와 너른 벌판을 내려다보고 있다.

구릉 위에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앉은 고분 무리는 눈부시게 빛났던 옛 문명을 증명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송현동·교동 고분은 봉분이 남아 있는 것이 120여 기이다. 봉분이 남아 있지 않은 180여 기까지 합하면 이곳 고분은 300여 기에 이른다.

창녕군 전체에 산재해 있는 가야 고분은 봉분이 무너지는 바람에 아직 확인되지 않은 것까지 포함하면 적게는 500여 기, 많게는 1천500여 기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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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천500여 년 전의 고분이 이처럼 많이 남아 있다는 게 쉽게 믿기지 않는다. 이집트 피라미드나 잉카의 마추픽추, 신라와 백제의 고분과 견줄 때 현존하는 가야 고분의 가치는 작지 않을 듯하다.

그만큼 고분군이 장대하다. 영남 서부, 호남 동부 등 옛 가야 지역 전체에서 발견된 고분군은 1천100여 건에 이른다는 게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의 설명이다. 고분군을 구성하는 개개 고분이 모두 몇 개인지는 정확한 발굴 조사를 진행하기 전에는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신비의 베일에 싸인 가야 문명의 참모습을 밝혀줄 타임캡슐들이 후세 연구가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셈이다.

연합뉴스 제공

'송현이'는 2007년 송현동 15호 고분에서 발견된 순장 인골에 붙여진 이름이다. 거의 손상되지 않은 이 인골을 대상으로 국내 최초로 복원 프로젝트가 진행됐다. 여러 기관의 융합 연구 결과 인골의 주인공은 1천500여 년 전 주인을 따라 순장된 16세 여성으로 밝혀졌다.

분석 결과 송현이는 빈혈을 의심할 수 있는 흔적을 가졌으며 무릎 연골이 손상돼 있었다. 생전에 꿇어앉기를 반복했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송현이는 왼쪽 귀에 금동 귀걸이를 달고 묻혔는데 지배층의 장신구를 착용하고 숨졌다는 점에서 그의 죽음이 예우받았다는 해석을 낳고 있다.

송현이는 기록으로 전해지던 가야의 순장 풍습을 확인시킴으로써 고대 가야 사회를 엿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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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통 배

지금까지 발견된 선사 시대 배 중 가장 오래된 것은 어디서 출토됐을까. 하고 많은 해안가나 해양 국가가 아니라 한반도 내륙인 창녕이다.

낙동강 하구부에서 상류 쪽으로 70㎞ 정도 떨어진 창녕 부곡면 비봉리 패총에서 2005년 한국은 물론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추정되는 목선이 발견됐다. 이 배는 6천여 년 전 신석기 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200년 이상 된 굵은 소나무 기둥 중간에 숯불을 얹어 속을 태운 뒤 파내는 방법으로 만든 통 배이다. 현재 국립김해박물관에 보관된 이 목선의 잔해는 습지 깊숙이 묻혀 산소와 접촉이 차단됨으로써 썩지 않았다.

이 배는 제작 시기가 일본이나 이집트에서 발견된 고대 목선보다 수천 년 앞선다.

◇ 창녕은 '제2의 경주'

창녕은 '제2의 경주'라고 불릴 만큼 문화재가 많다. 선사시대 유물만 해도 최고(崔古) 목선뿐 아니라, 한반도에서 가장 오래된 망태기, 똥 화석 등이 발견됐다. 한반도에서 똥 화석이 나온 것은 창녕에서가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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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면에 있는 지석묘는 북두칠성 형으로 배치된 칠성바위 중 하나였다. 칠성을 구성하는 7개 지석묘 중 나머지 6기는 일제 강점기에 도로공사 자재 등의 용도로 파괴됐다.

기원전 5세기쯤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이 지석묘는 다른 고인돌처럼 구릉 밑이나 평지에 있지 않고 구릉의 정상부에 있다. 특이한 입지 조건으로 인해 학술 가치가 크다.

창녕박물관은 지방 박물관이지만 석기, 철기, 토기 등 전시 유물의 대부분이 복제품 아니라 지역에서 발굴된 진품이다. 전시 문화재의 역사성, 진실성이 크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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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비의 일종으로, 새 점령지를 다스리는 내용을 담은 신라 진흥왕 척경비는 화왕산을 뒷배로 만옥정 공원에 당당하게 서 있다.

일제 강점기에 소풍 나온 학생이 발견한 척경비는 원래 있던 자리에서 수백m 옮겨졌다. 자연석의 넓은 면을 갈아 매끈하게 만든 뒤 27행의 비문을 새겼다.

비문 내용은 순수의 연월(561년 2월), 사적, 수행원의 3부분으로 나뉘는데 후반부는 글자가 선명해 판독이 가능하다.

북한산 소재 북한산비, 함경남도 황초령비, 함남 마운령비와 함께 창녕 척경비는 지금까지 발견된 4개 진흥왕 순수비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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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빙고는 겨울에 채취해 여름까지 사용했던 얼음을 보관했던 창고이다.

현재 보물로 지정된 6개의 석빙고 중 창녕 석빙고, 영산 석빙고 등 2개가 창녕에 있다. 창녕 석빙고는 외부에서 보면 큰 고분처럼 생겼는데 석빙고의 전형적인 양식을 보인다.

석빙고는 삼국시대부터 만들어졌으나 보물로 지정된 현존 석빙고들은 모두 조선시대에 지어졌다. 후기 통일신라 시대 양식을 보이는 송현동 마애여래좌상, 창녕 향교, 명덕수변공원 등도 나그네를 반기는 문화재와 시민 휴식처이다.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4년 3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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