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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소설 '문신' 완간한 윤흥길 "필생의 역작이지요"(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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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한 가족의 엇갈린 신념과 욕망 그린 대하소설
1~3권 출간 후 5년 공백 끝 완간…후배 작가들에 "유행 따르지 말기를"

(톱스타뉴스 편집팀 기자) "차마 대하소설이라 부를 수가 없어서 저는 '중하소설'이라는 신조어로 제 작품을 부르고 있어요. 마지막 두 권을 쓰는 데 5년이나 걸려 부끄럽기도 합니다."

소설가 윤흥길(82)은 27일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 열린 '문신' 완간 기자간담회에서 전 5권짜리 '문신'을 대하소설로 부르기가 부끄럽다며 겸손해했다.

연합뉴스 제공

이날 간담회는 '문신'의 마지막인 4권과 5권이 출간된 것을 기념해 출판사 문학동네가 마련한 자리였다.

'문신'은 황국신민화 정책과 강제징용이 한창이던 일제강점기를 산 한 가족의 엇갈린 신념과 욕망, 갈등을 치밀하게 그린 장편소설이다. 작가는 혼돈으로 가득한 폭력적인 시대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통과해나간 다양한 인간 군상을 통해 시대를 초월한 인간 본연의 모습을 풍자와 해학으로 담아냈다.

제목 '문신'은 전쟁에 나가 죽으면 시신으로라도 고향에 돌아와 묻히고 싶다는 염원으로 몸에 문신을 새기는 '부병자자'(赴兵刺字) 풍습에서 따왔다. 이 풍습은 전장에 나가기 전, 향후에 시신으로 발견됐을 때 가족들이 식별할 만한 표식을 몸에 새긴다는 의미도 있다.

"어릴 적 6·25 때 동네 청년들이 입영 통지를 받고 입영 직전에 팔뚝이나 어깨에 문신 새기는 걸 자주 봤어요. 그러고 나서 며칠 동안 코가 삐뚤어지게 술을 마시고 떠들고 동네 시끄럽게 하다가 군대에 가는 걸 봤는데 '저 형들이 왜 그럴까' 하는 의문을 갖고 있었는데 나중에 '부병자자'의 일환이라는 걸 알게 됐지요."

이 소설은 작가가 '중하소설'로 애써 낮춰 부르긴 했지만, '장마'·'완장'·'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 등의 전작들을 통해 한국 현대사의 아픔을 웅숭깊은 문학세계로 승화시켜온 작가 윤흥길의 필생의 역작이라 할 만한하다.

첫 집필부터 탈고까지 무려 25년이 걸렸고, 200자 원고자 6천500매, 출간 도서 기준 2천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이다.

연합뉴스 제공

당초 4·5권은 1~3권을 내고서 반년 뒤에 출간될 예정이었지만, 작가의 갑작스러운 건강 악화로 작업이 늦어져 뒤늦게 빛을 볼 수 있었다. 이 소설의 1~3권이 2018년 12월에 출간됐으니 완간까지는 5년이 넘는 공백이 있었다.

"(마지막) 두 권을 쓰는 데 5년이 걸려 부끄럽기도 합니다. 심혈관 질환으로 그동안 심하게 세 번 정도 아팠어요. 아파서 치료받고 고생하는 건 괜찮았는데, 그것 때문에 작품이 늦어져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지요."

작품 맨 끝에 수록된 '작가의 말'에 따르면 '문신'은 한민족 고유의 귀소본능을 작가가 기독교적 귀소본능과 연결 지어 쓴 작품이다.

"기독교인들은 사후에 돌아갈 천국의 본향(本鄕)을 사모하는 믿음으로 지상의 삶을 살아간다. 본디의 고향을 의미하는 본향이니까 고향보다 상위개념에 속하는 셈이다. 인생의 출발점인 고향으로 되돌아가고자 하는 민족 구성원들의 귀소본능과 생명의 시원인 본향으로 되돌아가고자 하는 기독교인들의 귀소본능이 오면가면 만나 악수하는 형국이다. 과거의 고향과 미래의 본향은 어쩌면 동일선 또는 연장선 위에 있는 곳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신'을 집필하는 동안 내 머리를 줄곧 떠나지 않았다."('작가의 말'에서)

작품에서는 판소리 음조를 닮은 듯 투박한 문장과 걸쭉한 남도 사투리 표현들이 특히 눈에 띈다.

"전에는 독자들에게 뭔가 서비스를 하는 문장을 썼다면 이 작품은 좀 불친절하기로 마음을 먹었어요. 판소리 율조를 흉내 내기 위해 어순을 바꾸고 조사와 토씨를 많이 생략했습니다. 소설 공간이 전라도이기도 하지만 우리 민족 정서의 하나를 이루는 판소리와 그 안의 토속정서 같은 걸 나타내려다 보니 그런 문장이 됐지요."

걸쭉하고도 찰진 다채로운 남도 지방의 욕도 이 작품을 읽는 재미 중 하나다.

작가는 "어린 시절 우리 이웃집에 욕쟁이 아주머니가 한 분 계셨는데, 그 아주머니가 했던 온갖 욕들이 기억난다며 "(이 작품에 나오는 욕에) 저작권을 가지신 분"이라며 웃었다.

'문신'은 그동안 그가 추구해온 문학의 길과 노년의 번뇌·고민이 집약된 소설이기도 하다.

연합뉴스 제공

"제 필생의, 모든 힘을 기울여서 노력 끝에 얻어낸 작품이지요. 차기작으로 조선조 말기의 이야기를 쓰려고 자료를 모으고 구상 중인데 내년쯤 집필에 들어갈 것 같습니다. 그 작품이 나와서 또 필생의 역작이라고 말하면 꼴이 우스꽝스러울 것 같아서, 다음 작품은 빼놓고 지금까지 쓴 것 중에 ('문신'을) 필생의 역작이라 자부하고 있어요.(웃음)"

한국 현대사의 모순과 비극에 천착해 왜곡된 역사 현실과 삶의 부조리, 그리고 이를 극복하려는 인간의 노력을 꾸준히 형상화해온 그는 후배 작가들에게는 유행을 따르지 말 것을 조언하기도 했다.

"한 사회의 문학적 경향이 패션화하는 것에 반대합니다. 어느 해 여름 거리에 나가보니 모든 여성이 새카만 색의 복장을 하고 있어 놀랐어요. 당시 유행이라고 하더군요. 만약 문학에도 한여름에 검정 옷 일색으로 입는 그런 현상이 온다면, 그건 그 나라의 불행일 거예요. 작가 개인의 성향과 문학관이 각기 다르다면 백인백색의 소설이 나와야 합니다."

문학동네. 전 5권. 각 권 400쪽 내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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