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uantcast

AI가 조율하는 전시…새로운 관람 경험 제안하는 필립 파레노展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리움미술관 최대 규모 전시…전시 기간 작품 계속 진화하고 변화
배우 배두나 협업해 AI에 목소리 부여…"전시 안에서 마음껏 헤매도 돼"

(톱스타뉴스 편집팀 기자) 서울 한남동 리움미술관의 야외 데크에 탑처럼 보이는 거대한 구조물이 들어섰다. 높이 13.6m의 구조물에는 긴 전선들이 달린 물체가 천천히 위아래로 오르내리고 전선들은 마치 살아있는 듯 조금씩 들썩인다.

거대한 기계탑같은 이 구조물은 리움미술관에서 28일 시작하는 프랑스 작가 필립 파레노(60)의 개인전 '보이스'의 모든 요소를 조율하는 일종의 인공지능인 '막'(膜)이다.

연합뉴스 제공

파레노는 데이터 연동과 인공지능 등 최신 기술을 활용해 영상, 사진, 조각, 드로잉 등 다양한 매체와 전시 형식으로 새로운 전시 경험을 제안하는 작가다.

야외 데크부터 로비까지 6개 공간을 채우며 리움미술관 사상 최대 규모로 진행되는 전시는 야외에 놓인 '막'으로 시작한다. '막'에는 42개 센서가 달려 있어 기온과 습도, 풍량, 소음, 대기오염도 등을 실시간으로 수집하고 이 데이터로 전시작품들이 활성화된다.

연합뉴스 제공

26일 기자들과 만난 작가는 "전시 때는 항상 외부에 마이크나 기상 측정 도구 같은 센서를 배치해 외부의 데이터가 내부에 있는 작품에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해 왔다"고 설명했다.

"미술관이라는 곳은 항상 닫힌 공간, 말하자면 외부 세계에 등을 돌리고 있는 곳이죠. 내부에 아주 비싼 작품들이 진열돼야 하기 때문에 필터를 걸어 빛을 들인다든지, 온습도를 조절해야 하는 일종의 버블 같은 곳이죠. 그런 버블에 틈을 내고 싶어 센서를 사용했습니다. '막'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사용했던 센서들을 통합하면 어떤 캐릭터가 만들어질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캐릭터는 비록 무엇인가를 볼 수는 없지만 많은 것들을 정말 예민하게 느끼는, 감각이 많은 캐릭터라고 생각했죠."

전시장 곳곳에서 들려오는 알 수 없는 소리는 배우 배두나의 목소리를 바탕으로 인공지능 '막'이 만들어낸 새로운 목소리 '델타 에이'(δA)다. 델타 에이는 동사-주어-목적어의 어순을 가진 새로운 언어 체계이기도 하다. 작가는 '왕좌의 게임'에서 도트락 부족의 언어를 만들었던 언어학자 데이비드 피터슨과 협업해 델타 에이를 창조했다.

"'막'에서 전송된 신호와 데이터는 그 자체로 언어가 되기도 합니다. 제가 생각한 이 상상의 캐릭터가 이 모든 것을 느끼고 그것을 언어화해서 말을 하게 되는 거죠. 특히 이 캐릭터, 저는 '크리처'(creature)라고 부르는 이 캐릭터에게 인간의 목소리를 부여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배두나 배우의 목소리를 빌려 그의 목소리로 이 캐릭터가 말을 할 수 있게 했죠."

M2 전시장의 지하 1층은 석양이 비추는 듯한 분위기의 오렌지빛으로 연출됐다. 세기말 같기도 한 느낌의 전시장에서는 알아들을 수 없는 델타 에이 소리가 들려오는 가운데 현실과 초현실, 가상과 실재가 모호하게 혼재된 세계가 펼쳐진다.

연합뉴스 제공

곳곳에는 녹아내리고 흙이 섞여 지저분해진 눈사람이 놓여있고 물고기 모양 풍선은 전시장을 둥둥 떠다닌다. 전시 기간 눈사람이 녹아 없어지면 다시 얼려서 전시되고 물고기 모양 풍선은 전시장의 기압과 온도에 따라 이곳저곳을 예측할 수 없이 돌아다닌다. 천정에 달린 회전하는 스피커는 전시장의 소리를 수신하고 다시 이를 기반으로 다른 소리를 내보낸다.

M2 지하 전시장이 오렌지색 세계라면 1층 전시장은 파란색의 방이다. 이곳에서는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기작들을 볼 수 있다.

블랙박스 전시장은 영화관이 돼 기계장치를 통해 메릴린 먼로의 시선과 음성, 필체를 구현한 '마릴린' 등 영상 3편이 상영된다. 블랙박스에서 에스컬레이터로 연결되는 그라운드갤러리는 키네틱 아트(움직이는 작품)들로 채워졌다. '깜빡이는 불빛 56개'와 '움직이는 벽'은 제목 그대로 깜박이고 움직이며 천정에는 말풍선 모양의 풍선들이 무중력 상태로 표류한다. 이들 작품의 움직임 역시 '막'이 수집한 데이터와 연동돼 있다. 작가는 그라운드갤러리 공간을 두고 "나에게는 작품들이 서로 춤을 추는 연회장처럼 느껴지는 공간"이라고 표현했다.

연합뉴스 제공

블랙박스와 그라운드 갤러리를 연결하는 두 대의 에스컬레이터에서는 전시 기간 관람객과 상호 작용하는 퍼포먼스가 진행된다. 직접 퍼포먼스를 하는 대신 인터프리터(해석자)를 고용해 연출된 상황을 재현하게 하는 식으로 작업하는 독일 작가 티노 세갈에게 의뢰해 제작된 신작이다.

전시장에서 작품 하나하나의 의미를 찾아내려는데 익숙한 관람객에겐 당혹스러울 수 있는 전시다. 이에 대해 전시를 기획한 김성원 리움미술관 부관장은 "파레노의 전시는 '보는 전시'가 아니라 하나의 공연과도 같다"고 설명했다.

김 부관장은 "파레노는 처음부터 오브제를 만드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고 미술에서 다뤄지지 않았던 시간성에 주목한 작가"라면서 "전시장에서 그림 같은 것을 기대한 관객에게 낯선 경험을 제안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작품이 계속 진화하고 변화해 그 과정을 경험하게 하는 전시"라면서 "파레노 전시에서는 시간을 경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연합뉴스 제공

작가도 관객들에게 "전시 안에서 마음껏 헤매도 된다"고 말했다.

"이 전시에서 관객들에게 어떤 식으로 보라고 지시된 것은 없습니다. 원하는 대로 이동하면서 어떤 영상을 볼지, 보지 않을지 결정할 수 있고 어떤 순서대로 봐야 한다는 것도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전시가 시작하는 부분과 끝나는 지점도 명확하지 않습니다. 극장에서 영화를 볼 때는 조명이 꺼진 뒤 앞으로 2시간 정도 영화를 보게 될 것이고 불이 켜지면 그곳을 떠나야 한다는 식으로 프로토콜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이 전시에서 어떤 식으로 시간을 보낼지는 여러분에게 달려 있습니다."

전시는 7월7일까지. 전시가 끝난 뒤 야외 데크의 '막'이 있던 자리에는 다른 작품이 설치될 예정이다. 유료 관람.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모두에게 알리고 싶은 뉴스라면 ? ‘이 기사를 추천합니다’ 버튼을 눌러주세요.
추천을 많이 받은 기사는 ‘독자 추천 뉴스’에 노출됩니다.

240201_광고보고투표권

기사 추천 기사를 추천하면 투표권을 받을 수 있습니다.
If you recommend an article, you can get a voting ticket.


모바일 모드로 보기 Go to the Mobile page 모바일 모드로 보기 Go to the Mobile page.

이 기사를 후원해 주세요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해외토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