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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드나무 로고 티저 광고 시작” ‘꼬꼬무’ 독립운동가 서재필이 선물한 그림은? … ‘넵코 프로젝트’ 제안 조국 위해 참여[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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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톱스타뉴스 배수정 기자)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에서는 미국 첩보국 최초의 한인 공작원들의 이야기기를 전했다. 

20일 방송된 sbs 예능프로그램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에서는 이야깃꾼으로 장도연, 장성규, 장현성이 리스너로 가수 최예나, 배우 이병준, 래펴 겸 음악 프로듀서 라이머가 출연해서 ‘Only one-요원 A의 비밀’ 편으로 들려줬다.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방송캡처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방송캡처
1945년 8월 미국의 산타 카탈리나섬, 인적이 드물어 조용하기만 하던 그곳에서 얼마 전부터 이상한 일들이 벌어졌다. 섬 곳곳에서 짐승들의 사체가 무더기로 발견되기 시작한 것이다.

주민들은 그들은 미군의 행위라 추측했지만, 군인이라기에는 어딘가 이상한 점이 있었다. 바로 정식 부대라면 있어야 할 부대 마크, 계급장이 없었던 것이었는데 그들의 생김새를 자세히 살펴 보니, 모두 낯선 외모의 조선인들이었다.

도대체 그들의 정체는 무엇이고 왜 그들은 머나먼 미국에서 수상한 훈련을 받고 있었던 것일까. 당시는 2차 세계 대전이 한창이던 때로, 일본의 선제공격을 받은 미국은 그에 반격할 계획을 세웠다. 이름하여 냅코 프로젝트(NAPKO PROJECT)였다, 일본이 점령한 조선 땅에 최정예 특수요원을 잠입시켜 일본군 무력화시킨다는 것이다. 

미국의 특수공작기관인 OSS(전략첩보국 CIA 전신)는 1944년 중반부터 대일 전 승리를 위한 방안을 다각적으로 연구하고 중국 전구를 토대로 한국인들을 이용한 한국, 만주, 일본 본토에 대한 침투 계획을 수립했다.

한국 광복군 제2지대와 제3지대를 중심으로 한미 연합에 의해 무전 훈련, 유격 훈련, 폭파 훈련 등의 독수리 작전이라 불리는 군사 훈련을 실시했다. 훈련의 목표는 한반도로 침투해 통신망을 구축하고 궁극적으로 일본 본토로 진입하기 위한 사전 정지 작업을 준비했다.

더불어 OCC 워싱턴 본부는 1944년 말~1945년 초에 재미 한인 중 민간인과 군인, 미국 내 포로수용소 출신의 한인 포로, 버마주에서 탈출한 학병 출신 한인 등을 모집해 냅코 프로젝트란 이름의 한반도 침투 작전을 추진하였는데 이를 통해 한반도는 물론 일본 본토까지 교란 시켜 미일전의 승리를 도모하고자 했다. 

이것은 재미 한인들을 훈련시켜 공중 혹은 잠수함으로 한국에 침투시키기 위한 특수작전이었다. 넵코프로젝트의 목적은 한국 내 당장 침투 할 수 있게 준비하고, 궁극적으로 일본에 침투하여 첩보 지하조직 조성등의 활동을 하고, 사보타지와 무장 저항운동으로 이어지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1조에 5명 이내 10조의 공작원을 파견하고 체포와 고문으로 조직의 실체가 드러나지 않기 위해 매조의 인원은 다른 조의 인원을 서로 모르게 훈련시켰다. 공작원들이 한국에 상륙할 때는 잠수함을 이용하고 반일 감정이 농후한 지방을 선택해 지하 훈련소를 만들었다.

무장 유격활동을 전개한다는 방침이었는데 공작원의 침투는 인천 앞바다 섬들을 통한 서울 c침투, 진남포주 경유 평양 침투, 충난 서산 침투, 진남포 경유 황해도 침투, 전남 목포 앞바다 침투 등 여러 조를 계획했다.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방송캡처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방송캡처
OCC 워싱턴 본부는 COI의 1기생으로 특수부대 101지대 출신 장석윤을 1944년 7월 17일 차출하면서 냅코 프로젝트에 구상을 실행했다. 그중 단연 눈에 띄는 요원 한 명은 에이전트 A였다. 요원 A는 50세로 냅코 프로젝트에 참여함은 물론 그의 사업체를 작전에 이용하는 데 기꺼이 동의했다.

고령임에도 어려운 훈련을 모두 소화해 내고 조선에서 유명한 사업체를 운영하던 요원 A는 바로 유한양행의 창업주 유일한 박사였다. 의약품 회사를 이끌던 그가 어떻게 ‘냅코 프로젝트’를 참여하게 됐다. 

장석윤은 특수공작에 대한 경험이 풍부해 이번 작전 수행의 적임자였고 위스콘신주 맥코이포로 수용서의 한인 포로 가운데 공작원을 확보해 냅코프로젝트를 구체화하는데 기여했다. 그 다음 미군에 입대해서 전쟁성의 군용 어학원을 다닌 변일서와 이태모, 미 육균에 입대했던 이초와 차진주, OSS의 중국, 버마 지역에서 활동한 박기벽이 주요 인물로 차출됐다.

장석윤과 박기벽은 이후 새로운 한인들을 모집하는데 중추적인 역을 했고 이들 6명 외 냅코프로젝트에 참가한 한인들은 총 19명으로 이루어졌다. 대부분 중장년인데다 안정된 가정을 누릴 만한 연령과 계층의 인물들이 생명의 위험을 감수하고 참여했다.

공작원의 교육 내용은 사격, 비무장 전투법, 지도 읽기, 파괴, 무전, 촬영, 낙하산 훈련, 비밀 먹 사용법, 선전, 일본인의 특성 교육등이다, 공작원의 훈련은 각기 다른 목표를 가진 아이넥조, 차로조, 무로조, 차모조등 4개의 조로 나뉘었다.

'냅코프로젝트'에 참여한 한인 공작원들은 외부와 완전히 고립된 산타 카탈리나섬 안에서 고되고 힘든 훈련을 3~4개월 동안 받았다. OSS는 2만 달러들 들여 침투용 잠수정을 제작해 훈련에 사용했다. 목포와 구월산 등지를 침투 대상으로 선정한 미 해군은 한국의 삼천포 인근에서 조업 중이던 한인 어부 3명을 납치해 지형과 정세 정보를 상세히 파악하기도 했다. 

미국의 특수공작기관인 OSS(전략첩보국 CIA 전신)는 1944년 중반부터 대일전 승리를 위한 방안을 다각적으로 연구하고 중국 전구를 토대로 한국인들을 이용한 한국 · 만주 · 일본 본토에 대한 침투 계획을 수립했으며 한국광복군 제2지대와 제3지대를 중심으로 한미 연합에 의해 무전 훈련, 유격훈련, 폭파 훈련 등의 '독수리 작전'이라 불리는 군사훈련을 실시하였다.

훈련의 목표는 한반도로 침투해 통신망을 구축하고 궁극적으로 일본 본토로 진입하기 위한 사전 정지작업을 준비하는 것이었다. 더불어 OSS의 워싱턴 본부는 1944년 말∼1945년 초에 재미 한인 중 민간인과 군인, 미국 내 포로수용소 출신의 한인 포로, 버마주에서 탈출한 학병 출신 한인 등을 모집해 ‘냅코프로젝트(Napko Project)’란 이름의 한반도 침투 작전을 추진하였는데 이를 통해 한반도는 물론 일본 본토까지 교란시켜 미일전의 승리를 도모하고자 하였다.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방송캡처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방송캡처
이것은 재미 한인들을 훈련시켜 공중 혹은 잠수함으로 한국에 침투시키기 위한 특수작전이었다. 그다음 미군에 입대해서 전쟁성의 군용 어학원을 다닌 변일서와 이태모, 미 육군에 입대했던 이초와 차진주, OSS의 중국 · 버마 지역에서 활동한 박기벽이 주요 인물로 차출되었다.

장석윤과 박기벽은 이후 새로운 한인들을 모집하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이들 6명 외 냅코프로젝트에 참가한 한인들은 총 19명으로 이루어졌다. 냅코프로젝트에 참여한 한인 공작원들은 외부와 완전히 고립된 산타 카탈리나섬 안에서 고되고 힘든 훈련을 3∼4개월 동안 받았다. OSS는 이들을 로스앤젤레스와 샌프란시스코 등지로 데려가 실제로 가상 침투훈련을 실시하였고 2만 달러를 들여 침투용 잠수정을 제작해 훈련에 사용했다. 

목포와 구월산 등지를 침투 대상으로 선정한 미 해군은 한국의 삼천포 인근에서 조업 중이던 한인 어부 3명을 납치해 지형과 정세 정보를 상세히 파악했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박사는 유한양행의 창업자로만 알려져 있다. 종로의 작은 사무실에서부터 시작해 굴지의 제약사가 되기까지 성공 신화를 써 내려간 주영이었다.

유일한은 이름도 없던 작은 회사에서 숙주 통조림을 만들어서 6개월 만에 수백억 매출 기업으로 키웠다. 이후 유일한은 고국으로 건너와 약품 사업을 시작했는데 전염병이 들끓던 조국에 제대로 된 의약품을 보급하기 위해서였다. 유일한은 잘나가던 숙주 나물 회사까지 모두 정리하고 조국을 위해 돌아왔다.

하지만 조선 사람들에게 그의 약은 그저 검은 머리 이방인이 파는 이름 모를 약일뿐이었다. 시장에는 수상할 정도로 효과가 좋은 일본 약들이 넘쳐나고 유일한의 약 창고는 먼지만 쌓여갔고 대한민국 최초 티저 광고를 했다. 

유일한은 1926년 일제 강점기에 미국에서 민족정신으로 조국의 부흥을 열망하던 청년이었으며, 1936년 개인기업이던 유한양행을 주식회사 체제로 전환했다. 우리나라 최초로 종업원 지주제를 채택했으며 1971년 작고할 때까지 기업의 소유와 경영을 분리했다.

이어 공익법인 유한재단을 설립하는 등 모범적인 기업 활동과 기업 이윤의 사회 환원 정신을 몸소 실천했으며 ‘기업은 사회의 것’이라는 일념으로 한국 제약산업의 선구자로서 역사에 남아있다. 그는 작고할 때까지 CIA 비밀문서 공개를 통해 생전에 해외에서 독립운동을 지속해왔던 것도 알려졌으며 한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인으로 17년 연속 선정되었다. 

또 유일한 박사는 ‘건강한 국민만이 주권을 되찾을 수 있다’라는 신념과 ‘기업은 사회의 것’이라는 일념으로 한국 제약산업과 국민들에게 큰 영웅적인 본보기가 되어준 인물이라고 하면서 시청자들에게 놀라움을 줬다.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는 매주 목요일 오후 10시 35분에 방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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