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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꼬무 시즌2', 정치깡패 이정재 이야기 다룬다…'김두한-시라소니(이성순)' 관계 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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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톱스타뉴스 유혜지 기자)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시즌2'(꼬꼬무)에서 정치깡패 이정재에 대해 집중 조명하는 가운데 그 시절 이야기가 재조명 받고 있다.

이정재는 1917년 경기도 이천 출신으로 태생부터 힘이 센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전국 규모로 이천에서 개최된 씨름 대회에 출전 상금으로 걸린 황소를 모두 얻어갈 정도로 '씨름판의 장사'였다.

그는 부친의 든든한 경제적 지원으로 서울로 상경하여 휘문고보를 졸업한 이후 신흥대학교(경희대학교 전신)에 진학할 만큼 엘리트였다. 
 
이정재-시라소니-김두한
이정재-시라소니-김두한
본래 처가살이로 동대문에서 광목 장사를 했으나 얼마 후 깡패와 시비가 붙자 그 깡패를 씨름기술로 들어 메친 걸 계기로 김두한의 부하로 주먹세계에 들어섰다. 이후 그는 김두한의 반도의용정신대 서기를 보다가 자신의 학력을 눈여겨 본 김두한의 추천으로 경찰특채가 되어 경찰이 됐다.

이정재는 해방 전에는 김두한의 부하였기 때문에 김두한에게 형님 대접을 했다. 해방 이후에는 김두한이 이정재에게 '나이도 나보다 한 살 더 많으니 그냥 친구 먹자'라고 해서 김두한의 부하에서 벗어나 대등한 관계가 됐다.

이정재는 경찰 복무 당시 친일과는 거리를 둔 조선인 경찰이었다. 정부 수립 직후 좌익들을 소탕하다 나름대로 생각하는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 반민특위에도 참가했다. 그러나 이승만 정권의 조직적 방해로 이정재에게 체포당했던 역적 친일파 노넉술이 풀려났고, 화가 난 노덕술은 이정재를 고문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환멸을 느낀 이정재는 경찰을 그만둔다. 

그는 1961년 10월 19일 서대문 형무소에서 교수형으로 생을 마감했다. 이정재는 형무소장 면회라는 명목으로 이동 중에 간수들이 사형장으로 방향을 틀자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아무 저항없이 "내 발로 가겠다"며 담담하게 사형장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한편 이정재와 시라소니(이성순)의 관계도 유명하다. 시라소니는 1945년 7월 친구를 폭행한 일본 깡패 40명과 단신으로 대적해 승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이 해방한 뒤 월남해 이화룡 등의 명동 폭력단과 함께 지냈다. 이 당시 김두한은 시라소니를 형님으로 모셨다는 일화도 있다.

이후 한국 전쟁이 발발하고, 시라소니는 1953년 정치깡패 이정재가 이끄는 동대문 폭력단에게 유인 및 린치를 당해 폐인이 된 것으로 알려졌다. 

시라소니는 5.16 군사 정변으로 이정재 등 원수들이 사형당하자 기독교에 귀의하여 만년을 보내다가 1983년 2월 25일 사망했다. 그는 전과가 없으며 조직을 싫어한 것으로 알려져 '마지막 협객'으로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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