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준일 V2 'Fantasy', 삶을 향한 지고지순(至高至純)한 사랑
4월 17일은 양준일 V2 앨범 'Fantasy (V2)'의 공식 발매일이다. 앨범을 준비하던 2001년 당시, 소위 ‘길거리 차트’에 타이틀곡인‘Fantasy’가 먼저 노출되면서, 확인 가능한 기록을 기준으로 첫 공중파 출연인 'KBS 뮤직뱅크'의 방송일은 앨범 발매일보다도 한 달여 앞선 2001년 3월 15일이다.
1991년부터 1993년까지 1집과 2집으로 활동한 이후 여러 이유로 활동을 재개하지 못하던 양준일은 미련을 이기지 못하고 마지막이라는 마음으로 살던 집을 포함하여 가진 모든 것을 처분하여 마련한 자금으로 직접 작곡가를 섭외하고 작사를 하고 데모 테이프를 만들어 소속사를 찾아다녔다고 했다.
1집과 2집 실패의 요인이라고 생각한 여리한 슬랜더 체형을 각고의 노력 끝에 다부진 근육질 몸매로 바꿨으며, 여성적인 이미지로 굳어진 양준일이라는 이름을 숨기고 V2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활동했다. 그러나, 소속사 악재가 불거지면서 제대로 활동하지 못하고 이른 봄날에 화려하게 피었다 스르르 진 이름 모를 꽃처럼 사라졌다.
마지막일 수 있다는 막연한 생각이 실제가 되어 눈앞에서 물거품처럼 사라져가는 것을 지켜봐야 했던 양준일은 끝을 보니 비로소 미련을 버릴 수 있었다고 했다. 양준일이 말한 “바닥인 줄 알았더니 지하실이 있더라”라는 표현처럼, 지하실에 다다라 어쩔 수 없이 가수가 아닌 다른 곳으로 통하는 문을 찾아야만 했던 것일까.
한창 자신만의 꿈을 꾸고 목표를 세운 뒤 넓은 보폭으로 한 발씩 두 발씩 성큼성큼 발을 내디딜 나이인 서른에 막 접어든 2001년의 양준일은 그렇게 좌절을 익히고 소리 없이 상처를 삼키는 법을 배웠고 꿈을 향해 거슬러 오르려는 자신을 붙잡아 내려 순응이라는 족쇄를 채웠다. 조용히 가수의 삶을 접고 영어를 가르치며 생계를 유지하는 길을 걸었다.
양준일 'Fantasy (V2)' 앨범에는 총 열네 곡이 수록되어 있다. 리믹스 버전과 반주 버전을 제외하면 열 곡이다. 타이틀은 ‘Fantasy’이며, ‘Good-Bye’, ‘True Love’, ‘Do You Speak English’, ‘너의 이유’, ‘외로움’, ‘왔다갔다’, ‘우리만의 여행’, ‘Oh My God’, ‘Because’가 순서대로 실려 있다. 당시 작업해 놓고 싣지 못하고 2021년 'Day By Day' 미니앨범 발매 당시 포함하여 발표한 ‘하루하루’와 ‘Sha la la’를 포함하면, 2001년 앨범 발매를 위해 직접 가사를 쓰고 녹음을 한 노래는 모두 열두 곡인 셈이다.
곡의 제목으로도 유추할 수 있지만, 서른 살 양준일은 주로 ‘사랑’을 노래했다. 이십 대 초반 1집과 2집 활동 당시에도 사랑 타령만 한다는 비아냥을 들었다고 했지만, 양준일은 집도 절도 없이 이 세상 어디에도 부여잡고 의지할만한 희망의 그림자조차 없던 것 같다고 표현한 V2 앨범 작업 당시에도 역시‘사랑’만을 노래했다.
고된 삶 앞에서 끝까지 사랑을 갈구하는 건 한가한 타령이 아닌 삶의 의지를 붙잡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 아닐까. 말끔하지 못하고 텁텁하고 비릿한 내 삶이라 할지라도 끝까지 부여잡고 살아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사랑’ 아니겠는가.
톨스토이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제목으로 던진 질문에 대한 답은 간단히 답하자면 ‘사랑’이다. 물론, 종교문학인 이 책이 담은 사랑은 박애주의의 범주에 있지만 말이다. 여하튼 간에 사랑을 베풀고 사랑을 받는 것이 인간을 인간으로 남도록 해주는 유일한 것임은 부정할 수 없지 않을까.
이것이 어둡고 긴 터널 속을 작은 횃불 하나 무작정 걸어야 했던 2001년의 양준일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며 준비한 앨범에 그저 사랑 노래만 가득 담은 이유가 아닐까. 신나는 이별곡인 ‘Fantasy’처럼 삶은 이중적이라서, 나에게 기쁨과 슬픔, 기대와 실망을 동시에 떠안기지만, 그래도 살아야 하는 이유는 그것도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야 하는 이유는 절대로 떠나보내고 싶지 않아 마지막 밤까지 붙잡는 노래‘Good-Bye’처럼 사랑에 대한 기대와 미련 덕분 아닐까.
2025년 양준일은 여전히 ‘사랑’을 노래한다. 양준일 1집, 2집, V2 앨범까지의 사랑은 혼자 해야 했지만, 2025년 지금은 팬들과 함께다. 사랑한다고 노래하는 가수 덕분에 팬들은 사랑을 받고 사랑을 준다. 팬들 앞에서는 여전히 꿈꾸던 그대로의 어린 청년처럼 한없이 어리고 개구진 가수 덕분에 팬들은 맑고 순수한 사랑을 다시 배우고 다시 한다.
2025년 5월 4일과 6월 7일 양준일 콘서트 'Us'가 서울 홍대 얼라이브홀에서 개최될 예정이다. 팬들과 가깝게 자주 만나고자 양준일이 선택한 스탠딩 콘서트다. 청년 시절에 활동할 때 무대 위에 외로이 서서 객석이 아닌 바닥만 봐야 했다던 양준일은 더는 없다. 팬들이 환호성으로 양준일을 감싸 안고, 가수와 팬들이 함께 노래를 나누기 때문이다. 외로운 시간과 홀로 사투를 벌이며 살아온 양준일이 지금의 이 시간을 더없이 따스한 사랑으로 즐기고 기억하기를 바라며, 브라보, 양준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