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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인터뷰] ‘태평양 횡단’ 죽음의 도전 최준호, “도전 없인 성공도 없다” 세계기록 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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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 기자] 전세계인이 참가한 ‘제1회 그레이트 퍼시픽 레이스(GreatPacificRace)’에서 유독 돋보이는 한 선수가 있었다. 바로 대한민국 국기를 달고 참가한 유일한 아시아인 최준호(35)씨다.
 
대한민국은 다른 해외의 여러 나라들보다 도전과 모험이라는 부분에서 소심하고 작아지는 부분이 있다. 사회의 여러 관행들과 흐름에 맞춰서 살아야 한다는 암묵적인 강압과 소통의 부재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우리나라의 관행을 깨고 한국인 최초로 ‘오션로잉’이라는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여 스스로의 길을 개척한 사람이 있다. 미국에서 열린 ‘제1회 그레이트 퍼시픽 레이스’ 대회에 참가하여 우승을 거머쥔 최준호(35)씨다.

네덜란드 안드레 키어스-영국 카스파 재퍼-뉴질랜드 크레이그 해캣-한국 최준호 / 그레이트 퍼시픽 레이스
네덜란드 안드레 키어스-영국 카스파 재퍼-뉴질랜드 크레이그 해캣-한국 최준호 / 그레이트 퍼시픽 레이스

 
최준호 씨는 평범한 한국의 직장인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여러번의 사업 실패와 제대로 된 직장에 정착하지 못해 떠돌이 신세가 된 자신을 비관하는 대한민국의 여러 청년과 다를 것 없는 삶이였다. 그는 자신의 삶을 처음부터 되짚어서 무언가 차별화된 문제 해결 방식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무심코 태어난 날에 무슨 일이 있었나 찾아보기 시작했다.
 
1980년, 신문 1면에는 28살 고등학교 동창 두 명의 울산에서부터 캘리포니아까지 한국인 최초 요트 횡단 기사가 실려 있었다. 그것이 엄청난 자극이 됐다. 시작은 순탄치 않았다. 그에게는 요트로 횡단을 할 만큼 큰 돈이 있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돈이 없어도 할 수 있는 것, 싸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찾다 ‘노를 저어서 해 보자’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이것이 그와 ‘오션로잉’의 첫 시작이었다.

그레이트 퍼시픽 레이스
그레이트 퍼시픽 레이스

 
‘오션로잉’이란 말 그대로 노를 저어 바다를 횡단하는 익스크림 스포츠다. 아무런 기본 지식이 없던 그는 구글을 통해 ‘오션로잉’의 정보를 찾기 시작한다. “세계 조정 선수권 대회 메달리스트인 ‘크리스 마틴’이라는 사람을 찾았다. 하지만 연락할 방법도 영어도 못하는 나는 무작정 그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마침 그가 ‘오션로잉’ 대회인 ‘제1회 그레이트 퍼시픽 레이스’를 주최한다는 소식을 접했고 시기가 맞아 이메일로 지원한 격이 됐다.”
 
이에 처음에는 ‘아무런 준비가 없어 합류하지 못한다’라는 답변을 받았다. 하지만 곧이어 ‘4인용 팀을 만든다 해보겠느냐’라는 긍정적인 답변을 받아 준비에 들어갔다. 뉴질랜드-영국-네덜란드-한국, 이렇게 네 국가로 구성된 연합팀은 대회 전까지 합숙을 하며 합을 맞춰갔다. 준비 기간은 단 4개월. 남들은 1년~2년의 준비 기간을 거치지만 최준호 씨는 참가자 중 가장 짧은 시간 준비 기간을 가졌다.
 
‘제1회 그레이트 퍼시픽 레이스’ 대회에는 남다른 철학이 있었다. 대회 개최자인 ‘크리스 마틴’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보트를 가지고 전 세계인들이 참여해 합심하여 하나의 목표를 이뤘으면 좋겠다는 의지가 있었다. 덕분에 최준호 씨는 ‘오션로잉’ 대회에 참여하게 됐다.

네덜란드 안드레 키어스-영국 카스파 재퍼-뉴질랜드 크레이그 해캣-한국 최준호 / 그레이트 퍼시픽 레이스
네덜란드 안드레 키어스-영국 카스파 재퍼-뉴질랜드 크레이그 해캣-한국 최준호 / 그레이트 퍼시픽 레이스

 
가족들에게 알리는 것에 어려움이 많았다고 한다. 걱정을 많이 하실 부모님 때문에 어떻게 알려야 할지 고민만 하다 결국 대회 시작 3일 전에 말씀드렸다. “어머니는 생각보다 좋아하셨다. 내 아들이 이런 것도 한다며 자랑도 하셨다. 하지만 아버지는 달랐다. 직접 찾아보시더니 이런 것을 꼭 해야겠냐며 말리셨고, 형은 사실 나에게 큰 관심이 없었다.”며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오션로잉’을 위해선 많은 자격 조건들이 있다. 피지컬도 물론 중요했지만 국제 보트 세이프티 자격증과 응급처지, 씨 서바이벌(바다 생존 교육) 수료증이 필요했다. 한국에서는 모두 따기도 접하기도 힘든 교육들이라 그는 미국으로 건너가 교육을 이수했다. 당시 ‘세월호 사건’이 일어났던 시기이기도 해서 “세월호 사건 전에 물 적응력과 구명 조끼 사용법을 자세히 알려주는 해외의 씨 서바이벌 교육을 우리나라에서도 받을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지 모르겠다.”며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그렇게 2014년 6월 9일, 그의 첫 ‘오션로잉’ 경기가 시작됐다. 그의 ‘태평양 횡단’ 첫 ‘오션로잉’ 도전기는 12월 2일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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