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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 술값 오를라, 부자 술값 내릴라…소주-맥주가 '세금 차별' 받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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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톱스타뉴스 이정훈 기자)
뉴시스 제공
"맥주에 종량세(출고량·알코올 도수를 기준으로 부과하는 세금 체계)를 먼저 적용했는데, 이를 따라 소주의 과세 체계도 바꾸기는 어렵다. 현실적인 문제가 있거나, 국익 차원에서 바람직하지 않다."

지난 19일 주류 업계와 식당가를 뜨겁게 달궜던 기획재정부의 '주류 규제 개선 방안' 브리핑에서 나온 한 고위 당국자의 발언이다. 기재부는 지난해 6월 맥주의 과세 체계를 종가세(가격을 기준으로 부과하는 세금 체계)에서 종량세로 바꾸겠다고 발표하면서 "소주의 종량세 전환은 장기적인 과제로 두고 검토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기재부가 '소주의 과세 체계 전환이 어렵다'고 못 박은 만큼, 소주·맥주 간 세금 차별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올해부터 맥주에 적용되는 종량세는 출고량·도수를 기준으로 세액을 산출한다. 기존 종가세 체계에서는 가격을 기준으로 세액을 정하므로 제조사가 맥줏값을 올리면 더 많은 세금을 내야 했다. 제조사가 맥주 품질을 높이는 데 소홀했던 이유다. 앞으로는 향을 바꾸고, 맛을 개선하는 등 고급 맥주를 내놓더라도 출고량과 도수만 같다면 세금을 더 낼 필요가 없어진다. 기재부는 종량세 전환이 한국 맥주의 품질을 한 단계 높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뉴시스 제공
기재부가 50년가량 이어온 주류 과세 체계를 손보고 나선 배경에는 수입산 맥주의 활약이 있다. 지난 2014년부터 2018년 사이 한국 주류 출고량은 380만8000㎘에서 343만6000㎘로 쪼그라들었다. 이 기간 수입 주류 출고량은 20만7000㎘에서 49만5000㎘로 2배 이상 증가했다. 하이네켄(네덜란드)·호가든(벨기에)·1664 블랑(프랑스)·칭다오(중국) 등이 편의점에서 '4캔에 1만원'이라는 가격 경쟁력을 내세우면서 소비자의 입맛을 사로잡은 덕분이다.

해외에서 들여온 맥주가 국산보다 더 저렴할 수 있던 것이 이 종가세 때문이었다. 국산 맥주에 매기는 세금의 기준이 되는 '과세 표준'은 제조 원가에 인건비·이익 등을 모두 더해 구한다.

반면 수입산 맥주의 과세 표준에는 인건비 등을 제외한 단순 수입 가액과 관세만 포함된다. 수입산 맥주에 적게 부과된 세금은 소비자가의 차이로 이어졌다. 한국 맥주 제조사는 이를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표현했고, 세제 당국인 기재부가 이를 고친 것이다.

그러나 소주는 상황이 다르다. 우선 참이슬(하이트진로)·처음처럼(롯데칠성음료)·좋은데이(무학) 등 한국 소주가 시장을 지배하고 있다. 소주 시장 안에는 한국산-수입산 간 경쟁이 없는 셈이다. 대신 위스키라는 복병이 있다. 한국 소비자는 소주와 위스키를 '다른 술'이라고 인식하지만, 둘은 사실 증류주라는 하나의 주종으로 분류된다. 소주와 위스키는 가격에도, 도수에도 큰 차이가 있지만, 주세를 매길 때는 동일한 세율이 적용된다.
뉴시스 제공
원래 '서민 술'인 소주와 '부자 술'인 위스키의 세율은 달랐다. 기재부(당시 재무부)는 지난 1990년 과세 대상 주류 분류 기준을 바꾸며 소주에는 35~80%, 위스키에는 150%의 세율을 적용했다. 그러자 유럽연합(EU)이 "같은 술에 다른 세율을 적용하는 것은 불공정하다"며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했다. EU는 한국 소주 제조사 홈페이지를 뒤졌고, 한 업체의 영문 카탈로그에서 '소주는 보드카와 비슷한(Vodka-like) 주류'라는 구절을 찾아냈다. 한국은 패소했고, 세율은 같아졌다.

소주에 종량세를 적용하면, 같은 주종인 위스키의 과세 체계도 함께 바뀌게 되는 셈이다. 기재부는 증류주 종량세 도입을 검토한 뒤 "'21도짜리 증류주 1ℓ당 947.52원'을 기준으로 도수가 1도 오를 때마다 세금을 45.12원씩 올리면 기존 소주 세금과 비슷하게 된다"는 결론을 냈다. 이를 45도짜리 위스키에 적용하면 1ℓ당 2030.4원의 세금이 붙는다. 종가세 체계에서 출고가 5만원의 45도짜리 위스키에 붙는 세금은 3만6000원. 종량세 전환 시 위스키 세금이 18분의 1가량으로 쪼그라든다.

그렇다고 위스키에 붙이는 기존 세금에 맞춰 종량세 기준을 정하면 소주에 붙는 세금이 대폭 올라간다. 결국 증류주의 과세 체계도 맥주처럼 종량세로 바꾸려면 소줏값을 대폭 올리거나, 위스키값을 큰 폭으로 낮춰야 하는 셈이다. 지난 19일 브리핑 중 기재부 관계자의 발언을 해석하면 "현실적인 문제"는 "서민 술인 소줏값을 올릴 수 없다"는 것, "국익 차원에서 바람직하지 않다"는 얘기는 "부자 술값을 내릴 수 없다"는 것이다.

주류 업계에서는 증류주의 종량세 전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당장 도입하기는 어렵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업계 관계자는 "소주-맥주 간 과세 형평성 차원에서도, 고급화 가능성 차원에서도 증류주에 종량세를 적용하는 편이 맞다"면서도 "지금까지 논의된 기준을 그대로 적용할 경우 소줏값이 올라 서민 부담이 늘어나거나, 위스키값이 내려 한국 주류 산업이 고사할 수 있다. 종량세 도입 전 그로 인한 사회적 비용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뉴시스에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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