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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임을 위한 노래' 5.18 민주화운동 40주년 특집, 가수 이은미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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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톱스타뉴스 조현우 기자)

'임을 위한 노래'에서 가수 이은미와 김형석이 호흡을 맞췄고, 이은미는 "잊지 않겠다"며 눈물 흘렸다.
 
KBS1 예능프로그램 '임을 위한 노래'
KBS1 예능프로그램 '임을 위한 노래'

18일 오후 7시 40분 KBS1TV에서 방송된 '5.18 민주화 운동 40주년 특집-임을 위한 노래'에서는 어린 시절, 광주의 참혹한 일상을 두 눈으로 지켜봤던 작곡가 김형석과, 가수 이은미가 만나 '임을 위한 행진곡' 재해석을 함께 하게 됐다. 이어 여러 증언자들의 인터뷰와 당시 5.18 민주화 운동 당시 광주에서의 투쟁과 끔찍했던 실상이 영상과 자료들을 통해 시청자들에 다시금 공개됐다.

생사의 갈림길에 선 것을 본능적으로 직감했던 광주 시민들. 죽음을 앞두고 윤상원 열사는 동지와 마지막 대화를 나눴다고 한다. 이양현 씨는 당시 윤상원 열사와 함께했던 이로 "저승에서도 사회변혁운동을 한다고 하면 거기에서도 그 운동을 같이 하자, 그런 마지막 인사말을 했습니다"라고 말했다.

계엄군은 곧 전남도청을 점령하고, 도청에 나가있던 150여 명의 시민들이 죽거나 잔인하게 끌려가야 했다. 5월 18일부터 열흘 간의 민간인 사망자 최소 155명에 행방불명자 최소 54명이라는 참혹한 숫자. 광주는 진압됐고 철저히 고립됐다. 당시 KBS 9시 뉴스에선 전혀 다른 이야기가 나왔었다. 아무도 광주의 진실을 제대로 전하지 않았다.

그때의 언론은 "광주 사태는 극렬한 폭도들에 의해 악화되는 조짐이 보였다. 따라서 군은 생활고와 온갖 위협에 시달리는 시민 구출을 위해 군 병력을 광주에 투입했다"고 거짓말했다. 생존자이자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던 김태종 씨는 "언론이 최소한의 진실이라도 보도를 해줬으면 지금처럼 왜곡이 안됐을 거라 생각합니다"라고 전했다.

"그래서 그 당시의 신군부가 짰던 5.18 프레임, 이게 왜곡의 시작이라 봅니다"라고 김태종 씨는 덧붙였다. 문재학 열사의 어머니 김길자 씨는 죽어있는 아이들의 사진을 보며 "전두환 때문에 내 인생이 바뀌었다 봐야지. 자식 일이라면 못할 거 없어요. 우리 자식은 민주주의를 위해 싸웠지. 폭도가 무슨 말이냐. 내가 폭도 누명을 벗겨야겠다, 그렇게 오늘까지 싸웠죠"라고 말했다. 

이어 김길자 씨는 그때의 기억을 간직한 채 민주화 운동 당시 울려퍼진 노래를 불렀고, "악보도 없이 그렇게 외웠소. 하도 불러서"라고 말하며 눈물을 흘렸다. 제 11대 대통령 취임식, 전두환은 "우리가 지향하는 민주복지국가는 첫째로 우리 정치풍토에 맞는 민주주의를 이 땅에 토착하고"란 연설을 한 바 있었다. 해당 연설처럼,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부조리한 세상이었다고 '임을 위한 노래'에서는 말한다.

소설가 황석영은 "한국의 언론이나 공식 보도 매체에서는 모든 광주에 대한 기사를 쓸 수 없었어요. 신문은 물론이고 방송은 더구나 더 그랬고, 그래서 다른 지역에서는 광주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수년 동안 알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광주에서 그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그랬을 때, 살아남은 사람들의 일차적 목표는 광주의 진실을 전국의 우리 국민들한테 알려야 한다는 것이 책무다, 그렇게 생각을 했죠"라고 말했다.

광주 항쟁이 끝나고 2년 후, 특별한 결혼식이 열리기도 했다. '영혼 결혼식'이 그것이었다. 시민군 대변인이었던 故윤상원, 들불야학 교사이자 노동 운동가 故박기순의 결혼식이었다. 꿈을 다 펼쳐보지도 못했던 젊은 넋들은, 노래극의 마지막이자 일곱번째 곡인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불렀다. 

'임을 위한 행진곡'의 작곡가 김종률, 작사를 맡은 황석영은 "당시 글로 써서 문집을 만든다던가 이런 게 있었지만 직접적으로 대중에게 파고 들어갈 수 있는 거는, 그때 가장 첨단적인 매체가 카세트 테이프였어요"라 말하며 노래극을 테이프에 담아 광주의 참상을 전국에 알려보겠단 계획이었다고 당시의 상황을 밝혔다.

북과 꽹과리를 반주 삼아 즉석에서 노래와 녹음이 시작됐다. 노래가 담긴 카세트 테이프는 비밀리에 복사되어 전국에 배포됐다. 작곡가 김형석은 '임을 위한 행진곡' 악보를 보며 "오선지도 선으로 그렸다 하더라고요. 처음 그린 악보같아요. 무너가 정제되고 고치고 한 게 아니라 그 자리에서 막 쓰신 것 같은데, 이런 음악을 쓸 수밖에 없었던 절실함이 느껴졌어요"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감동을 줄 수 있는 건 두 가지의 패턴이 있다 생각하는데, 하나는 섬세한 것. 두번째는 진정성이라 생각하는데 그런 부분들이 다 녹아있는 느낌이었습니다"라고 감상을 이야기했다. 김형석은 어릴 적 광주 항쟁과 관련한 기억을 떠올리면서, "그때 당시에는 맘이 아팠다기보단 공포였던 것 같고요. 물론 유족에 비하기만 하겠습니까마는 그러한 아픈 기억들을 평생 안고 가는 거죠"라 전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재주, 음악이라는 아주 자그마한 재주를 통해서 저도 치유되고 또 그 음악을 듣는 그 아픔을 가진 분들도 치유되고 이런 조그마한 계기가 됐으면 좋겠습니다"라고 김형석은 말했다. 김형석은 피아노로 온 힘을 다해 곡을 연주하는 모습을 보였다. 넋을 기리고 아픔을 치유하며 뼈 아픈 역사의 시간을 기억하자는 절절한 시도가 담긴 연주였다. 

김형석의 피아노 연주를 배경으로 하여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 카메라에 담겼던 영상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작곡가 김종렬은 '임을 위한 행진곡'에 목이 메어 함께 소리쳐 불렀던 1987년의 경험을 이야기하며 이번 다큐멘터리에서도 육성으로 해당 곡을 불러 보였다. 시민들은 대통령 직선제를 요구하며 민주주의를 향해 달려나갔었는데, 그때 당시도 '임을 위한 행진곡'이 불렸던 바 있다. 

장기 집권을 꿈꾸던 독재자는 결국 항복했고, 허나 사과도 반성도 없었고 이내 사면으로 풀려났다. '노래를 찾는 사람들'의 모임에 속한 시민들은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며 "한 십 년 전쯤에 불렀었으니까 만 번쯤 부르지 않았을까요"라 말했고, 한 시민은 "91년도에 강경대 열사 노제 할 때 저희가 문화선봉대 역할을 했었는데 앰프랑 스피커를 트럭에 올려놓고 트럭에 올라타서 움직이며 노래를 불렀던 기억이 지금 나네요"라고 전했다.

"이 노래엔 혼이 있는 것 같아요. 어떤 혼이 있어서 결의 같은 게 저절로 생기는 것만 같은 느낌이에요"라고 '노래를 찾는 사람들' 모임의 시민들은 얘기했다. 김창남 교수는 "노래는 바로 그렇게 사람들이 뜻을 나누고 공유하고 모이게 하고 행동하게 하는데 있어서 가장 강력한 힘을 주는 매체라 할 수 있어요. 임을 위한 행진곡이 바로 그런 대표곡인 거죠"라고 말했다.

이어 홍콩의 시위대도 '임을 위한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보였다. 홍콩 시민들은 "이 노래에는 굉장히 큰 힘이 있어요"라고 말하며 시대와 경계를 초월한 민주주의의 힘에 대해 얘기했다. 전남대 5.18 연구소의 김희송은 "40년이란 시간이 훌쩍 지났지만 동아시아 곳곳에서 다른 국가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같이 한다는 것은 80년 5월이 갖고 있었던 보편성 때문에 아닐까. 하나는 저항이라는 그 다음에 연대한다는 이 두가지에 공감되는 시민 의식이 있다"라고 얘기했다.

어김없이 다시 찾아온 5월, 들불야학 윤상원 열사의 동료 임낙평 씨는 올해도 광주시 광산가에 위치한 윤상원 생가를 찾았다. 윤상원 열사의 어머니 김인숙 씨를 만난 임낙평 씨는 "40년 됐어요. 40년. 어머니, 잘 계셨어요"라며 반갑게 인사했고, 김인숙 씨는 "잊지 않고 기억해주시니 감사하고 고맙습니다"라고 전했다.

윤상원 열사의 동생 윤정희 씨는 "오월만 되면 밥도 못 드시고, 앓으시고. 어머니는 산송장처럼 되세요"라고 말했다. 사랑하는 아들을 가슴에 묻고 산 지 40년이 흘렀다. 어머니의 5월은 그때의 기억을 함께 떠올리는 달이다. 이어 김형석과 가수 이은미는 새롭게 편곡한 '임을 위한 행진곡'을 온 마음을 다해 불러 보였다.

김형석의 지휘와 이은미의 호소력 짙은 감성이 '임을 위한 행진곡'의 곡조에 가득 담겨 그 시대와 민주주의 정신을 잃지 않으려는 염원을 이끌어낸다. 이은미는 "제가 이 노래를 다시 불러야겠다고 생각했던 건 역시 그 부분이거든요. 아직도 사과하지 않는 세력들이 있다는 것. 인정하지 않고 있는 역사적인 사실, 진실. 저 또한 잊지 않아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하고"라며 뜨거운 눈시울을 훔쳤다.

소설가 황석영은 "아직도 광주 항쟁은 그런 의미에서 끝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진실을 밝혀야 하고 사과 받아야 하고"라고 얘기했다. 이어 반드시 민주주의의 꽃을 피워 미래 세대들에게 물려줘야 한다는, 살아있는 사람들이 할 일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졌다. 

해당 스페셜 방송은 5.18 민주화운동과 관련한 진상 규명에 대한 코멘트로 마지막을 장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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