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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구하라 친오빠 구호인, "극단적 시도는 몇 번 더 있었다"…'숨겨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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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혜지 기자] 故구하라의 친오빠 구호인 씨가 장문의 글을 게재했다.

2일 구호인 씨는 한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코로나19, N번방 사건에 많이 심난하실 것 같다"며 "'실화탐사대'를 보고 격려해 주시는 분들이 많아서 간단히 심경을 적어본다"고 말했다.

이날 구호인 씨는 "저희 남매는 친모에게 버림 당하고 힘든 과정을 거치면서 커왔다. 현재 성인이 되어 결혼도 하고 아이까지 갖게 되면서 느낀 점은 가족 환경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이다"라며 "학교 생활을 하는 동안 혹시나 놀림 당할까, 따돌림 당할까 싶어서 어릴 때부터 존재하지 않던 '엄마'가 있는 척 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어머니가 차지하고 있는 빈자리만 커져갔다"고 털어놨다.
故 구하라 / 사진공동취재단
故 구하라 / 사진공동취재단

 

그는 "저는 학교 근처 주유소 숙식하며 학교를 다녔고 생계를 위해 마트, PC방, 홀서빙 등 각종 알바를 해야 했다. 동생은 피팅모델 알바를 하면서 그래도 스타가 되겠다는 꿈을 잃지 않고 서울까지 가서 오디션을 봤고 그렇게 수십 번의 오디션 끝에 카라에 들어가 아이돌 생활을 시작했다"며 "성인이 되어서도 엄마가 많이 원망스럽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 그리웠다. 동생이랑 둘이서 울기도 하고 많은 얘기도 하면서 그렇게 서로 의지하면서 지냈다"고 말했다.

이어 "동생이 극단적인 시도를 한 것은 몇번 더 있었다. 모든 일들이 뉴스에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런 일들이 있을 때마다 저는 일하다가도 팽개치고 서울로 올라와서 동생을 돌봤다"며 "소속사의 도움을 받아가면서 보안이 철저한 병원을 찾아 동생을 옮기고 또 옆에서 종일 지켜보면서 안정이 되면 퇴원을 시켰다"고 회상했다.

동생 걱정이 앞서 항상 옆에서 지켜봤다던 그는 "그러다가 작년 가을에 설리의 일이 생겼고 그 소식을 듣고 나니 동생을 더욱 잘 돌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더 자주 연락하고 자주 보려고 노력했는데 바로 그때 동생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바람에 저는 소식을 듣고 정말 미칠 것 같았다"고 한탄했다.

구호인 씨는 "하라는 언제나 사랑이 그리웠던 아이였다. 지인들, 팬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마음 한곳에서는 채워지지 않는 곳이 있었다. 그러다 최씨 사건이 터지게 되었고 저는 너무나 화가 났다. 그때 동생은 '자신이 알아서 할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괜히 건들다가 사건만 커진다고' (이야기 했다)"고 말했다.

그는 "동생이 여러 번 심리 상담을 하고 치료를 해도 잘 낫지가 않아서 의사선생님 권고에 따라 친모를 만나면 혹시나 도움이 될까 수소문 끝에 친모를 찾은 적이 있다. 그런데 친모를 만나면 공허함은 채워지지 않았고 오히려 더 허망했다"며 "그런 친모가 동생의 유산을 노리고 있다. 너무 분하다. 친권 양육권을 포기해도 상속권과는 별개라고 한다"며 억울해 했다.

구호인 씨는 "(중략) 안타까운 사연이 나올 때에만 잠깐 이슈가 되고 다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돌아가게 된다면 저희와 같은 경우는 계속 발생될 것이다. 친모는 저에게도 하나밖에 없는 어머니이기에 친모를 상대로 이렇게 하는 마음이 너무나 무겁다. 언론에 인터뷰를 할 때면 제가 그렇게 지우고 싶었던 과거의 일들이 하나둘씩 떠올라 악몽을 꾸는 것 같기도 하다. 간혹 지루하다, 혹시 돈을 독차지 하려고 이렇게 하는 것 아니냐는 악플을 볼 때면 가슴이 미어지는 듯 하다"고 호소했다.

끝으로 그는 "법이 개정되거나 새로운 법이 만들어지더라도 저희 사건에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도 괜찮다. 비록 저희에게는 적용되지 않더라도 저희로 인해 앞으로 양육 의무를 버린 부모들이 갑자기 나타나 상속 재산을 챙겨가겠다고 하는 상황을 막을 수 있다면 말이다. 그래서 이 법의 이름이 동생의 이름을 딴 구하라법이 되었으면 좋겠다. 동생이 가는 길 남겨 놓은 마지막 과제라고 생각하고 동생으로 인해 사회가 조금이라도 더 좋아졌다는 이야기를 오빠로서 남기고 싶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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