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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프리한19' 김소혜 출연 '역사 특집', 2020 도쿄 올림픽 "욱일기 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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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톱스타뉴스 조현우 기자)
'프리한19'에서 3.1 운동 101주년을 맞아 역사 특집이 진행됐다.

XtvN 예능프로그램 '프리한19'
XtvN 예능프로그램 '프리한19'

2일 오후 9시 50분 방송된 XtvN 예능프로그램 '프리한19' 197화에서는 101주년을 맞은 올해, 3.1운동의 역사적인 무게를 느껴보기 위한 뜻 깊은 특집을 진행했다. 오늘 특집의 제목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특집이었고, 특별히 아이돌 I.O.I에서 연기돌로 거듭난 김소혜가 인턴기자로 출연했다.

XtvN 예능프로그램 '프리한19'
XtvN 예능프로그램 '프리한19'

[멈추지 않는 일본의 망언들]
일본 외무상이 한 기자의 '일본의 역사적 이해가 부족하다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 '역사는 바꿀 수 업삳'고 답해 모두를 분노하게 했다. 이외에도 다양한 망언을 했던 일본 정부측. 당시 조지아주 애틀랜타 주재 일본 총영사관 시노즈카 다카시는 "소녀상 건립은 말도 안됩니다. 당시 한국에서 온 여성들은 매춘부였다고요"라고 주장해 파문을 일으켰다. 한때 일본이 과거를 일부 인정해 한일 관계가 호전될 뻔한 적이 있다. 1991년 8월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을 최초 공개 증언한 故 김학순 할머니. 약 1년 뒤 당시 미야자와 기이치 총리 내각은 1차 위안부 실태 조사 결과를 발표했고 8월 4일, 당시 고노 요헤이 관방장관은 고노 담화를 발표했다. "군의 요청을 받은 업자가 주로 담당했지만 그 경우도 감언, 강압에 의하는 등 본인들의 의사에 반해서 모집된 사례가 무수히 많았고 게다가 관헌 등이 직접 이것에 가담했다는 것이 명백하게 드러났습니다"라고 발표한 것이었다. 이는 하지만 일본 정부가 아닌 민간 업체와 일본군에 한정해 얘기한 것이었고, 공식적인 사과는 빠져있었다.

[과거사 손바닥으로 가리기]
2014년 2월 고노 담화를 검증하겠다고 아베 총리가 밝혔고, 고노 담화는 한국 정부와 조율을 통해 작성했다고 한 것이었다. 흑역사를 손바닥으로 가리기에 급급한 일본이 부끄러움을 알아야 할 것이라고 한석준은 얘기했다.

['평화의 소녀상'을 울린 만행]
일본 아이치현에서 열린 국제 예술제 '아이치 트리엔날레'. 평화의 소녀상을 모티브로 한 작품이 전시됐고, 그런데 일본 우익의 테러 협박에 의해 전시 3일 만에 취소됐다. 두 달 뒤 해당 작품 전시가 재개됐지만 촬영 등을 금지해 논란이 됐다고 한다. 평화의 소녀상은 2011년 수요집회 1000회를 맞아 건립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 평화의 소녀상을 짓밟은 일본의 숱한 만행들이 있었다. 2014년 일본 그래픽 디자이너 다이 이나미가 'Sexy Lady'라는 사진으로 소녀상 사진을 게재한 것이었다. 슬픔과 분노를 담은 손은 음란한 모습으로, 한복은 기모노로 바꾸어 놓은 것이었는데, 이것이 다가 아니었다고 한다. 2012년 평화의 소녀상을 찾은 일본 극우 정치인은 다케시마는 일본 영토라고 적은 말뚝으로 테러를 해 놓았다.

[위안부 지킴이 '마이크 혼다']
일본군 위안부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앞장 선 한 남자가 있었다. 일본 정부에게 사죄를 요구한 일본계 미국인 미국 연방 하원 의원인 마이크 혼다가 그이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한 일본의 공식 사과를 요구하는 결의안을 2007년에 요구한 그. 미국 연방 의회에 결의안을 제출했고 약 35분 만에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그런데 수년간 결의안을 일본이 묵살해왔다. 아베 총리는 A급 전범들이 합사돼 있는 도쿄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러 갔고, 마이크 혼다 의원은 순순히 물러나지 않은 채 일본군 강제 종군 위안부 결의안 준수를 촉구하는 내용을 담은 통합 세출법안을 통과시키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미국 의회 정식 법안에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포함된 것이 최초라고 한다.

[쌀 한 숟가락으로 펼친 독립운동]
김소혜 기자는 쿠바에서도 독립운동이 이뤄졌다는 사실을 전했다. 오상진은 "쿠바는 생소하네요"라고 말했고, 이역만리 쿠바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한 임천택 선생의 이야기를 김소혜가 전했따. 1904년 황성신문에 실린 한 공고. 한국인도 멕시코에 가면 반드시 큰 이득을 볼 것이라는 멕시코 농부 모집 공고였다. 1905년 2월 멕시코 이민선에 조선인 1033명이 올랐다. 당시 세 살배기였던 임천택도 멕시코로 향했다. 그런데 멕시코 유카탄 지역에서 이들을 기다린 건 일명 노예의 지옥이라 불리는 선인장 에네켄 농장이었다. 40도를 오르내리는 무더위 속에서 온종일 노역에 시달린데다 임금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고 한다. 궁핍한 삶 속에서도 결코 잊지 않은 한가지가 있었으니 바로 '나는 조선인이다'라는 것이었다. 1923년 한인회 조직 후 조선의 만세운동 기념으로 3월 1일 쿠바에서 독립 선언 시위를 벌인 임천택 선생. 김구의 백범일지에도 임천택의 독립운동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다고 한다. 밥을 지을 때마다 쌀 한 숟가락을 덜어내고 쌀을 모아 그 쌀을 팔고 대한민국 임시 정부로 8년간 송금한 것이었다.

[110년 만에 흘린 참회의 눈물]
갑자기 무릎을 꿇고 사죄한 이들이 있었으니, 고종과 함께 잠든 명성 황후의 릉을 찾은 이들은 경복궁을 습격해 명성 황후를 시해한 일본인들의 후손이었다. 을미사변을 일으킨 구닡토모와 이에이리 가가치의 손자며느리 등 가족들이 '명성 황후를 생각하는 모임' 회원으로서 110년 만에 명성 황후의 무덤을 찾아 조상 대신 사죄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들은 경복궁을 찾아 후손 가와노 다쓰미는 할아버지가 명성황후를 시해한 증거이자 전리품 명성 황후의 향낭을 복원해 사죄의 의미로 전달했다. 110년 만에 후손들이 사죄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이 모임은 1대 협회장 가이 도시오가 교사로 재직하던 당시 조선인 제자의 '명성 황후 시해 사건을 아시나요?'라는 질문을 계기로 일제의 만행을 파헤쳤고, 국가적인 범죄임에도 불구하고 교과서에는 기술이 되지 않은 것을 알고 경악한 것이었다. 그래서 "일본인들에게 이 끔찍한 역사를 알리고 한국에 사죄해야겠다"라고 마음 먹고서 '명성 황후를 생각하는 모임'을 교사들과 설립한 것이었다. 게다가 을미사변에 가담한 범인들의 후손 약 20명을 찾아내고 명성 황후 시해에 사용된 칼 등을 발견한 후 경찰, 군인 등 주범의 정체를 밝혀냈다고 한다. 가와노 다쓰미는 2012년 유언으로 '대를 이어 참회하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34번째 푸른 눈의 민족 대표]
1919년 민족 대표 33인의 독립선언으로 시작된 우리나라 역사상 최대 민족 운동인 3.1운동. 역사적 순간에 조선의 독립을 염원한 34번째 민족 대표가 있었으니, 그는 바로 프랭크 윌리엄 스코필드 박사다. 스코필드 박사는 당시 선교사 겸 교사로 한국에 왔었고, 그는 3.1운동의 생생한 풍경을 카메라에 담았다. 민족 대표 33인 중 한 명인 이갑성 선생의 제안을 받아들인 스코필드 박사는 3월 1일 탑골 공원에서 만세 운동의 순간을 계속해서 카메라로 찍기 시작했다. 이어 일본군이 주민 23명을 살해한 제암리 학살 사건에 주목해 이후 제암리 대학살 보고서를 작성했다. 밀사를 통해 중국 상해 영자 신문에 기고하고, 전 세계에 제암리 학살 사건을 알렸다고 한다. 일본이 부인할 수 없는 증거를 남긴 것이다. 당시 미행과 암살 위협에 시달렸다는 그. 하지만 스코필드의 의지가 꺾이지 않자 재직중인 학교를 압박했고 결국 1920년 스코필드는 조선을 떠나게 됐다. 독립 후인 1958년 38년만에 스코필드는 한국 땅을 다시 밟았다. 외국인 최초로 대한민국 문화 훈장, 건국 훈장을 받았다. 독립 운동에 기여한 의미로 현충원에 안장됐다.

XtvN 예능프로그램 '프리한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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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의 섬 '선감도'의 비극]
2018년 5월 안산시 단원구 선감동. 일제 강점기 강제 노역에 희생된 이들의 넋을 기린 위령제가 이곳에서 열렸다. 이때 한국 전통 제례복을 입고 무릎을 꿇은 한 노인이 있었으니 84세의 노인 일본인 이하라 히로미츠였다. 그가 마음에 빚을 안고 산 사연이 있었으니, 바로 1943년 당시 8살이었던 이하라는 선감학원 부원장인 아버지와 함께 안산시 작은 섬 선감도로 이주하게 됐다. 어린 이하라에게는 유토피아 같았던 선감도. 그런데 어느날 그가 목격한 충격적인 장면이 있었다. 가혹한 노역과 폭행으로 고통받는 조선 아이들의 모습을 본 것이었다. 이하라의 아버지가 근무하는 선감학원 학원생들이 그들이었고, 사연은 이러했다. 조선 총독부에서 부랑아와 고아를 위해 설립한 선감학원의 실체는 사실 강제 노동 수용소였다. 
태평양 전쟁에 사용될 군수 물자 생산 등을 위해 거리를 헤매는 소년들 약 200명을 연행해 선감학원에 강제로 입소시킨 것이었다. 고된 노역 중에 잠시라도 쉬면 잔혹하게 폭행하고 뾰족한 대나무를 손톱 밑에 넣는 고문까지 했다. 섬 탈출을 시도하기도 했지만 거센 파도에 밀려 주검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크게 충격받은 이하라. 일제 패망 후 일본으로 귀국했지만 선감학원 아이들의 얼굴을 잊을 수 없던 그. "선감도는 조선 아이들에게 지옥같은 곳이었어. 이 사실을 어떻게든 알려야해"하고 마음먹은 그는 다시 선감도에 방문해 선감학원의 실체를 취재해 소설 '아 선감도'를 발표하고 세상에 선감도의 비극을 알렸다. 이하라는 극우 세력의 협박에도 불구하고 선감도 비극을 알리는데 앞장섰고 선감학원 아이들의 넋을 기리는 위령비를 건립했다. 

[한반도는 군함도 그 자체였다]
전쟁 포로들이 강제 징용돼 태평양 전쟁 당시 끌려간 섬 군함도처럼, 한반도 자체가 거대한 군함도나 마찬가지였다. 현재 한반도에도 그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데, 제주도 서귀포시 송악산은 제주도민들의 강제 노역이 자행된 아픈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태평양 전쟁이 막바지에 이르렀떤 때, 일본 본토를 지키기 위해 제주도를 최후의 보루로 삼고, 약 7만 명에 달하는 일본군이 제주도에 주둔했다. 송악산 해안 절벽을 뚫어 군사 시설을 설치하고 공사에 제주도민들을 강제 동원했다. 곡괭이 한 자루로 굴을 파고 거대한 통나무를 맨몸으로 나르는 노역을 해야 했다. 강제 노역에 동원된 제주도민은 무려 4만 여 명이었다고 한다. 

[문화재 지킴이가 된 OOOO]
182080. 이 숫자의 의미는 반환되지 않은 18만 2080개의 국외 문화재를 말한다. 그 중 가장 일본이 우리 문화재를 많이 보유하고 있다. 무려 7만 여개를 갖고 있다고. 그런데 이런 안타까운 현실 가운데서도 2014년 1월, 2018, 2019년 4월 척암선생문집 책판 등을 회수했다. 조선 왕실 유물인 중화궁인 등 5점을 다시 환수해 볼 수 있었다고도 한다. 그런데 우리 문화재 반환에 앞장선 곳이 있으니, 세계 유명 온라인 게임을 만든 외국계 R게임 회사다 그곳이다. 전현무와 한석준, 김소혜 모두 어리둥절한 가운데, 2012년부터 R게임 회사 한국 지사가 실시한 문화재 프로젝트가 있었다고 오상진은 설명했다. 한국형 캐릭터 아리의 스킨 수익 비용 등을 문화재 지킴이로서 비용을 기부했었다고 한다. 김소혜는 "저도 할 줄 아는 게임이고 동생도 할 줄 알고 다들 하는 게임인데 신기하네요"라고 말했다. 또 게임 유저들을 대상으로 역사 교육을 위해 문화재 지킴이 프로그램을 진행했다고도 한다. 2017년에는 문화유산보호 대통령 표창을 수상하기도 했다. 왜 게임 회사가 문화재 환수에 나섰을까? '게임도 문화이며 문화의 뿌리는 문화유산이다'라는 철학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XtvN 예능프로그램 '프리한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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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치유한 간호사]
조선 총독부 의원 산부인과 소속 간호사 박자혜 선생. 생계를 위해 조선 총독부 의원 간호사로 어쩔 수 없이 일하던 박자혜 간호사는 1919년 3월 1일 만세운동 이후 삶을 바꾸게 됐다. 일본군의 총칼에 다친 동포들을 치료하던 그녀 "일본을 위해 일하는 것은 더이상 부끄러워 견딜 수 없다"고 박차고 나선 것이었다. 울분과 함께 터져 나온 애국심에 박자혜 선생은 조선 총독부 의원 간호사에서 독립운동가로 다시 태어나게 됐다. 이후 민족 대표 33인 중 한 명 이필주 목사와 함께 간호사 독립운동 단체 간우회를 조직해 만세운동을 했다고 한다. 조국의 독립을 염원했던 그는 결국 일본 경찰에게 체포돼 고초를 겪기도 했는데, 그로부터 1년 뒤인 1920년 망명한 북경에서 동지 신채호 선생을 만나 결혼하게 된다. 한마음으로 독립을 꿈꾼 부부였으나 생계유지가 어려워 1922년 아들과 함께 귀국해 산파소를 운영했다. 그러나 여전히 피끓는 독립운동가였던 박자혜 선생은 국내외 독립운동가들의 정보와 물품을 담당하는 연락책이 됐고 때로는 위험에 직면한 독립투사들을 산파소에 숨겨주기도 했다. 나석주 의사의 의거 당시 박자혜 선생은 가장 중요한 폭탄을 전달하는 중책을 맡았었다고 한다. 나석주 의사의 성공적인 의거를 위해 의열단의 길잡이가 됐다고 한다.
그런데 1936년 큰 시련이 찾아온다. 남편 신채호 선생이 순국하게 되고 이후 충격에 건강이 급격히 악화된 박자혜. 독립을 2년 앞둔 1943년 숨을 거두게 된다. 그러나 박자혜 선생의 의지는 결코 헛되지 않았고, 광복을 맞이할 수 있었다.

[일본이 외치는 '독도는 한국 땅']
지난해 국내 정치인들이 독도를 찾자 일본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다케시마는 역사적 사실과 국제법상 일본 고유의 영토입니다"라고 말했었다. 김소혜는 "일본 정부가 확장 개관한 영토 주권 전시관에서 한국이 독도를 불법 점거중이라고 말도 안되는 얘기를 했다고 해요"라고 전했다. 오상진 기자는 "독도는 한국땅이다"라고 외쳐온 일본인들이 있다고 이야기를 계속했다. 일본 서북쪽 위치 오키섬에서 157km 떨어진 독도는 한 지도에 표시되지 않고 있다. 독도는 일본땅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지도는 일본 유명 지도학자 이노우 다다타카가 일본 전국을 다니며 실측해 만든 것이다. 권위를 인정해 일본 정부가 편찬한 이 지도에 독도가 일본땅이 아니라고 명백히 기록되어 있다. 증거는 하나뿐이 아니다. 일본이 말하는 독도는 한국땅이란 증거 두번째, 당시 일본인들은 울릉도를 죽도라 불렀었다. 죽도는 조선 땅이니까 침입하지마, 라고 써있는 국가 간 조약 '죽도 도해 금지령'이 성립되어 있었다. 그런데 죽도 도해 금지령을 어긴 일본 어부 하치에몬. 죽도에서 밀무역하다 적발이 됐고 일본 정부는 "이국에 속한 섬에 도해한 죄"로 처형한다. 당시 증거로 제시된 일본 지도 '죽도방각도'를 보면 일본 영토는 노란색, 조선 영토는 붉은색으로 표시되어 있는데 일본인들이 송도로 부른 독도는 붉은색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대삼국지도'에도 독도 옆에 적혀 있는 설명으로도 '독도는 조선의 것'이라 되어 있다.

[그날 울린 '세 발의 총성']
스티븐스는 일본이 한국을 보호하기 위해 유익하게 한 일이 많다며 주장했다. 왜곡된 식민 지배를 찬양한 성명서를 발표한 스티븐스. 분노한 한국 교민들이 스티븐스에게 해명을 촉구한다. 스티븐스는 "너희는 어리석어서 독립할 자격이 없어"라며 짜증나는 망언을 퍼부었다. 이에 한 가지 결심을 한 전명운 의사는 "우리 민족이 일제의 통감 정치를 반대한다는 걸 알려야겠어"라며 3월 23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페리 선착장을 찾은 스티븐스에 곧바로 방아쇠를 당겼다. 전명운 의사는 "어? 이 총이 왜 이러지?"라며 당황하고, 하필 불발되고 만 것이다. 그런데 이때 누군가가 스티븐스를 향해 세 발의 총탄을 발사한다. 이는 바로 또 다른 한국인 청년 장인환 의사. 놀랍게도 이 두 사람은 일면식도 없는 사이였다고 한다. 같은 목적으로 우연히 만난 것이었다. 마찬가지로 스티븐스의 만행을 두고볼 수 없어 조국을 위해 처단하기로 결심했던 것. 한날 한시 같은 목적으로 만난 두 사람이었다. 장인환 의사의 저격 이후 스티븐스는 사망했고 저격에 실패한 전명운 의사는 무죄, 장인환 의사는 2급 살인죄로 25년 금고형 판결을 받게 됐다. 이후 두 사람은 샌프란시스코에서 역사적인 만남을 가질 수 있었다.

[영웅의 마지막을 지킨 일본인]
1910년 3월 26일, 일본 초대 총리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중근 의사의 사형 집행일이다. 그런데 안중근 의사의 죽음에 유난히 슬퍼한 한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일본인 헌병 치바 도시치였다. 안중근 의사를 감시하는 간수였던 헌병 치바는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안중근 의사를 협박해왔었다. 그런데 "이토 히로부미 암살은 민족의 독립을 위한 행동이었소"라는 안중근 의사에 재판과정에서, "정권을 강제로 배앗은 죄", "한국인의 권리를 박탈한 죄"등을 비롯해 사살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강력히 주장하고 헌병 치바에게 평화와 군인 정신을 토로했다. 치바는 안중근 의사의 절개와 강직한 신념에 감화되고 "일본이 조선의 독립을 위협해서 정말 죄송합니다. 사죄합니다"라고 얘기했다고 한다. 이후 안중근 의사의 건강을 걱정해 양말을 챙겨주는가 하면 밀서를 몰래 눈감아 주기도 했다고 한다. 그리고 의인을 감시해야 하는 자신의 신분을 한탄하며 안중근 의사 사형 소식에 오열하며 슬퍼했다고 한다. 안중근 의사는 슬퍼하는 지바에 "나라를 위해 몸을 바침을 군인의 본분이다"라고 적힌 유묵을 선물로 줬다고 한다. 이후 제대를 자청하고 고향으로 돌아간 치바 도시치는 유묵을 가보로 여기고 위패를 집에 모셨다고 한다. 이후 치바의 후손은 1980년에 한국 안중근 의사 숭모회에 유묵을 기증했다고 한다. 

XtvN 예능프로그램 '프리한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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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위 후보-'이름 없는 영웅' 의병을 기리며]
시청자들에게 깊이 각인된 '미스터 선샤인'의 엔딩 장면이 있었다. 1907년 영국의 매켄지 기자가 경기도 양평군의 한 야산에서 촬영한 유일한 의병 사진이 있다. 김소혜는 "우리가 모르는 이름없는 의병들이 정말 많을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비록 역사에 이름이 남진 않았지만 나라를 구하기 위해 나선 의병에 주목했다. 1895년 을미년 명성황후 시해와 단발령에 항거해 강원도 원주, 충북 제천에서 봉기한 의병. 충북 단양에서 관군, 일본군을 격퇴한 의병들의 첫 값진 승리를 거뒀다. 당시 항일 투쟁에 나선 의병은 약 1만 명이었다. 국권을 침탈당한 을사늑약에 반발한 의병들도 있었다. 호서 지방 요충지 홍주성을 점령하기 위해 1천 여명이 모였고, 이들은 뜨거운 항일 의지를 보여줬다. 

[1위 후보-세상에서 가장 슬픈 금메달리스트]
2020년 7월 도쿄 올림픽이 개최될 예정이다. 세계 스포츠 대회의 역사와 정보를 제공하는 일본 세계 스포츠 대회 박물관이 개관했는데 이 전시 가운데 역대 일본 금메달리스트 사진 중 고개를 숙인 한 남자가 있었다. 이는 故 손기정 선수. 일본 국적으로 마라톤에 출전해야 했던 손기정 선수. 세게 스포츠 대회 위원회 홈페이지에도 그는 여전히 일본 국적으로 등록되어 있다. 일본은 손기정 선수를 자신의 나라의 금메달리스트로 소개한다. 베를린 세계 스포츠 대회에서 탄 손기정 선수의 금메달은 우리나라에서 크게 환영받았으나 일본은 그가 민족 운동의 발화점이 될까 두려워 손목에 밧줄을 묶어 손기정 선수를 이동시켰다. 이어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손기정 선수 외손자가 한 인터뷰를 전해 한 이야기 중 "일본 세계 스포츠 대회 위원회에선 자문조차 오지 않았다. 최소한의 관심은 보여줬어야 했다"라는 이야기가 있었다. 손기정 선수가 금메달을 따고 친구에게 보낸 엽서에는 '슬프다'라는 석자만 써 있었다고 한다.

[1위 후보-방사능만큼 위험한 OOO]
전 세계 관광객들에게 후쿠시마산 도시락을 제공하거나 주 경기장에 후쿠시마산 목재를 사용한다고 한다는 말이 있어 논란이 있었다고 하는 올림픽. 심지어 야구장 인근에 방사능 오염토가 적재되어 주의해야 한다고 하는데, 2020년 도쿄 세계 스포츠 대회에서 욱일기 사용 금지를 청원하는 글도 올라오게 됐다. 도쿄 세계 스포츠 대회 조직위원회에서 "욱일기가 광범위하게 사용되기 때문에 막을 이유가 없습니다"라고 제재를 가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전했고 세계 스포츠 대회 조직 위원회에서 이를 묵인했다는 것이다. 도쿄 세계 스포츠 대회의 욱일기 사용 허용이란, 한국 홍보 전문가 서경덕 교수는 "일본 욱일기는 제국주의, 군국주의의 상징이죠.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이 전면에 내세운 깃발이고요. 독일의 하켄크로이츠와 같은 전범기입니다. 욱일기를 사용하는 것은 전쟁 깃발을 다시금 꺼낸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라고 전했다. 이어 서경덕 교수는 "도쿄 세계 스포츠 대회에서 욱일기 사용이 허용된다면 사전에 막을 수 있도록 다함께 힘을 모으는게 중요하단 생각이 들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행한다면, 저는 이것을 좋은 기회로 삼아야 한단 생각이 듭니다. 각 나라 언론 기관이 대부분 참여하기 때문에 세계인들에게 욱일기 사용이 뭐가 잘못됐는지 더 널리 알릴 수 있는 기회로 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라고 설명했다. 

XtvN 예능프로그램 '프리한19'
XtvN 예능프로그램 '프리한19'

오늘의 데스크 서경덕 교수가 기사 총평을 하게 됐다. 서경덕 교수는 "지난해 3.1절이 100주년이었습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 독립투사들의 활약까지 다시 한번 조명해서 시청자들에게 좋은 의미를 전달했다고 생각합니다"라고 전했다. 이어 1위 기사를 발표하게 된 서경덕 교수는 세 개의 1위 후보 기사들 가운데 "방사능만큼 위험한 욱일기"를 뽑았다. 

한편 예능프로그램 '프리한19'는 매주 월요일 9시 50분 XtvN에서 방송된다. '차트를 달리는 남자', '프리한 마켓10'과 비슷한 포맷을 갖고 있는 해당 프로그램은 오상진, 한석준, 전현무가 출연해 환상의 호흡을 뽐내고 있다. 지난 회차에는 '다시는 있어선 안 될 전쟁'이라는 주제로 진행돼 시청자들과 함께 깊은 의미를 되새기면서 많은 주목을 받았다. 

이외에도 추억의 스타 특집, 트렌드 특집, 여행이나 힐링 특집, 팝송 특집과 같은 다양한 토픽이 관심을 얻고 있으며 세 MC의 케미스트리와 더불어 실생활에 유용한 정보가 많이 나와 성별과 연령대를 불문하고 많은 시청자들에 화제를 모으는 프로그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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