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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유시민, “해리스 대사, 한국 총독처럼 행세… 호르무즈 파병 명분 없어” (알릴레오)

  • 진병훈 기자
  • 승인 2020.01.18 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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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병훈 기자]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해리 해리스 주한미국 대사를 향해 “한국 총독처럼 행세하고 있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해리스 대사가 이번 미국과 이란 사태로 호르무즈 파병을 희망했기 때문이다. 반면 사이드 샤베스타리 주한 이란 대사는 한국이 호르무즈에 파병하면 양국 관계 악화가 우려된다며 단교 가능성까지 열어둔 것으로 알려졌다.

김준형 국립외교원 원장은 ‘유시민의 알릴레오’ 46회에 출연해 “솔레이마니 이란 혁명수비대 총사령관의 죽음 이전과 이후가 확실히 달라졌다. 일본과 EU도 곤란한 상황이다 보니 시간 벌기 전략이 필요하다. 지금 정부도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양대 문화인류학과의 이희수 교수는 “2003년은 대량 살상 무기 등을 이유로 UN 안보리 결의안을 통과해서 이라크 파병을 결정할 수 있는 소지가 있었다”며 “이번에 문제를 일으킨 장본인은 미국”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이란은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아랍에리미트, 카타르, 오만, 바레인의 인구수보다 많다. 가장 큰 시장”이라며 “이란에 수출하는 국내 기업은 약 2,900여 개고, 그중에 중소기업은 2,700개 이상이다. 2억 명을 먹여 살리는 산유국이자 농산 부국이고 세계 최대 우라늄광을 소유하고 있다. 한미 관계 틀에 박혀 미래 시장을 놓치면 곤란하다”며 규모의 경제를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더불어 “이란은 한국민을 좋아하고, 큰 공사를 맡기며 물건을 팔아준다. 사실상 가장 안전한 나라가 우리인데 왜 미국 때문에 안전을 위협받아야 하나?”며 정부가 우리 선박과 민간인 안전을 위협받는 선택을 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희수 교수는 지난 방송에서 이란이 전 세계에서 사랑하는 나라가 한국이라며 2007년 대장금(시청률 90.2%) 방영 이후, 메이드 인 코리아가 82%까지 석권하는 이란에게 위험한 나라로 지목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강조한 바 있다.

이희수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미국과 이란의 갈등은 1953년, 군사 쿠데타에 의해 무너진 모하마드 모사테크 정권이 그 기점으로 보인다. 모하마드 모사데크는 이란의 정치가로, 민족주의 지도자였다. 1951년 총리가 되면서 영국-이란 석유 회사의 국유화를 단행했다. 그의 석유 국유화 조치에 미국은 CIA를 동원해 군사 쿠데타를 일으켰고, 팔레비 왕조를 내세웠다. 팔레비 왕조는 1925년부터 1979년까지 팔레비가 창시하여 이란을 지배하던 왕조였다. 미국의 도움으로 서구식 근대화를 추진하는 등 친미 노선을 추구했다.

이희수 교수는 “이란 국민들에게는 지울 수 없는 반미 감정이 생긴 기점이 됐다”며 결국 이란 혁명이 일어났다고 설명했다. 이란 혁명은 1979년, 팔레비 왕조의 국왕 독재를 무너뜨리고 호메이니의 지도하에 이슬람 신정 체제를 수립한 혁명이다. 이것이 오늘날 이슬람 정부가 되고, 새 정권이 반미 기조에 들어섰다. 

그러자 미국은 경제 제재에 들어갔으며, 주이란 미국 대사관 인질 사건까지 발생했다. 1979년 11월부터 3개월간 미국인 50여 명이 학생시위대에 의해 이란 주재 미국 대사관에서 인질로 역류되어 있던 사건이었다. 미국은 당시 특수부대로 구출 작전을 시도했다가 실패했고 치욕적인 트라우마가 남아 지금까지 화합할 수 없는 앙숙 관계가 됐다.

이희수 교수는 “이란은 미국의 경제 제재로 끄떡도 없었다. 그 틈으로 중국과 러시아가 차지하자 오바마 전 대통령이 이란과 윈윈하면서 메가 시너지를 냈다. 상임이사국 5개국과 독일까지 끌어들여 핵 협상 타결을 공식 선언했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이 맨 먼저 한 것이 이 핵 협정 탈퇴 선언이었다”고 설명했다.

유튜브 ‘사람사는세상노무현재단’ 방송 캡처
유튜브 ‘사람사는세상노무현재단’ 방송 캡처

이희수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는 무함마드의 사촌 남동생 알리의 죽음으로 각각 이라크 바그다드로 이전한 시아파와 수니파로 갈라졌다. 알리는 후계자 지정을 하지 못했던 무함마드가 낳은 딸 파티마와 결혼했고, 나이가 들면서 겨우 후계자로 지정됐으나 반대파에 의해 무참히 살해됐다. 이를 두고 무함마드와 알리를 추종했던 사람들이 이라크 바그다드로 이전해 시아파가 됐고, 남은 자들은 전통을 강조하며 수니파가 됐다.

이희수 교수는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의 이 오랜 앙숙 관계를 솔레이마니에 의해 풀어갈 시점, 표적 살해됐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동안 미국과 한배를 탔던 사우디아라비아가 대립 관계인 이란과 화합하는 것을 결사적으로 막을 필요가 있었다는 것이다. 솔레이마니 이란 혁명수비대 총사령관은 이란뿐만 아니라 레바논, 시리아, 이라크, 소위 시아파 벨트의 군사 총책임자로 이란 내에서는 하메네이 지도자 다음으로 실질적인 권력 서열 2위였다.

작년 9월 14일, 이란이 지원하는 예멘 후티 반군이 사우디아라비아 정유 시설인 아람코를 무인 공격하면서 사우디 내에서 미국의 불신이 커졌고, 결국 사우디에서 이란에 화해 메시지를 보냈다. 이희수 교수는 “1970년대부터 사우디아라비아가 미국으로 구입한 무기가 200조에 이른다. 미국 전체 무기 수출의 3분의 1을 차지한다. 패트리엇 미사일 등 완벽한 방어 체제를 갖춘 줄 알았는데 드론으로 정유 시설이 무너지니 패닉 상태가 됐다. 미국만 믿을 수 없으니 이란과 적대 관계보다 긴장을 완화하는 쪽으로 간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란과 사우디의 적대적 공생 관계가 필요한 미국으로서는 두 나라의 화해 어젠다 자체가 중동의 이익 구도를 근본적으로 흔들리는 방향으로 갔던 것으로 보인다. 이라크 마흐디 총리는 솔레이마니 사망 이후 미군 철수 결의안을 언급하며 격앙된 모습을 보였다. 미국이 사우디와 이란 사이의 화해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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