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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선을 넘는 녀석들’ 최희서, “안중근 의사가 왜 꼬레아 우라(대한 만세)를 외쳤는지 아세요?”

  • 진병훈 기자
  • 승인 2019.11.17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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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병훈 기자] 11월 17일 MBC ‘선을 넘는 녀석들 리턴즈’에서는 우수리스크로 가기 위해 하바롭스크행 기차를 탔다. 드디어 시베리아행 횡단 열차에 탑승,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으로 향했던 그 발자취를 따라간다. 왼손 약지 손가락을 잘라 가며 동의단지회를 결성한 안중근 의사는 동지로부터 조선통감부 통감 이토 히로부미가 하얼빈으로 온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안중근, 우덕순, 조도선, 유동하 네 사람이 암살에 참여했다. 연해주 독립운동가의 대부 최재형 선생이 재정적 지원을 하면서 하얼빈 의거가 시작됐다. 당시 18세였던 유동하는 통역을 위해 합류하고 연락책을 담당했다.

우덕순과 조도선은 이토 히로부미의 경유지 채가구역에서 대기하고, 그 차선책으로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에서 대기하기로 했다. 채가구역에서 만일 암살이 성공했다면 우덕순과 조도선은 구속됐고, 바로 하얼빈으로 와서 암살에 성공했다면 안중근 의사가 구속됐을 것이다. 세 사람이 거사를 치르기 전, 마지막 만남의 순간이었다.

운명은 안중근 의사로 향했다. 우덕순과 조도선을 지켜보던 러시아 경비병이 두 사람이 묵었던 숙소의 문을 굳게 걸어 잠가 버렸던 것이다. 그렇게 1909년 10월 26일, 운명의 거사 당일이 다가왔다.

러시아 의장대가 하얼빈에 집결하고, 기차가 도착했지만 이토 히로부미는 러시아 재무장관과 환담을 하는 바람에 기차에서 내리지 않고 있었다. 초조해진 안중근 의사에게 또 다른 위기가 있었다. 이토 히로부미의 얼굴을 몰랐던 것이다.

이토 히로부미의 행색과 묘사 등으로만 실행에 옮겨야 했던 상황이었다. 기록에 따르면 맨 앞에서 가는 자가 이토 히로부미 같았고, 그가 유턴해서 안중근 의사 곁을 지났다. 한 일본인이 이토 히로부미라고 환호를 하면서 안중근 의사가 눈치를 챘다는 기록도 있다.

안중근 의사는 10보 앞에서 정확하게 세 발을 발사했고, 이토 히로부미의 가슴과 배를 관통했다. 아직 남아있는 총알은 저격 대상이 이토 히로부미가 아닐 수도 있는 경우를 대비해 주변에 비슷해 보이는 일본인에게 발포했다.

수행비서관, 하얼빈 총영사, 만주 철도 이사 등이 부상을 입었다. 안중근 의사는 어수선한 틈을 타서 도망쳤던 것이 아니라 러시아 말로 꼬에라 우라(대한민국 만세)를 외쳤다. 외신들이 이 사건을 대서특필한 가운데 일본은 이 사건을 안중근 개인의 원한으로 왜곡하고 폄하했다.

하지만 안중근 의사는 대한의군 참모중장의 자격으로 암살을 결행한 것이며 15가지 이유를 들어 이토를 처단했음을 당당히 밝혔다. 안중근 의사는 왜 러시아어로 대한민국 만세를 외쳤을까? 최희서 씨의 설명에 따르면 하얼빈은 청나라가 아니라 러시아의 치외법권이었다. 안중근 의사는 공정하게 러시아 법관에게 공정한 심판을 받을 계산이었다.

하지만 하얼빈 의거가 있기 4년 전, 1905년 을사늑약에 의해 어긋났다. 일본에게 외교권을 빼앗긴 우리는 미국에 있는 한인도 일본이 관할해 재판을 받아야 할 지경에 놓였던 것이다. 을사늑약이라는 이 불평등한 조약은 안중근이라는 독립투사도 공정하게 재판을 받지 못하는 결과를 만들어 버렸다. 그렇게 안중근 의사는 사형, 우덕순, 조도선, 유동하는 각각 징역형에 처했다.

MBC ‘선을 넘는 녀석들 리턴즈’ 방송 캡처
MBC ‘선을 넘는 녀석들 리턴즈’ 방송 캡처

MBC ‘선을 넘는 녀석들 리턴즈’는 매주 일요일 밤 9시 5분에 방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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