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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조성준, “캐나다 한인 최초 장관 계기는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김어준 뉴스공장)

  • 진병훈 기자
  • 승인 2019.11.06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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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병훈 기자] 지난해 6월 말, 캐나다 온타리오주 노인복지부 장관에 임명된 한인 조성준(83) 주의원이 11월 6일 tbs FM ’김어준의 뉴스공장’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캐나다 사상 최초로 주정부 장관직에 오른 조성준 장관은 “제가 알기로는 캐나다뿐만 아니고 미국 북미 전역에 장관이 돼서 1년 이상 장관을 한 사람으로는 아마 제가 처음”이라고 했다.

캐나다는 의원으로 당선된 다음에 장관으로 임명받을 수 있다. 조성준 장관은 “제가 처음 이민 간 건 1967년 3월이었다. 한국외국어대학생으로 처음으로 미국 대사관에 입사가 됐는데 제 남동생이 캐나다로 이민 가고 싶다고 했다. 그 당시에는 이민관이 서울에 없고, 홍콩에서 2~3개월마다 오는데 동생이 자기는 영어를 못하니까 형님이 좀 통역을 해달라고 그래서 제가 주선을 했다”고 말했다. 결국 동생의 영어 통역을 돕다가 본의 아니게 캐나다로 이민을 가게 된 것이다.

당시 한두 시간 인터뷰하고 난 다음에 캐나다 이민관이 “당신은 이민 갈 생각 없나? 당신 같은 영어 실력이면 가서 선생도 할 수 있고, 전문직을 찾을 수 있다. 한번 신청을 해보라”고 했다. 그렇게 동생과 함께 신청서를 쓰고 홍콩으로 보냈는데 2개월 후에 동생은 이민이 안 됐고 조성준 장관만 이민을 가게 됐다.

조성준 장관은 “사실 저는 미국으로 유학을 갈까 생각 중이었다. 미국 대사관에서 일하다 보니까 미국인들은 승진 미래가 보이는데 한국 사람으로서 미국 대사관에 오래 있어봤자 미래는 그저 제한되어 있는 것 같았다. 제가 기회가 됐길래 크게 결심을 하고 캐나다로 가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때 조성준 장관의 한국 나이는 31살, 미혼이었다.

그렇게 혼자 갑자기 이민을 갔던 조성준 장관은 젊고 자신만만했다. 캐나다 가서 5년, 길게는 10년 동안 박사 학위를 받고 백만장자가 돼서 모국 대한민국으로 돌아와 봉사를 하겠다는 결심을 했다. 하지만 막상 밴쿠버에 도착하니까 인종차별부터 심했다. 직장을 구하러 다니는데 ‘캐나다 경험이 뭐냐’는 질문을 받고 없다고 하면 구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은 결국 접시닦이였다. 조성준 장관은 “캐나다에서 성공을 하려면 돈을 많이 벌어서 거부가 된다든지 아니면 열심히 공부를 해서 전문직 직장을 구해서 봉사하는 사람이 돼야 했다. 저는 돈 버는 재주는 없었다. 백만장자의 꿈은 빨리 접었다”고 했다. 그래서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의 MBA 프로그램에 입학 신청서를 냈다. 접시닦이는 한 달 만에 관뒀고 등록금을 내기 위해서는 또 돈을 벌어야 했다.

석면광산에 들어간 조성준 장관은 낮에는 광부로 일하고 저녁 5시부터는 Waiter, 술 파는 사람으로 일을 하기 시작했다. 술집을 닫으면 그다음부터 청소부로 술집을 다 청소하면서 하루에 한 5시간만 잤다. 몇천 불을 벌게 된 조성준 장관은 밴쿠버로 다시 나와서 대학원을 갔는데 너무 몸이 피곤해서 강의실에 들어가면 그냥 자기만 했다.

도무지 대학원을 마칠 수가 없었던 그는 세계 일주나 하고 한국으로 가자고 마음먹었다. 그때 벤쿠버에서 처음에 만났었던 친구들이 “세계 일주는 다음에 하고 토론토는 이민자들을 잘 대우하니까 일단 토론토 와서 직장을 구해보라”고 조언했다. 하지만 토론토도 직장을 구하기 힘들었다. 토론토 종합병원에 청소부로 취직한 조성준 장관은 기필코 성공해서 한국으로 돌아가야겠다는 오기가 생기기 시작했다.

토론토대학원 사회복지대학원을 다시 찾아간 그는 “나는 꼭 입학해야겠다”고 했고, 커크 패스틱이라는 교수가 잘 봐서 입학을 시켜줬다. 그렇게 대학원에 안착했지만 당시 한국의 군사독재 정치가 그를 다른 방향으로 이끌었다. 박종철 군이 물고문으로 사망한 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은 그는 민주화 운동에 앞장섰다. 

일본에서 우리 2세들이 지문을 조사받는 것도 안타까워서 한인들을 모아 일봉총영사관 앞에 가서 궐기대회도 했다. 제시 잭슨 목사와 한국과 일본을 방문해 인권운동도 했다. 한국 지역사회에서 지도자가 되자 캐나다 정치권에서 러브콜이 오기 시작했다. 캐나다 정치권에서 한인 커뮤니티와 대화하려면 조성준 장관을 만나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1988년도에 신민당 연방국회의원 입후보자가 돼서 출마한 그는 당시에 유색인종이 정치에 출마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예상대로 낙선했다. 91년도에 토론토 광역의회의원 선거에서는 88년도에 열심히 운동했던 그 인지도 덕분에 처음으로 유색인종이 광역의회의원으로 당선됐다. 이후로 8번을 재선한 조성준 장관은 2016년 주의원으로 출마한다.

절친한 친구 덕 포드는 온타리오주 수상과 아는 사이였다. 조성준 장관의 실력을 이미 알고 있던 친구 덕분에 지난해 장관으로 임명됐다. 온타리오주 수상은 뇌졸중으로 입원한 조성준 장관의 병실을 찾아 응원해주기도 했다. 다행히 수술을 하지 않고 완쾌한 조성준 장관은 노인복지 장애인복지부 장관으로 임명됐다.

유튜브 tbs TV ‘김어준의 뉴스공장’ 방송 캡처
유튜브 tbs TV ‘김어준의 뉴스공장’ 방송 캡처

한국을 방문하게 된 동기는 대한민국과 온타리오주의 교량 역할, 즉 브릿지 역할을 하고 싶어서였다. 이번에 온타리오주 정부가 경제사절단을 한국에 보냈는데 레이먼 조와 조성준 장관이었다. 조성준 장관은 “저는 상당히 행운아다. 공석에서 이런 이야기를 자주 한다. 세계에서 제일 좋은 나라 한국에서 태어나서 자랐고, 31세 때 세계에서 제일 좋은 나라 캐나다에서 날 모셔갔다. 진짜 캐나다가 좋은 나라다. 캐나다와 대한민국은 흡사한 점이 많다. 캐나다도 한국처럼 자유를 사랑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온타리오주와 한국의 교류량이 72억 불을 강조하며 앞으로 100억 불을 넘을 것으로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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