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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MBC스페셜-1979’ 김재규, 부마항쟁이 유신 심장 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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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톱스타뉴스 장필구 기자) ‘MBC 스페셜’에서 부마항쟁 40주년을 맞아 팩츄얼 드라마를 준비했다.

24일 MBC ‘MBC 스페셜’에서는 부마민주항쟁 40주년 특집 ‘1979’ 편의 2부 ‘그는 왜 쏘았는가?’ 편을 방송했다.

MBC ‘MBC 스페셜’ 방송 캡처
MBC ‘MBC 스페셜’ 방송 캡처

부마민주항쟁은 박정희 정권의 유신독재 체제에 저항해 1979년 10월 16일부터 닷새간 부산과 마산(현 창원시 마산합포구·회원구)에서 일어난 민주화운동이다. 시위 기간은 짧았으나, 군사정권 철권통치 18년을 끝내는 계기를 만들어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4·19혁명, 5·18민주화운동, 6·10민주항쟁과 함께 대한민국 현대사를 대표하는 4대 민주화운동 중 하나로 꼽히며, 지난달 늦게나마 국가기념일로 지정됐다.

끝이 보이지 않았던 유신 독재를 무너뜨린 최초의 시민항쟁이라고 할 수 있다. 민주주의의 새벽을 연 부마항쟁 이후에, 18년 군사 정권에 종말을 가져온 10.26 사건이 일어난 것은 유명한 이야기다. 10.26 사건은 이날 2부에서 다큐드라마로 재현됐는데, 배우로는 ‘박정희 전문 배우’ 이창환이 또 다시 대통령 박정희 역을, 혼신의 주스 연기로 유명한 ‘주스 아저씨’ 박동빈이 유신의 심장을 쏜 중앙정보부장 김재규 역을, 강인한 인상을 심어 온 배우 조경훈이 경호실장 차지철 역을 맡았다. 그리고 요요미가 심수봉 역을 맡아 첫 연기에 도전, ‘그때 그 사람’을 불러 애틋함을 자아냈다.

중앙정보부장 김재규는 박정희 대통령과 육사 2기 동기이면서도 고향도 구미와 선산으로 동향이어서 더욱 신임을 받았다. 1968년 보안사령관, 1971년 3군단장, 1974년 건설부 장관, 1976년 중앙정보부장 등 박 정권을 보위하는 핵심 보직을 수행한 ‘동반자적 관계’였다고 할 수 있다.

부마민주항쟁이 일어난 1979년 10월 18일 당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 또한 부산에 있었다고 한다. 대통령에게 부마시위를 보고하기 위해 직접 현장에 갔었고, 유신 독재에 대한 시민들의 격렬한 저항을 목격했다. 같은 날 저녁 박정희에게 “부산 시위는 시민들이 합세한 흡사 민란과 같고 곧 5대 도시로 확산될 것:이라며 근본적인 방안으로 온건하게 대처하자는 건의를 하지만 묵살을 당하고 만다.

차지철 경호실장 또한 박정희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자신의 방에 “각하를 지키는 것이 국가를 지키는 것이다”라고 써놨을 정도로 충성심을 높았다. 부마민주항쟁 당시 차지철 경호실장은 “캄보디아에선 300만을 학살했다고 하는데, 시위대 100~200만 정도 쓸어버리겠다”며 무자비한 진압과 강경한 대응을 주장했다.

국민의 희생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시위가 확산된다면 전국 계엄으로 확대해 시위 진압과 더불어 ‘제2단계 유신’을 통해 집권 연장의 계기로 삼겠다는 의지를 보인 박정희 대통령의 태도에 김재규는 거사를 결심하게 된 것으로 전해졌다. 충정과 배신, 충동과 계획, 영웅심과 망상적 사명감 등 4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유신의 심장을 쏜 김재규에 대한 평가는 치열하게 엇갈리고 있다.

MBC ‘MBC 스페셜’ 방송 캡처
MBC ‘MBC 스페셜’ 방송 캡처

궁정동 연회에 불려갔던 가수 심수봉은 지난 2005년 인터뷰 당시 “(김재규가) 전혀 인사를 받지 않고 또 모르는 사람처럼 아주 굉장히 무겁고 무섭기 입을 꽉 다물고 표정이 없어 그렇게 있는데 정말 이상했다, 제가. 표정이나 분위기나”라고 밝혀 당시의 미묘한 분위기를 전한 바 있다.

지난 16일 방송된 KBS1 부마민주항쟁 40주년 특별기획 다큐멘터리 ‘1979 부마’에서는 전우용 역사학자가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부마항쟁의 (분위기가) 잠시 잠복해 있는데 또다시 일어나서 전국으로 확산되면 어떻게 할 것이냐(고 물었고), (박정희 대통령과 차지철 경호실장이) 이적행위로 규정을 하고 그에 따라서 군인이 발포해도 관계없다(고 반응하자 그 말을 들은) 김재규가 ‘이 버러지 같은’이라고 하면서 차지철과 박정희를 쏴 죽임으로써 유신체제를 종말시킨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한편, 전두환 씨에 대한 이야기도 소개됐다. 청와대 경호실 작전차장보 시절 전두환이 경호실 국기하강식에서 차지철 경호실장에게 직접 보고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당시 경호실 관계자와 김충립 전 특전사 보안반장에 따르면, 전두환 작전차장보가 경호실 국기하강식에서 차지철에게 직접 경례하고 인원을 보고했다.

1979년 3월 보안사령관에 취임한 전두환 소장은 10월 16일 부마항쟁이 일어나고, 18일 0시를 기해 부산에는 계엄령이 선포되자, 그날 낮 12시 경 부산 계엄사령부에 방문했다. 박찬긍 계엄사령관에게 진압 작전에 대해 구체적으로 지휘 조언하고, 전시 또는 국가비상사태를 대비한 국방부 비상 계획인 ‘충무계획 1200’ 속 단 한 줄의 규정을 근거로 부산 계엄사령부에 ‘합동수사단’ 설치를 감행한 것으로 전해졌다.

1980년 이전에 합동수사기구는 계엄법, 계엄법 시행령, 계엄사령부 직제 등 계엄 관련법에 법적 근거가 없었던 기구였다. 전두환 소장은 부산 항쟁 당시 합동수사단을 미리 운용해보았고, 공수1여단장 출신으로 특전사 인맥을 활용해 1·3·5공수부대가 부산 시위 진압하는 것을 조언하는 등을 경험하고 서울로 올라갔다. 8개월 후 1980년 광주에서 맞을 상황을 미리 경험하고 올라간 셈이다.

10.26 사건 당시에는 대통령 차량이 국군서울지구병원으로 갔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누구보다 빠르게 박정희의 사망 사실을 인지한다. 그리고 그는 부마항쟁에서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정승화 계엄사령관에게 10·26 사건을 수사할 ‘합동수사본부’ 안을 재가 받아, 27일 아침 합동수사단장으로 역사의 전면에 등장했다.

MBC ‘MBC 스페셜’ 방송 캡처
MBC ‘MBC 스페셜’ 방송 캡처

MBC 시사교양 다큐 프로그램 ‘MBC 스페셜’은 매주 목요일 밤 10시 5분에 방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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