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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행 혐의' 전 DB그룹 회장 김준기, 2년3개월만에 귀국 및 체포…청와대 국민청원 내용은?

  • 김명수 기자
  • 승인 2019.10.23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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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수 기자] 비서 성추행 및 가사도우미 성폭행 혐의 등을 받고 있는 김준기 전 DB그룹 회장이 23일 귀국해 경찰에 곧바로 체포됐다.

김준기 전 DB그룹 회장 / 연합뉴스
김준기 전 DB그룹 회장 / 연합뉴스

연합뉴스에 따르면 서울 수서경찰서는 전날 미국 뉴욕에서 출발해 이날 새벽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한 김 전 회장을 체포해 경찰서로 이송했다.

김 전 회장은 오전 3시 47분께 수갑을 찬 손목을 천으로 가리고 경찰관에게 양팔을 붙잡힌 채 공항 입국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김 전 회장의 귀국은 지난 2017년 7월 미국으로 출국한지 2년3개월만이다. 그는 해외 체류로 인해 기소중지 상태였다.

김 전 회장은 '성추행·성폭행 혐의 인정하느냐', '왜 이제까지 조사에 응하지 않았느냐' 등 취재진의 질문에 "사회에 물의를 일으킨 점에 대해 정말 죄송스럽고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혐의를 인정한다는 취지인가'라고 묻자 "(가사도우미 성폭행 혐의와 비서 성추행 혐의 모두) 인정하지 않는다"며 "조사 과정에서 진실을 밝히겠다"고 답했다.

앞서 김 전 회장은 가사도우미였던 A씨로부터 지난해 1월 성폭행 혐의로 고소를 당했다. A씨는 지난 2016년부터 1년여간 별장에서 김 전 회장의 가사도우미로 일하면서 성폭행을 당했다는 내용의 고소장을 제출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피소 당시 김 전 회장이 이미 미국으로 떠난 상태여서 조사를 진행하지 못했다. 김 전 회장은 지난 2017년 7월 치료를 이유로 미국으로 떠났는데, 출국 후 약 두 달 뒤 비서 상습 추행 혐의가 불거졌고 회장직에서 물러났다.

경찰은 김 전 회장의 해외 체류로 인해 수사가 어려워지자, 기소중지 의견으로 사건을 검찰에 송치했다. 기소중지는 수사를 종결하기 어려울 경우 사유가 없어질 때까지 우선 중지하는 상태를 뜻한다. 당시 경찰은 김 전 회장에게 수차례 소환을 통보했지만, 불응해 체포영장을 발부받았다.

앞서 경찰은 김 전 회장을 귀국토록 하기 위해 여권 무효화 및 인터폴 적색수배 등의 조치를 하기도 했다.

지난 7월 16일에는 김 전 회장을 즉각 체포해 수사해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글이 올라왔다.

김 전 회장에게 성폭행당한 가사도우미의 자녀라고 주장한 A씨는 16일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에 "김 전 회장을 법정에 세워달라"는 게시글을 올렸다.

A씨는 "고발 이후 긴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요지부동인 가해자와 수사기관의 미적지근한 대응을 더는 참을 수 없었다"고 청원을 올린 취지를 설명했다.

A씨는 김 전 회장이 초반에는 노골적이지 않았지만 성추행 행동이 꾸준히 있었다고 주장했다.

A씨 어머니가 불편해하는 기색을 보이기도 하고 관리인에게 이 같은 사실을 울면서 얘기하기도 했지만 변화는 없었다고 했다.

이후 점차 성추행 수위를 높여가던 김 전 회장은 급기야 성폭행을 했다고 A씨는 주장했다.

그는 또 "(김 전 회장이) '유부녀들이 제일 원하는 게 뭔지 아나. 강간당하는 걸 제일 원한다'라는 사회지도층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 여성관을 담은 말들을 하기도 했다"고도 주장했다.

A씨는 성폭행 사실을 숨기기 위해 김 전 회장이 합의를 종용해왔다고도 폭로했다.

A씨는 "김 전 회장은 경찰 소환에 불응하면서 막강한 재력을 이용해 여권이 무효화되고 인터폴에 적색 수배가 내려진 상태에서도 호의호식하며 지내고 하수인을 통해 계속 합의를 종용해왔다"며 "무력감은 정말로 저희 가족들을 힘들게 한다"고 말했다.

이어 "김 전 회장은 떳떳하다면 합의하자고 하지 말고 즉시 귀국해 수사받고 법정에 서야 한다"며 "그렇게 할 수 없다면 대한민국 수사기관이 나서서 적극적으로 김 전 회장을 체포해달라"고 요구했다.

서울 수서경찰서에 따르면 김 전 회장은 별장 가사도우미로 일하던 B씨로부터 성폭행과 성추행 혐의로 지난해 1월 고소당했다.

김 전 회장은 그보다 앞서 2017년 말에도 비서를 상습 성추행한 혐의로 고소를 당해 회장직에서 물러난 바 있다.


A씨 가족이 게시한 청와대 국민청원글 전문

**그룹 전 회장 김**의 성범죄 피해자 가족입니다. 제발 그를 법정에 세워주세요

**그룹 김** 전 회장을 법정에 세워 주십시오.

Jtbc에서 보도된 **그룹 김** 전 회장의 성폭행 피해자의 자식입니다.
고발 이후 긴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요지부동인 가해자와 수사기관의 미적지근한 대응을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언론보도와 함께 이렇게 청원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이혼 이후 자식 둘을 오롯이 혼자 떠안으셨습니다. 갑자기 생계와 자식들의 학비를 해결하셔야했기 때문에 얼마 없는 위자료로 조그만 식당을 하게 되셨습니다. 하지만 준비 없이 시작된 장사가 잘되기는 어려웠고 금방 경영난에 빠져 대부분의 재산을 잃고 빚만 떠안은 채 가게를 처분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사실상 혼자서 가게를 유지하시느라 건강까지 극도로 나빠지셨고 상황이 매우 좋지 않으셨습니다. 이후 어머니는 개인파산을 신청하시게 되는 최악의 상황까지 치닫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먹고 살고 자식들을 건사해야겠기에 일자리가 많은 서울로 가 힘든 식당일을 전전하시게 되었습니다. 몸도 추스르시지 못한 채 고된 일을 계속 하시다 몸 더 나은 일자리를 찾던 중 생활정보지에서 우연히 가사도우미를 구하는 광고를 보게 되었습니다. 광고에는 입주 도우미로 집에서 전반적인 가사를 돌보는 일이라고 되어 있었습니다. 관리해야 할 집은 넓지만 식구가 적고 월급이 많아 어머니는 면접을 가셨고 며칠 뒤부터 일을 시작하셨습니다.

처음 일을 시작하셨을 때 어머니는 단순히 시골의 큰 부잣집이라 생각하셨다 합니다. 그 곳이 **그룹 김** 회장의 집이란 건 한참 후에 알게 되셨습니다. 하지만 그런 사실과 관계없이 숙식이 해결되면서 월급도 많아 열심히 일하면 작은 종잣돈이라도 마련해 다시 일어설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셨다 합니다. 당시 저와 전화로 좋은 직장을 구한 것 같다, 몇 년간 열심히 일해서 다시 시작해보자고 좋아하시던 어머니의 목소리가 지금도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부터 어머니와 하는 통화에서 힘이 없고 너무 힘들어 하시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그만두고 싶다고, 너무 힘들다는 말을 계속 하셨습니다. 전화로 말없이 흐느끼시기도 했습니다. 그때의 저는 졸업을 앞두고 있었고 집의 경제적 상황이 어떤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힘들어도 조그만 참아줘요, 나 졸업할 때까지 만이라도 그 집에서 일하셨으면 한다고.. 그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돌이켜보면 어머니는 이미 깊고 어두운 수렁에 빠졌지만 자식에게 차마 말을 못하셨던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지레짐작으로 단순히 일이 힘들고 자존심 상하는 것은 어느 일을 하더라도 그렇다, 조금만 참자고.. 돌이켜보면 정말 어처구니없는 말을 했습니다. 정말, 왜 그때 눈치 채지 못했는지 자식인, 제가 죄인입니다.

처음에는 김**가 노골적이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수발을 들 때 실수라고 하기엔 여자로써 느끼는 기분 나쁜 성추행 행동들이 있었지만 어머니가 차가운 눈빛을 하면 아이쿠! 미안해 라며 얼버무렸답니다. 이런 일들을 관리인에게 울면서 말하기도 했으나 워낙 회장님이 서민적이고 장난을 좋아해서 그렇지 나쁜 의도는 없다는 말만 돌아왔다고 합니다.

이후 수개월 동안 외국에 다녀온 김**는 일본의 음란물 비디오와 책을 구입해 왔고 고용인을 시켜 TV에 음란물을 볼 수 있게 장치하여 시청했습니다. 처음엔 어머니에게 방에 들어가 있다가 다 보면 나오라하더니 점점 어머니가 일을 하고 있어도 거리낌 없이 음란물을 보려고 tv를 틀려고 해서 어머니는 밖에 나가 있다 들어오기도 했다 합니다. 그러다 김**는 어머니에게 음란물 내용을 말하기도 하고 내용이 어떠한 것이며 재미있었다, 좋았다는 등의 소리를 늘어놓았습니다. 모르는 사람이 보아도 성적인 도착증이 매우 심해보였다고 합니다. 포르노의 내용도 대개 나이가 많은 중년배우가 나오는 내용이었는데 그것을 보고 어머니가 극도로 불안해 하셨다합니다. 또 “유부녀들이 제일 원하는 게 뭔지 알아? 강간 당하는 걸 제일 원하는 거야.”라는 사회지도층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 여성관을 담은 말들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어머니는 그 지옥 같은 상황에서 하루라도 빨리 그만두고 싶어 하셨지만 위에서 말한 파탄 난 경제사정, 아직 학업 중에 있는 자식, 그리고 후임자를 구하기 힘드니 그만두지 못하게 계속 설득하는 관리인 등 여러 가지 일들이 겹쳐 그만둘 타이밍을 잡지 못하고 계셨습니다. 결국 추행과 함께 수위를 더해 거듭하다 김**는 차마 제 손으로는 적을 수 없는 그 일을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어머니는 그런 일이 한번 이었으면 조용히 묻고 그 집을 나오려 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김**의 범행은 그 후로도 수 회에 거듭해 일어났고 어머니는 그 환경에서 자포자기의 상태가 되었다고 합니다. 뭔가 잘못되어 가는 데 뭘 해야 할 지 모르는 바보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다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이렇게 당하고만은 있을 수 없다는 생각에 김**의 언행들을 녹음하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어머니가 몸이 편찮으셔서 힘들어 하는데 또 벌겋게 달아오른 눈을 하고 다가오는 김**를 밀쳐내며 당장 그만 두겠다고 소리를 쳤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집을 나오시게 되셨습니다. 그 후 김**와 그 하수인들은 법이라고는 아무 것도 모르는 어머니를 회유하여 그때 그 일들은 어머니와 합의하에 있었던 일이라며 자신들은 오해를 살만 한 돈을 줄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가사도우미로서 그 집안에서 보고 들은 어머니와 관련 없는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외부에 발설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돈을 건넸습니다. 이후 어머니는 저에게 일을 그만두었다는 말씀만 하시고 저에게 어떠한 말도 하시지 않고 집으로 내려오셨습니다.

이후 일 년이 지나고 억울하고 분한 상처들로 고소를 결심하신 어머니가 저에게 김** 집에서 당했던 일들을 말하시며 법으로 할 수 있게 도와 달라 하셨습니다. 저는 그곳에서 있었던 일들을 들으면서 얼마나 가슴이 찢어졌는지 모릅니다. 저는 어머니께 부끄러워하실 필요가 없고, 어렵게 용기를 낸 어머니가 고맙다는 말을 하며 위로를 건넸습니다. 그리고 그때는 고소를 하면 미국에 있는 김**를 데려와 금방이라도 법정에 세울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경찰소환에 불응하면서 막강한 재력을 이용해 여권이 무효화되고 인터폴에 적색수배가 내려진 상태에서도 호의호식하며 지냈습니다. 그러면서 하수인을 통해 계속 합의를 종용해왔습니다. 경찰 쪽에 방법이 없냐고 물어보았지만 그저 기다릴 수밖에 없고, 김**가 들어오면 공항에서 바로 체포된다는 하나마나한 이야기만 들을 수 있었습니다. 또 그가 현직에 있을 때 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룹 측은 김**가 퇴임하고 미국에 있어 자신들은 소재를 알 수도 없고 관계가 없는 일이라며 발뺌하고 있습니다. 희망은 물거품이 되었고 역시 힘 있는 사람은 달라도 다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머니는 그 집에서 나오면서 들었던 말을 해주셨습니다. “정치인이나 공무원은 고발당하면 끝이지만, 경제인들은 그냥 잊혀질 때까지 버티면 된다”는 말이었습니다. 그 때의 무력감은 정말로 저희 가족을 힘들게 하였습니다.

국민 여러분, 그리고 대통령님. 저희 가족이 바라는 것은 단 한가지입니다. 저희 가족의 일상을 파괴한 김**가 본인 말대로 그렇게 떳떳하다면 합의하자는 말 하지 말고, 핑계대지 말고 즉시 귀국하여 수사 받고 법정에 서는 일입니다. 그렇게 할 수 없다면 대한민국의 수사기관이 나서서 적극적으로 김**를 체포해 주셨으면 합니다. 제발 저희를 도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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