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톱스타뉴스 이창규 기자) 인조반정이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에 올라 눈길을 끈다.
인조반정은 조선의 3대 반정 중 하나로, 1623년(광해군 15년) 3월 12일 서인 반역 세력이 광해군 및 대북파를 축출하고 능양군을 왕(인조)으로 옹립한 사건을 뜻한다.
선조의 총애를 받고 세자 후보 중 하나였던 신성군의 동복 아우인 정원군의 장남이자 형이었던 능창군이 제거당한 개인적 원한, 북인의 독주가 불러온 당리당략적인 이해 요소가 맞물려 진행되었으나, 중종반정과는 달리 직접 반정을 주도했다.
처음에는 구굉과 이서 등이 주도했지만, 실질적인 주도자는 이귀, 김자점, 김류, 이괄 등으로, 이들은 이후 반정공신에 올랐다.
반정 실행 직전 이이반이 배신해 김신국과 박승종에게 사실을 일러바쳤으나, 광해군이 대처를 소홀히 해 인조반정이 성공했다.
이후 광해군은 피신했으나 붙잡혀 폐위된 뒤 유배되었다. 광해군은 제주도로 유배되었는데, 인조반정의 명분을 위해 인조는 그를 극진히 챙겼고, 광해군은 환갑을 넘기며 천수를 누렸다.
처음에 명나라는 광해군이 무슨 잘못으로 인해 폐위되었는지에 대한 불만이 있었고, 왜군을 끌어들여 광해군을 죽이고 궁궐에 불을 질렀다는 유언비어까지 나돌았다고 전해진다.
이후 22개월이 지나서야 모문룡의 추천으로 명의 승인을 받았다.
인조 대에서도 광해군 대에 이뤄지지 못한 개혁들은 진행되었고, 이는 이후 조선이 300여년을 더 버틸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
다만 친명배금 정책으로 인해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을 연달아 맞이해야 했으며, 청나라의 대두로 인해 왕이 항복을 하는 삼전도의 굴욕이 일어난다.
인조반정을 다룬 작품은 많은데, ‘궁중잔혹사 - 꽃들의 전쟁’과 ‘청풍명월’, ‘최종병기 활’, ‘광해, 왕이 된 남자’ 등의 미디어에 등장한다. ‘조선로코 - 녹두전’에서도 이를 다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