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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개혁] 이명박 정부 검찰 1년, 참여정부 5년과 비교하기…참여연대 '이명박 정부 5년 검찰 보고서'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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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수 기자] 검찰개혁이 중대한 화두로 떠오른 최근 참여연대가 지난 2013년 발행한 '이명박 정부 5년 검찰 보고서'가 주목 받고 있다.

'이명박 정부 5년 검찰 보고서' / 참여연대
'이명박 정부 5년 검찰 보고서' / 참여연대

검찰개혁의 올바른 방향을 잡기 위해서는 과거에 대한 평가와 반성이 중요하다.

윤석열 검찰총장은 17일 국감현장에서 "이명박·박근혜 정부와 문재인 정부 중 어느 정부가 (검찰) 중립을 보장했느냐"는 민주당 이철희 의원 질문엔 "제 경험으로만 보면 이명박 정부 때 대통령의 측근과 형, 이런 분들 구속할 때 관여가 없었던 것 같고 상당히 쿨하게 처리했던 기억이 난다"고 답변했다.

이에 2013년 6월 발행된 참여연대의 이명박 정부 5년 검찰 보고서에 담긴 중요한 글들을 옮겨 국민이 함께 검찰개혁을 생각해 볼 기회로 삼고자 해당 글을 옮긴다.

'이명박 정부 5년 검찰 보고서' 전문 보기

이명박 정부 검찰 1년, 참여정부 5년과 비교하기

하태훈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소장고려대 법과대학 교수

I. 들어가며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 1주년을 맞는다. 집권 1년에 대한 이러 저러한 평가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국정운영 지지도의 추이도 평가에 고려할 중요한 요소다. 대통령 선거에서의 압도적 지지에도 불구하고 지지율은 추락에 추락을 거듭하여 대선 득표율의 반절에도 훨씬 못 미치다가 이제 겨우 30% 정도를 유지하고 있는 모양이다. 최근 여론조사에 의하면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이명박 대통령을 찍었다는 지지자 가운데 3분의 1은 지금 선거를 다시 하면 이 대통령을 찍을 의사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고, 국정운영을 잘못한다는 응답자가 잘한다는 응답자의 거의 두 배에 달한 것으로 조사되었다. ‘어륀지’로 대변되는 인수위 활동과 취임 직 후 ‘강부자’, ‘고소영’으로 특징 지워지는 장관 임명 등에서 국민의 실망이 시작되었고, 정부정책에 대한 불신에 기인한 촛불집회로 지지도가 바닥 낮은 줄 모르게 하향곡선을 그렸다. 여기에 불안을 느낀 정부가 정부정책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불법, 좌파, 친북세력으로 몰아가며 공권력을 이용해 눌러가는 상황이 지속되다보니 지지도는 오를 줄 모르고 답보상태다.
지난 1년은 경찰과 검찰의 역할이 그나마 정권을 유지하게 하는 힘으로 작용한 것 같다. 촛불집회가 한창일 때는 경찰력과 물대포, 그리고 이른바 ‘명박산성’만이 청와대를 힘겹게 지키고 있는 형국이었다. 마치 그것마저 무너진다면 권력이 위태로워질 것이 두려워 안간힘으로 막고 있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그러나 촛불집회를 정권투쟁으로 간주하고 강경대응을 선포하더니 엄정한 법질서 확립을 내세우며 투입한 성급하고도 과도한 공권력이 급기야 용산참사를 낳았고, 경찰의 공권력 투입에 의한 철거민 사망에 검찰이 면죄부를 발부함으로써 정권과 검찰에 대한 불신은 봄이 오는 소리에 맞추어 커져갈 상황이다.   
이명박 정부의 검찰 1년을 평가하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1년 내내 검찰이 이명박 정부를 지탱한 힘으로 자주 등장하기는 했지만 우선 1년 밖에 되지 않아 아직 제대로 된 평가를 받기에 짧은 시간이라는 점 때문이다. 또한 그 평가의 주요 기준이 검찰의 정치적 독립성인데 이는 평가자의 시각에 따라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검찰이 정치적 중립성을 유지했는지, 검찰 수사가 법과 양심에 따라 공정하게 이루어 졌는지 등등은 평가자가 누구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객관적으로 평가하기가 쉽지 않다는 말이다. 그러나 기간은 짧더라도 그동안 검찰에 의해 무수히 많은 사건이 형사사건화 되었기 때문에 1년 동안의 검찰을 평가할 수 있겠다. 촛불집회, PD수첩, 광고불매 소비자운동, 공기업비리, 정연주 KBS 사장 배임혐의 사건, 미네르바, 용산참사 등등등.  
이 글에서는 비교적 손쉬운 비교방법을 통하여 검찰조직과 임무수행의 일관성을 중요한 척도로 삼아 이명박 정부 1년의 검찰을 평가해 보려고 한다. 과거 참여정부 5년 동안의 검찰과 이명박 정부의 검찰 1년을 비교하면서 적어도 검찰이 정권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였음을 부각시키고자 한다. 어떤 시기의 검찰이 더 정치적으로 중립을 지켰는지는 평가자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참여정부와 이명박 정부처럼 정권의 이념적 성향이 서로 상반되는 시기의 검찰이 그 때마다 다른 모습을 보였다면 이는 검찰조직이 매우 정치적 영향 하에서 검찰임무를 수행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어느 시기의 검찰이 더 바람직한 모습을 보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법집행의 일관성을 유지하지 못했다는 비난을 가할 수는 있을 것이다. 
대통령이 누구든, 법무부장관이나 검찰총장이 누구든 검찰조직과 임무는 동일한 것이다. 대통령이 누구냐에 따라, 법무부장관과 검찰총장이 누구냐에 따라 동일한 사안에 대한 수사결과가 달라질 수는 있는 것이 아니다. 동일한 사건이 어느 정권에서는 수사대상이 되기도 하고, 어느 정권에서는 수사조차 되지 않는다면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은 의심받게 되는 것이고 법집행의 일관성은 떨어지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김경한 법무부장관은 2009년 신년사에 법집행의 일관성을 강조했다. 검찰수사의 일관성과 검찰의 정치권에 대한 태도의 일관성이 곧 검찰의 정치적 중립 내지 독립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 글에서는 먼저 그 일관성에 영향을 줄 수 있었던 대통령의 발언, 이에 대한 법무부장관과 검찰총장의 반응 및 지시사항, 정책 등을 살펴보고 일관성의 잣대로서 수사의 일관성과 검찰 태도의 일관성을 살펴보기로 한다. 

II. 대통령, 법무부장관, 검찰총장 그리고 평검사

1. 참여정부의 검찰총장과 평검사
6년 전을 되돌아보자. 노무현 전 대통령 취임직후에 가졌던 전국 검사와의 대화에서 검찰 독립성 보장을 위한 제도개혁방안에 관한 논쟁을 벌이며 젊은 검사들은 청와대로부터의 독립을 호기스레 외치며 비판의 날을 세웠었다. 전국적으로 생중계된 대통령과의 대화에서 임명권자인 대통령을 호통 치던 객기도 보여 주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국회연설에서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수사를 받던 송두율 교수에 대한 포용력이 필요함을 피력했지만 검찰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송두율 교수를 구속했다. 그리고 2005년 10월 강정구 교수 사건에서 천정배 법무부장관의 검찰지휘권에 반발하여 김종빈 당시 검찰총장이 사표를 던지는 사태에 이르렀다. 이는 노무현 정부 시절 검찰의 정치적 독립을 보여준 사건들이다.

2. 지난 1년의 대통령과 법무부장관
지난 해 3월 이명박 대통령은 법무부 업무보고에서 “새로운 정권은 정치가 검찰권을 악용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며 더 이상 검찰을 정치검찰의 논쟁에 휘말리지 않게 하겠다는 의지를 밝힌바 있다. 대통령은 “과거 정치가 검찰권을 이용했던 때가 없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새로운 정권에서는 절대 없을 것”이라고 단호히 말했다. 대통령으로서 검찰의 정치적 중립 보장, 검찰이 정치에 부당하게 개입할 경우 엄단하겠다는 경고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대선기간동안 본인에 대해서 불거졌던 여러 가지 의혹에 대한 검찰수사에 의해 여론이 좌지우지됐던 경험에서 검찰의 정치개입의 문제점을 실감한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은 자신의 발언과는 달리 촛불시위나 용산참사 등에 관한 발언에서 이중적 태도를 드러냈다. 여러 사건에서 검찰수사에 앞서 수사에 영향을 줄 만한 발언을 거침없이 토해냈다. 촛불시위와 관련해 “일부 정책에 대해 비판하는 시위는 정부 정책을 돌아보고 보완하는 계기로 삼아야 하지만 국가 정체성에 도전하는 시위나 불법 폭력시위는 엄격히 구분해 대처해야 한다.”고 말해 검찰수사에 영향을 줄 발언을 삼가지 않았다. ‘떼법’이 없으면 GDP가 상승할 것이라는 진단으로 마치 경제위기와 사회불안의 책임이 촛불집회인 것처럼 책임을 전가하기도 했다. 
대통령이 인터넷이 독일 수 있다고 역기능을 얘기하자 권력기관이 앞 다투어 나서기도 했다. 국세청까지 세무조사 운운하며 대통령을 거들었다. 대기업인 광고주의 업무를 방해한다며 건강한 소비자운동을 불법으로 몰아세우고 의사표현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하는 발언도 주저함이 없었다. 청와대 뒷산에서 촛불시위를 보며 자책했다던 대통령은 유모차부대를 존재하지도 않는 법률인 아동보호법 운운하며 정부정책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불법으로 낙인찍었다. 용산참사 수사 과정에서도 경찰청장 문책여론에 대해 “공직자에게 정치적 책임만 묻는다면 위기상황에서 누가 일 하겠는가.”라고 발언했고, 검찰은 이러한 대통령의 발언 의도에 역행하는 수사결과를 내놓을 수 없었을 것이고, 실제 그에 부응하는 수사결과를 내 놓았다.  
법무부장관은 대통령에게 코드를 맞추어 2008년 취임사에서 경제살리기와 법질서확립을 빼놓지 않았다. 정부정책에 대한 비판적 목소리를 내는 시민들을 불법집단행동으로 보고 정부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좌익세력에 대해 엄정 대처를 강조하며 국민의 기본권행사를 형사범죄시하는 무식함을 드러냈다. 과격시위의 배후에 좌파단체나 체제전복세력이 있다는 발언은 7, 80년대 군사독재시절에서나 들을 수 있었던 소리였다. 이는 우편향의 시민단체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으로 스스로 정치적 중립성에 의심을 받을 발언이었다. 이는 대통령, 여당 등 정치권과 동일한 시각으로 정치권에 휘둘리고 있는 모습으로 비춰졌다. 법무부장관이 광고불매운동에 대해 수사를 지시하자 대검에서 특별단속을 밝히기도 했다. 법무부장관은 사이버 여론 단속을 위한 사이버 모욕죄 신설이나 사이버 범죄에 대응하기 위해 전국 검찰청의 전산·방송통신직 200명에게 특별사법경찰관 자격을 주고 사이버 범죄 전담 부서를 서울중앙지검에 설치할 방침도 밝혀 대통령의 의중을 앞질러 살피고 검찰권을 통치권의 주무기로 활용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음을 드러냈다.
한마디로 대통령이 스스로 검찰의 정치적 독립성을 훼손하고 검찰은 지난 정부 때와는 달리 아무 저항 없이 대통령의 뜻을 받드는 모습을 보였다. 대통령이 한 마디 하면 법무부장관이나 검찰총장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한 발 앞서가고 평검사들은 코드 맞추기에 부산한 법무부장관과 검찰총장에게 말없이 복종할 뿐이었다. 특히 수사 인력이 모자라 쩔쩔 맨다면서도 검사를 5명씩이나 투입하여 PD수첩이라는 방송프로그램을 수사했지만 수개월이 지난 지금 아직도 이렇다 할 수사결과를 내지도 못하고 있고, 인터넷 광고 안 싣기 운동의 불법성을 수사한다며 전국의 형사 부장검사를 모아놓고 다짐하기도 했다. 정권이 바뀌자마자 자기 사람으로 심고자 하는 청와대의 의중을 살펴 임기보장을 이유로 버티는 공기업사장이나 연구원장의 비리 캐기 수사에 정치적으로 검찰이 동원되기도 했다.  

3. 참여정부의 검찰총장과 이명박 정부 1년의 검찰총장 
검찰총장의 이중성도 마찬가지다. 검찰총장은 ‘절제와 품격’있는 수사를 강조하면서도 정치적 사안이 발생하면 곧바로 절제와 품격을 버리고 불법필벌을 외치며 법률을 들이대며 친북좌익세력이라거나 반질서 사범으로 낙인찍어 수사 대상으로 구속하여 정치적 편향성과 당파성을 드러냈다. ‘절제와 품격’있는 수사는 구호로만 존재했던 것이다.
검찰 창설 60주년 기념식(2008.10)에서 검찰총장은 “검찰은 격변의 시대를 온 몸으로 부딪히며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을 지켜내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다”고 자평했다. 그러나 검찰이 지향할 미래를 언급하면서 이에 관하여 한 마디도 없었다. 마무리 발언에 공정하고 불편부당한 자세, 치열한 고민과 불굴의 의지로 정치적 중립성을 확고히 지켜내겠다는 다짐을 말했을 뿐이다. 
검찰총장은 2009년 신년사에서는 국법질서 확립을 언급하면서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정체성을 부인하면서 친북좌익이념을 퍼뜨리고 사회 혼란을 획책하는 세력을 발본색원해야 한다는 전례 없는 강경발언을 서슴지 않았고, 검찰권 행사의 최우선 과제를 경제위기 극복에 기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수사와 경제위기 극복과의 관련성은 없는 것이지만 이러한 발언으로 정부의 친기업 정책에 부응한 수사를 주문한 것으로 대통령과 코드를 맞춘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검찰권이 대통령의 정책실현의 도구로 동원될 수 있음을 내놓고 드러낸 것이다. 특히 공기업 비리사건에서 잇따라 무죄판결이 확정되면서 검찰수사권과 공소권 남용, 정치적 압력에 의한 무리한 수사착수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III. 일관성이 결여된 검찰수사와 검찰의 태도

1. 검찰의 정치권에 대한 태도의 일관성
국민은 6년 전의 젊은 검사들로부터 미래의 희망을 보았다. 그들은 지금 중견 검사로 검찰의 중추에 해당한다. 그들은 지금의 상황에서 대통령이나 정치권에 어떤 반응을 보여야 마땅한가. 6년 전의 젊은 검사에 해당하는 지금의 젊은 검사들은 이 상황에서 왜 아무런 말이 없는가. 지난 6년 전의 기억을 되살려야 하는 것이 아닌가.   
지금 우리 앞에 선 검찰은 어떠한가. 정치적 독립을 이뤄낸 ‘큰 검찰’이 아니라 권력 앞에 나약해진 ‘작은 검찰’이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전면수사, 끝까지 추적수사 등 겁나는 단어를 열거하며 언론에 등장하는 비장한 법무부장관과 검찰총장, 그리고 그들 앞에서 충성을 서약하는 왜소해진 검사들만 보일 뿐이다. 지난 정부 때처럼 대통령이나 법무부장관에게 반기를 든 검찰총장의 모습도 보이지 않는다.  
 
2. 검찰수사의 일관성
지난 1년의 검찰수사의 특징은 선입견 수사라고 볼 수 있다. 대통령, 법무부장관과 검찰총장의 직간접의 수사관여로 자유로울 수 없었고 미리 수사결과가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는 수사였다. 촛불시위나 철거민이 생존권 사수 시위는 떼법이며 불법이고 이에 대한 공권력행사는 적법하다는 선입견 때문에 불공정 수사일 수밖에 없었고 균형 감각을 상실한 수사라는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 예로서 용산참사의 경우 용역업체의 폭력성이나 무리한 공권력투입은 수사 대상에서 제외시키고 철거민의 폭력만을 수사 대상으로 삼은 것을 들 수 있다. 검찰총장의 불법필벌은 어느 특정인이나 특정 계층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존재하지도 않는 좌파나 친북세력으로 낙인찍어 수사도 착수하기 전에 수사결과를 정해 놓고 하는 표적수사가 되는 것이다. 용산철거민 강제진압에 따른 참사사건에 대한 서울중앙지검의 수사도 마찬가지다. 경찰진압 당시에 용역업체가 참여하지 않았다는 주장이 언론에 의해 사실이 아님이 드러나자 뒤늦게 허둥대며 수사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검찰수사의 또 다른 특징은 경찰수사의 지휘권자가 아니라 경찰수사를 뒤처리하는 수사였다. 촛불집회나 용산참사 수사가 그 예라고 볼 수 있다. 더 정치적 영향 하에 놓여있는 경찰의 수사결과를 그대로 추인하는 모습은 수사 지휘권자로서의 지위, 기소권자로서의 역할을 포기한 것이나 다름없다.  
검찰은 지난 1년 정부의 입장을 대변하고 옹호하는 수사로 일관하였다. 그 대표적인 예가 정연주 KBS사장 배임죄수사다. 정권의 퇴진요구에 응하지 않은 정연주 사장에 대한 정략적이고 무리한 수사임이 곧 드러나게 될 것이다. 
표적수사의혹도 끊이질 않았다. 그 예가 미네르바 박씨 사건 수사이다.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 박 씨’ 사건을 수사하기 시작했다는 시점(2008년 12월 29일에 작성한 글이 인터넷에 게시된 시점)에 관한 검찰의 해명이 사실이 아님이 드러나고, 그로 인해 정부정책에 대한 비판적 의견을 내고 있던 그를 처벌하기 위해 벌인 표적 수사를 감추었던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 2009년 1월 ‘미네르바 박 씨’를 서울중앙지검 3차장이 담당하고 있는 마약조직범죄수사부가 체포했을 때, 서울중앙지검은 그가 지난 해 12월 29일 쓴 한 편의 글이 인터넷에 올라온 뒤부터 수사에 착수했다고 했지만, 서울중앙지검의 1차장이 담당하고 있는 형사5부에서는 문제의 글이 나오기 약 한 달 전인 12월 초부터 ‘미네르바 박 씨’에 대해 내사에 착수하였으며 신원도 파악했다는 것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미 지난 해 11월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미네르바 박 씨’와 같은 사람을 염두에 두고 법무부장관이 수사와 처벌을 검토하겠다고 한 바 있고, 곧이어 검찰총장도 인터넷을 통해 경제에 혼란을 끼치는 정보를 유통시키는 사람들을 처벌할 것이라고 천명하기까지 했다.
과연 참여정부 때의 검사라면 미네르바, PD수첩, 용산참사 수사가 이러했겠는가. 만일 그렇지 않다면 대통령이 누구냐에 따라, 정치적 및 이념적 지형에 따라 달라지는 일관성 없는 수사라는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다. 

IV. 법질서 확립을 위해 법치를 훼손하는 대통령과 법무부장관

대통령과 법무부장관의 법치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공권력 남용으로 이어진 것이다. 국민에게 요구하는 법질서 준수와 법치주의는 동일한 것이 아님에도 이를 동일시하여 법질서 확립을 위해서는 공권력 투입이 정당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법질서 확립을 위한 과도한 공권력 투입으로 법치주의를 훼손시키고 있다. 법치주의란 국가가 공권력을 행사할 때 지켜야 할 원칙이다. 법질서 확립을 명목으로 집회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하여 법치주의를 훼손하고 있다. 국민의 기본권 행사를 형사법적 시각에서만 바라보는 우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법무부장관은 한나라당 의원들을 만나 경찰관의 공무집행 과정에서 상대방의 ‘물리적 피해’가 있더라도 정당한 공무집행이면 면책 범위를 넓히겠다고 밝혀 경찰의 폭력 행사를 부추긴다는 지적을 받았다. 헌법에 보장된 노동3권의 행사를 불법시위로 간주하고 경찰력으로 진압하고 형사처벌하고 민사상 손해배상책임을 묻겠다는 발상은 법치훼손의 결정판이다.  

V. 과거사도 반성하지 않는 법무부장관과 검찰총장

지난 2008년 10월 검찰은 창설 60주년을 맞았다. 성대히 기념식도 하고 심포지엄도 개최하고 검찰이 기억해야 할 20대 사건도 발표했지만 진정으로 축하하고 건강한 미래를 기원하는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60주년은 도래했으나 국민들은 검찰이 축하받을 역사를 갖고 있지 않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아니면 지난 10여 년간 정치검찰의 오명을 벗어나기 위한 검찰 내외의 노력으로 검찰의 정치적 독립성이 어느 정도 확보되었으나 최근 이명박 정부 집권 이후 정치적 편향성이 다시 살아나고 있는 검찰이 미워서 축하의 마음이 생기지 않았을 수도 있다. 
검찰 60년을 총평하자면 ‘인권옹호기관이며 준사법기관’이라는 칭호는 과분하다. 검찰이 선정한 20대 사건에도 인권옹호기관으로서 검찰이 제 기능을 다했는가가 의심되는 사건들이 들어있다. 태영호 납부귀환어부 간첩조작사건, 부천서 성고문사건과 서울지검 검사 피의자 폭행치사사건 등이 그 대표적 사례이다. 이것에 그치지 않는다. 무수히 많은 재심무죄사건과 간첩조작과 같은 재심의 대상이어야 할 사건들이 인권옹호기관이라 불리는 것을 주저하게 만든다. 불법구금과 고문폭행의 방조자, 정치권력의 도구 등등의 오명이 감히 인권의 보루로서 검찰이라고 말할 수 없게 한다. 과거를 털어버리지 않는다면 영원히 과거의 낙인을 지우기 어려울 것이다. 
검찰은 진정 준사법기관이자 인권옹호기관이려면 더 이상 과거사정리에 방관자여서는 안 된다. 강 건너 불구경하듯, 다른 기관의 과거사정리가 끝날 때쯤 해서 슬그머니 편승해서도 안 된다. 어떤 이유로도 지금의 ‘모르쇠’는 정당화될 수 없다. 과거 인권유린 및 조작사건을 수사하거나 또는 기소했던 검찰은 지금까지도 그 어떤 내부적 진상규명 노력도 없었고 타 기관에 의해 진실이 규명된 사건들이 적지 않음에도 그에 대한 공식적인 과거사 반성도 없었다. 그 간 법원에서 밝혀진 7건의 재심무죄사건에 대해서 검찰이 한마디 반응도 없었던 것은 정의실현을 위한 진실발견의 한 축임을 포기한 셈이다. 그래서 더 이상 준사법기관으로 불릴 자격도 없다는 것이다. 인권수호기관이라 자부할 수도 없다. 그때 그 일은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던 중앙정보부나 안기부 소관이었기에 검찰로서는 역부족이었다고 변명할 수도 없다. 불법구금과 고문은 수사경찰이 자행한 일이라고 눈감아 버릴 수도 없다. 그 당시 검찰에게 수사지휘권이 있었고 수사권과 공소권의 주체였음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다. 검찰의 권력도 만만치 않았던 시절의 일이 아닌가. 유죄판단은 종국적으로 사법부의 몫이었으므로 검찰의 책임은 크지 않다는 항변도 조서재판의 관행을 생각한다면 설득력이 없다. 
검찰이 인권수호기관으로서 수사경찰의 폭행과 고문을 폭로하는 피의자의 절규와 양심의 목소리를 귀담아 들었다면 이런 불행한 일은 없었을 것이다. 오히려 잘못된 경찰수사에 적극 가담하거나 억지 증거를 들이대고 피의자에게 유리한 증거를 의도적으로 은폐한 사건도 있다. 이 모두 법이라는 이름으로 국민의 기본권이 제한되고 불법이 자행되던 유신시대와 권위주의 독재정권의 암울한 역사 속에서 검찰이 정치권력에 동원되어 벌어진 일이다. 법이 권력의 의지를 실현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였듯 검찰도 때로는 권위주의 정권의 수족임을 자인하였다.
검찰이 과거사 정리에 소홀한 것도 그렇지만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한동안 뜸했던 정치검찰이라는 단어가 심심찮게 들린다는 사실이다. 많은 국민에게는 묵묵히 살아있는 권력의 의지에 봉사하는 검찰로 비춰진다. 또 다시 그 권위와 신뢰가 추락할 위기다. 검찰과 법무부가 바닥 모르게 추락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려면 오욕과 회한의 역사를 바로잡는 일에 적극 나서야 한다. 검찰 60주년을 맞아 검찰은 과거 검찰권행사에 오류가 없었는지, 정치권력의 영향으로 정의가 왜곡되지 않았는지 돌이켜 보아야 한다. 사과할 일은 사과하고 책임질 일은 책임져야 국가공권력이 권위를 갖게 된다. 어두운 과거를 덮어두거나 이를 파헤치는데 주저한다면 검찰에 대한 국민의 불신은 가시지 않을 것이다. 미래는 과거와 현재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단절될 수도 없다. 검찰이 기억하기 싫은 과거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으려면 스스로 과거를 반성하고 청산하는 길 밖에 없다. 
그러나 지난 1년 이명박 정부가 과거청산에 급급했던 상황 아래서 역사의식이 있는 검찰을 기대할 수 있었겠는가.

VI. 위계질서의 공고화로 정치적 영향가능성이 커진 검찰

법무부장관은 검찰사무의 최고 감독자로서 일반적으로 검사를 지휘․감독하고, 구체적 사건에 대하여는 검찰총장만 지휘․감독한다. 검찰청법 제8조의 내용이다. 그렇다면 법무부장관이 정치적인 편향성으로 검찰사무에 관여하게 되면 검찰조직은 정치적 중립성을 잃고 수사는 정치적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의미다. 
검사는 한 몸이고, 상관의 지휘감독에 따라야 한다. 이것이 검찰총장을 정점으로 전국의 검사가 지휘복종의 통일적 조직체를 이루고 있다는 검사동일체 원칙의 핵심내용이다. 수년간 검찰조직에 몸담고 있다 보면 이 원칙이 몸에 밸 것이다. 그래서 법무부장관이나 검찰총장, 검사장이나 부장검사의 지시에 이의를 달 엄두를 내지 못한다. 지시의 부당함을 말하고 싶어도 상관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다. 명령의 부당함이 보여도 묵묵히 따를 뿐이다. 자신의 앞날이 그들의 손에 달려 있으므로. 그러다 보면 조직의 보스가 정치적이면 다들 정치적이 된다. 지금 우리는 불행하게도 이런 모습의 무기력한 검찰조직을 보고 있다. 내부의 다른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PD수첩 수사의 담당부장검사가 상사와는 다른 목소리를 인정받지 못하자 검찰조직을 떠날 수밖에 없는 위계질서의 조직이다. 정부정책에 비판적인 언론기능을 제압하고자 PD수첩 프로그램에 대해 전담수사팀까지 꾸리며 호들갑을 떨었지만, 정작 수사담당 주임검사였던 부장검사의 무혐의 처리 의견을 묵살하여 결국 10여년 중견간부로 경험을 쌓았을 한 부장검사를 조직 밖으로 밀어 내친 조직이 검찰조직이다. 이 사건은 검찰개혁의 필요성을 증명해 준 사건이다.  
법무부장관과 검찰총장은 인사권으로 위계질서의 조직을 장악한다. 공정하고 객관적인 인사가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의 핵심이다. 그러나 이 문제는 6년 전이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다. 정권에 코드를 맞추는 자들이 중용되고 승진된다. 지금은 공안검찰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음을 검찰인사에서 알 수 있다.    
여전한 청와대와 검찰과의 연결 끈도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을 해하는 요소다. 보이지 않게 청와대와 연결되어 있는 검찰이 늘 수상하다. 이것도 6년 전이나 지금이나 동일하다. 민정수석비서관을 전직 검사출신으로 둠으로써 그 끈을 유지하려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든다. 대통령 비서실에 파견된 검사도 있다. 물론 검찰청법 제44조의2에 현직 검사의 파견이 금지되어 있어 검사의 직을 그만두고 비서실 직원으로 채용되는 것이지만 다시 검사로 복직하는 편법을 행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VII. 나가며

우리는 일관된 검찰을 보고 싶다. 정권이 바뀌더라도 변함없는 검찰을 보고 싶다. 정권은 5년마다 바뀔 수 있다. 그럴 때마다 새 정권에 코드를 맞춘 검사들은 결국 검찰조직에 오래 몸담지 못한다는 사실을 경험으로 알고 있지 않는가. 6년 전처럼 대통령에게 대드는 검사들을 보고 싶다. 그런 검찰이라면 정치권이 눈치를 주더라도 꿈쩍하지 않을 것이며 정치에 기웃거리지 않고 옳다고 판단하는 바를 지켜나갈 것이라는 믿음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법 현실에서 권위주의를 청산하고 법이 정치적 지배의 도구나 기득권 옹호 장치로 쓰였던 시대를 한참 지나왔다고 생각했다. 검찰도 지난 국민의 정부 이후로 어느 정도 중립성을 힘겹게 지키고 있는 것 같았다. 검찰이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는 말을 실감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법과 공권력, 검찰권이 정권유지의 도구로 전락할 위기다. 국가와 사회의 안전과 지서를 위해서 개인의 인권쯤이야 희생되어도 좋다는 전체주의적 사고의 확산이 우려된다. 대통령이나 법무부장관이 외치는 ‘법대로’, ‘법치’가 위압수단으로 들린다. 법과 질서만 외치다 보면 과도한 공권력 행사는 필수적이다. 다른 목소리를 ‘국론분열’이니 ‘사회혼란세력’으로 낙인찍어 자유민주주의의 기본질서 확립을 명분으로 눌러버린다면 민주주의는 후퇴한다. 
법치국가와 법은 통제와 억압의 도구가 아니라 시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는 장치다. 또 다시 검찰은 정권의 시녀라는 오명을 뒤집어 쓸 것인가. 아니면 이제라도 지난 1년을 성찰하고 정신을 차릴 것인가. MB 검찰 1년, 그 기로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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