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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마민주항쟁 40주년 “1979년 10월 16일. 마침내 불꽃은 치솟았다” 관심 고조

  • 장필구 기자
  • 승인 2019.10.17 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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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필구 기자] 40주년을 맞은 부마민주항쟁에 대한 관심이 연일 고조되고 있다.

부마민주항쟁은 박정희 정권의 유신독재 체제에 저항해 1979년 10월 16일부터 닷새간 부산과 마산(현 창원시 마산합포구·회원구)에서 일어난 민주화운동이다. 시위 기간은 짧았으나, 군사정권 철권통치 18년을 끝내는 계기를 만들어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4·19혁명, 5·18민주화운동, 6·10민주항쟁과 함께 대한민국 현대사를 대표하는 4대 민주화운동 중 하나로 꼽히며, 지난달 늦게나마 국가기념일로 지정됐다.

KBS1 ‘1979 부마’ 방송 캡처
KBS1 ‘1979 부마’ 방송 캡처

지난 16일 오전 10시 창원 경남대학교 대운동장에서 ‘부마민주항쟁 40주년 기념식’이 첫 정부 주관 행사로 치러졌다. ‘1979∼2019 우리들의 부마’라는 주제 아래, 창원 청소년 뮤지컬팀 ‘빛날’의 식전공연을 시작으로 부마항쟁 참여자의 애국가 제창, ‘그날의 부마’ 공연, ‘문주의 불꽃’ 공연, ‘우리의 소원은 자유·민주·통일’ 합창 순으로 진행됐다. 특히 부산 출신 배우 조진웅의 글 낭송이 큰 주목을 받았다.

조진웅이 낭송한 글은 ‘거대한 불꽃 부마민주항쟁’이라는 시로, 당시 기자로 항쟁 대열에 섰던 시인 故 임수생의 작품이다. “1979년 10월 16일. 마침내 불꽃은 치솟았다. 우리들은 우리들의 투쟁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역사의 현장, 민중의 절대한 힘을 하나하나 찾아내 역사의 기록으로 남겨야한다. 민주 투사 만세.”

같은 날 오후 CBS 표준FM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에서는 “유신 붕괴 이끈 부마항쟁, 늦었지만 국가기념일 환영”이라는 주제로 정광민 10.16 부마항쟁연구소 이사장을 연결해 전화 인터뷰를 가졌다. 정광민 이사장은 부마민주항쟁 당시 부산대학교 경제학과 2학년 학생으로 당시 시위를 주동한 인물 중 한 명이다.

정광민 이사장은 부마민주항쟁 희생자에 대해서 “현재로서는 사망자로 확정된 분은 창원에 있는 유치준 씨 한 분입니다만, 아직까지 저희들이 이것이 유일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좀 더 진상조사가 진행되고 해야 되고, 또 저희들이 당시 연행된 사람 숫자만 해도 1500명이 넘는데, 이 숫자 외에도 파악되지 않는 희생자도 있을 수 있고. 그래서 이런 것들은 앞으로 좀 더 진상규명이 좀 활발하게 진행돼야 밝혀지지 않나 생각한다”고 촉구했다.

정관용 교수는 “79년 10월 16일부터 20일까지의 일이고 그리고 이런 항쟁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를 놓고 당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과 차지철 경호실장이 박 대통령 앞에서 싸우고 김재규가 총을 들어 박 대통령을 시해해서 그게 바로 유신의 몰락 10. 26 아니겠나”고 묻자, “맞다. 그래서 저희들 10월 16일에서 20일까지의 닷새간의 마산 시민의 항쟁, 민주항쟁이 결국은 유신정권의 붕괴로 이어졌다, 이렇게 말씀할 수 있다”며 자부심을 드러냈다.

정 교수가 또 “그런데 그 이후에 있었던 5. 18 또 그 이후에 있었던 6. 10보다도 제일 늦게 국가기념일이 된 거 좀 서운하지 않은가”라고 묻자, “그동안 안타깝게 생각하고 참 그렇다”는 소감을 밝혔다. “대통령이 대통령으로서 사과한다는 말씀 또 하셨는데 소회가 어떠신가?”라는 질문에는 “늦었지만 굉장히 기쁘고. 대통령께서 공식적으로 사과 말씀도 하고, 또 진상규명이나 배상문제도 적극적으로 하겠다고 하신 데 대해서 누구보다도 환영하고 기쁘고. 앞으로 좀 더 잘 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갖고 있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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