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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직격’ 강제 징용 피해자 이춘식 할아버지, 미안해하지 말라는 고등학생 편지에 눈물

  • 진병훈 기자
  • 승인 2019.10.11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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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병훈 기자] 10월 11일 ‘시사직격’에서는 지난해 10월 30일, 한일 관계에 후폭풍을 몰고 왔던 강제 징용 판결의 뒷이야기를 전했다. 신일본제철이 강제 동원 피해자인 원고 4명에게 각 1억 원씩을 지급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오자 아베 총리는 1965년 맺은 한일협정으로 모두 해결됐다며 판결을 부정했고, 기업에 배상 거부 지침까지 내렸다.

이후 화이트리스트(백색국가) 제외, 지소미아 종료 등 한일 관계는 악화되는가 했으나 한국의 불매운동으로 번지면서 일본 아베 총리의 실정도 낱낱이 드러났다. 특히 후쿠시마 원전을 둘러싼 은폐와 의혹들이 각 언론을 통해 전파되면서 한국인들의 일본 여행 자제가 급속도로 퍼졌다. 제작진은 먼저 대법원판결의 주인공 이춘식 할아버지를 만났다.

진행을 맡은 임재성 변호사는 24년생 이춘식 할아버지를 만나 그간의 사정을 설명했다. 한국 법원이 일본제철한테 서류를 몇 개 보냈는데 그 서류가 일본제철에 도달하지 못 하게 일본 정부가 반송시키고 있다. 이춘식 할아버지는 “돈이 아까운가? 억울한 것도 없다”며 일본 정부를 비판했다.

이춘식 할아버지는 최근 고등학생으로부터 편지를 받았다. 편지에는 할아버지 곁에 우리가 항상 있고, 죄송해하실 필요가 없다고 적혀 있었다. 이춘식 할아버지는 화이트리스트(백색국가) 제외된 직후 미안하다는 말씀을 남기신 바 있다. 많은 국민들은 이춘식 할아버지에게 응원과 위로를 보냈다. 이춘식 할아버지는 편지 내용에 끝내 눈물을 흘렸다.

최후의 방법은 일본제철의 국내 재산을 강제집행하는 것이다. 일본제철의 재산을 매각하기 위한 절차가 시작됐지만, 일본 정부의 방해로 더디다. 이춘식 할아버지는 19세에 기술을 배울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일본 가마이시 제철소로 향했다. 하지만 그곳에서 혹독한 노동을 해야 했다. 매일 새벽 5시 반부터 저녁까지, 고철을 차에 싣고 용광로에 쏟으며 소처럼 일했다. 이춘식 할아버지는 동료가 용광로에 빠져 죽는 모습도 목격했다고 한다.

2년 동안 무급으로 일한 이춘식 할아버지는 배상 판결이 난 지 약 1년 후인 지금까지 아무런 배상을 못 받았다. 당시 오랜 전쟁으로 심각한 인력난을 겪던 일본은 국가 총동원법을 만들어 조선에서도 인력을 동원한다. 더 많은 사람들을 끌어내기 위해서 징용, 알선, 모집 등 다양한 방법을 동원했다. 전국에 모집 포스터도 붙었다. 일본인과 똑같이 대우를 해주고 기술까지 배울 수 있다는 말에 청년들은 마다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부산항에 집결한 청년들은 일본으로 향했다. 신체검사, 신사참배를 하고 일본 각지의 제철소, 탄광에 배치됐다. 공장에서 2년을 꼬박 일했지만 아무런 대가도 받지 못한 할아버지는 미지급 기록이 나오면서 소송의 기회가 생겼다. 90년대 중반 일본의 한 고서점에서 발견됐다. 할아버지 이름과 본적, 미지급 임금이 남겨 있고, 그 밖에 한국인 3,000여 명이 기록되어 있었다.

KBS1 ‘시사직격’ 방송 캡처
KBS1 ‘시사직격’ 방송 캡처

KBS1 ‘시사직격’은 매주 금요일 밤 10시에 방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