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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포커스] 영화 ‘열두 번째 용의자’ 시대가 남긴 씁쓸함과 남겨진 질문들

  • 이은혜 기자
  • 승인 2019.09.27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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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혜 기자] *이 글에는 영화 ‘열두 번째 용의자’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그 시인의 죽음이 남긴 것은 무엇인가.

영화 ‘열두 번째 용의자’는 일제강점기 시대의 잔재가 남아 있고, 6.25 전쟁이 남긴 상처들이 적나라하게 전시돼 있는 1953년을 시대적 배경으로 하는 작품이다. 독특한 것은 공간적 배경이 ‘오리엔타르 다방’에 한정된다는 점이다.

‘열두 번째 용의자’는 오리엔타르 다방에 한정되는 장소의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배우들의 억양과 의상, 각종 소품들을 이용해 볼거리를 제공하고, 시간적 배경을 계속해서 상기 시킨다.

영화 '열두 번째 용의자'
영화 '열두 번째 용의자'

오리엔타르 다방은 그 시대의 모더니스트이자 엘리트 집단인 시인, 화가, 소설가들이 쉬었다 가는 곳이다. ‘예술가들의 공간’이라는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오리엔타르 다방의 균형이 깨지는 순간은 김기채(김상경 분)가 등장하면서부터다.

극중 김상경은 오리엔타르 다방과 어울리지 않는 가장 이질적인 존재다. 훤칠한 키와 다부진 체격, 깔끔하게 코트까지 갖춰 입은 외양적 모습은 알 수 없는 위압감을 준다. 이 불편함은 ‘육군 특무부대 소속 상사’라는 그의 진짜 정체가 드러나며 배가된다.

김상경의 등장과 동시에 오리엔타르 다방에는 미묘한 긴장감이 흐르기 시작한다. 이야깃거리에 지나지 않던 ‘백시인의 죽음’이 영화 ‘열두 번째 용의자’의 중심으로 들어오는 순간이기도 하다.

김상경은 ‘열두 번째 용의자’의 전반적인 흐름을 이끈다. 그는 각 캐릭터들을 설명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자신만의 추리를 이어가며 ‘백시인 죽음의 진실’에 가까워지려는 모습을 보인다.

​영화 '열두 번째 용의자'​
​영화 '열두 번째 용의자'​

이 과정에서 백시인과 인텔리 대학생 최유정의 이름이 동시에 언급되며 다시 한 번 전환점을 맞이한다. 이 포인트는 고명성 감독이 ‘열두 번째 용의자’를 통해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기점이기도 하다.

백시인의 죽음과 연결되는 최유정의 죽음은 노석현(허성태 분), 장선화(박선영 분), 박인성(김동영 분)의 심리에 변화를 가져온다. 이들의 심리 변화는 자연스럽게 김상경과의 대립과 주제 의식 공개 및 전달로 이어진다.

이들은 살인자를 찾아가는 추리 게임 형식의 대화를 나누지만, 그 끝에 남는 것은 결국 시대와 역사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의 1950년대는 어땠는가. 전쟁으로 가난했고, 불우했다. 전쟁이 끝났음에도 내부적으로는 사상 문제를 겪었고, 독립운동에 헌신했던 누군가는 ‘빨갱이’라는 오명에 목숨을 잃어야 했다. 이에 앞서 친일에 앞장섰던 기회주의자들은 반민특위(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가 이렇다 할 기능을 하지 못한 채 해체되며 처벌할 기회를 잃었다. 이후에는 독재 정권이 들어섰고, 반공과 경제발전 등을 이유로 과거 청산은 우선순위에서 밀려나기 일쑤였다.

영화 '열두 번째 용의자'
영화 '열두 번째 용의자'

‘열두 번째 용의자’의 이야기는 전반부에서 던져 놓았던 복선들을 적절하게 이용한다. 후반부쯤 등장하는 이 복선들은 모두 해방 전 친일파들의 모습과 맞닿아 있어 현재의 결말을 더욱 씁쓸하게 만드는데 일조한다.

이 영화는 관객들에게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기도 하다. 김상경과 허성태가 각자의 캐릭터를 연기하며 이야기하는 ‘애국’에 대한 질문이 가장 직접적이다. 이들의 물음과 주장을 따라가다 보면, 백시인과 최유정의 죽음이 남긴 진짜 의문이 무엇인지에 대해 곱씹게 된다.

시드니 루멧의 ‘12인의 성난 사람들’, 아가사 크리스티의 추리 소설 같은 전개와 분위기를 담아낸 ‘열두 번째 용의자’은 심리 추적극이자 시대를 이야기하는 역사극이기도 하다.

영화 '열두 번째 용의자'
영화 '열두 번째 용의자'

김상경, 허성태, 박선영, 김동영 뿐 아니라 남성진, 한지안, 동방우, 김희상, 나도율, 남연우, 김지훈, 장원영, 정지순 등의 배우들이 모두 제 몫을 해내며 자신의 자리를 확실하게 지킨다. 또한 동선이 한정적임에도 불구하고 각 캐릭터의 이야기와 특성을 실감나게 표현해내며 극의 분위기와 톤을 일정하게 유지 시킨다.

물론, 작품은 102분이라는 짧은 시간과 한정된 공간에서 묵직한 메시지를 담아내 했기에 일정 부분 의문을 남기기도 한다. 그러나 ‘열두 번째 용의자’는 이전 작품들에서 꾸준히 사회적 문제를 이야기했던 고명성 감독의 메시지를 담아내면서도 일정 수준의 영화적 긴장감들을 담아내는데 성공했다.

우리 사회의 끝나지 않은 비극이 무엇인지를 상기 시키는 영화 ‘열두 번째 용의자’는 내달 10일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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