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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신문의 길을 묻는다

  • 김명수 기자
  • 승인 2019.09.10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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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수 기자]

아래는 민언련에 등록된 글이며 민언련을 통해 저자의 동의를 얻어 게재합니다.

하단의 한겨레평기자들의 성명서는 편집자가 임의 추가했습니다.

김동민(단국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강사)

한겨레신문 입사 7년차 이하 기자 31명은 지난 9월 6일 <박용현 편집국장 이하 국장단은 ‘조국 보도 참사’에 책임지고 당장 사퇴하라>는 제목의 성명을 내고 “2017년 문재인 정권이 들어선 뒤 <한겨레>의 칼날은 한없이 무뎌졌다”고 비판했다. 제목만 보고는 의혹보도만 좇아가고 검증은 소홀했던 보도에 대한 용기 있는 비판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조 후보자의 사모펀드가 관급공사를 수주했다는 의혹이 불거지고, 그의 딸이 의전원에 두 번을 낙제하고도 장학금을 받았다는 사실이 보도됐을 때도 <한겨레>는 침묵했다.”며 의혹 제기에 소홀했다는 것이다. 물론 검증 얘기도 했지만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었다. 

기자들은 ‘과거 정부’와는 다르게 ‘문재인 정권’에서는 장관 지명자 검증 팀을 한 번도 만들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과거 정부, 10년 20년 뒤의 ‘권위적인 정부’라는 표현과 다르게 이 성명서에는 시종일관 ‘문재인 정권’이다. 과거 군사독재정권을 연상시키는 표현이다. “‘50대 진보 기득권 남성’을 대변하기 위한 신문으로 전락했다”면서 “당신들은 조국을 지키는 게 아니라 ‘해사 행위’를 하고 있는 것이다.” 라고 독설을 날리기도 했다. 

그리고 30년 전 창간사를 인용했다. “한겨레신문은 결코 어느 특정 정당이나 정치세력을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 않을 것이며, 절대 독립된 입장 즉 국민대중의 입장에서 장차의 정치 · 경제 · 문화 · 사회문제들을 보도하고 논평할 것이다.”

이 기자들이 주장하는 핵심은 어느 정부에 대해서나 똑같은 기준으로 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원론적으로는 맞지만 맥락이 빠진 경직된 사고다. 기자들이 사퇴를 촉구한 편집국장 등 시니어들의 심중을 헤아릴 수 있을 것 같다. 패기 넘치는 젊은 기자들과 다르게 유연한 사고를 하지만, 자칫 정부와 밀착된 신문이라는 지적이 저어되어 가짜뉴스에 대한 검증을 주저하며 엉거주춤하게 의혹보도 생산에 휩쓸린 것이다. 

따라서 후자에 대한 비판과 지적은 타당하지만 전자의 경륜은 평가를 해주어야 한다. 패기만 앞세운 젊은 기자들은 과거 정부에서처럼 검증 팀을 구성해 철저하게 의혹을 제기하고 검증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비판한다. 이 성명에 대해 KBS 공영노조와 보수매체, 유튜브 등이 반색하며 환호한 것은 성명서의 주장이 이처럼 오락가락하기 때문이다. 

창간사에서 특정 정당이나 정치세력에 편향되지 않는다는 것이 기계적 중립과 균형을 지켜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과거 정부’에서 검증 팀을 만들어 운영했으니 ‘문재인 정권’에서도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은 멍청한 기계적 중립이다. 그것은 한겨레신문의 창간정신이 아니다. 한겨레 기자들, 잘못 배웠다. 

중립이라는 것은 치우치지 않아야 진실이 보인다는 철학이다. 중립이나 균형은 방법론이지 목적이 아니다. 서양의 존재론은 물론이고 <중용>에서 말하는 중(中)과 화(和)의 조화, <도덕경>에서 말하는 무욕(無慾), 불교의 철학인 중도(中道)가 다 그런 것이다.

언론매체는 독자나 시청자들의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 한겨레 기자들이 50대 진보 기득권 남성들의 신문으로 전락했다고 비판하는데(왜 남성만일까?), 586 진보 기득권 남성이라는 제한적 표현은 악의적인 선전공세요 왜곡으로 보인다. 한겨레는 세대와 성을 초월하여 진보의 대변지여야 한다.  

저널리즘에는 객관적이고 공정한 보도라는 원칙과 함께 시대정신을 반영해야 하는 역사적 사명이 있다. 구한말에는 동학이 표명했던 반제 반봉건, 일제 시대에는 해방 독립의 꿈, 해방공간에는 통일된 자주독립국가의 건설, 독재치하에서는 인권과 민주화 등이 그것이다. 지금은 한겨레신문의 창간정신인 ‘민족 민주 민중’이 역사의 소명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한겨레신문 주주와 독자 구성을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시대적 과제는 저널리즘의 원칙과 충돌할 수도 있지만, 상보적 관계로서 조화를 이룰 줄 알아야 한다. 

독자들이 한겨레신문에 기대하는 것은 남북교류와 한반도 평화, 민주정부의 성공과 개혁, 계급차별 철폐에 기여하는 보도를 하라는 것이다. 당연히 이 시대정신에 역행하는 과거 정권에 대해서는 날을 세울 수밖에 없고, 문재인 정부에 대해서는 시대정신에서 이탈하지 않는 한 힘을 보탤 수 있는 것이다. 진보의 미덕은 유연함이다.  

한겨레신문이 비판받아야 할 지점은 정권홍보매체라는 음해가 두려워 부화뇌동했다는 사실이다. 보수 진보 가리지 않고 모든 매체들이 총동원되어 저널리즘의 원칙을 내팽개치고 정치적 목적으로 양산한 의혹이라는 이름의 허위날조보도에 대해 검증해줌으로써 국민들이 정확한 판단을 하게 해주었어야 했다. 그러나 하지 않았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밝힌 진실마저도 외면했다. 진실을 불편해하면 언론이 아니다. ‘조국 보도 참사’의 진짜 내용은 바로 이것이다. 

국기에 경례하는 조국 신임 법무부 장관 2019.9.9 / 연합뉴스
국기에 경례하는 조국 신임 법무부 장관 2019.9.9 / 연합뉴스

다음은 한겨레 평기자들의 성명 전문 (편집자 주)

《한겨레》가 부끄럽다.  
 
5일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를 비판하는 ‘강희철의 법조외전’ 칼럼이 ‘국장의 지시’란 이유로 출고 이후 일방적으로 삭제된 것은 현재 《한겨레》 편집국이 곪을대로 곪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하나의 단면에 불과하다.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지명된 뒤 《한겨레》는 도대체 뭘 했는지 묻고 싶다. 조 후보자의 사모펀드가 관급공사를 수주했다는 의혹이 불거지고, 그의 딸이 의전원에 두 번을 낙제하고도 장학금을 받았다는 사실이 보도됐을 때도 《한겨레》는 침묵했다. 

 
2017년 문재인 정권이 들어선 뒤 《한겨레》의 칼날은 한없이 무뎌졌다. 인사청문회 검증팀은 문재인 정권 1기 내각 이후 단 한 번도 만들어지지 않았다. 취재가 아닌 ‘감싸기’에 급급했다. 장관이 지명되면 티에프를 꾸리고 검증에 나섰던 과거 정부와는 전혀 달랐다. 검증팀을 꾸리지 않는다는 수뇌부의 무책임한 결정 때문에 다른 매체의 의혹 보도에 《한겨레》는 무참하게 끌려다녔다. 후보자에 대한 제대로 된 검증도, 잘못된 의혹 제기에 대한 추가 취재도 이뤄지지 않았다. 
 
이뿐만이 아니다. 법조팀의 선후배들은 의혹 제기 기사를 쓸 때마다 기사가 일방적으로 톤 다운 되고 제목이 바뀐다고 호소한다. 디지털부문에는 심심찮게 ‘현 정권에 비판적인 기사는 《한겨레》 공식 sns 계정으로 바이럴하지 말라’, ‘특정 기사는 《한겨레》 프론트 페이지에서 보이지 않는 곳으로 내려라’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조국 의혹을 정리하겠다는 영상팀의 발제를 에디터가 직접 자르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30대, 정치를 말하다’(가제)라는 토요판의 커버스토리 기사 역시 ‘국장의 지시’라는 이유로 미뤄졌다. 조국 후보자 반대 집회에 참석해 청년들의 박탈감에 대해 발언한 청년 정치인이 등장하기 때문이었다.
 
현 정권이 들어선 뒤 《한겨레》가 그간 보도했던 내용을 복기해보자. 김태우 수사관의 폭로로 불거진 청와대 특별감찰반 비위 의혹,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 폭로 사건 등 현 정권에 부담이 되는 사건들은 타 언론에 견줘 적극적으로 사실관계를 취재해 보도했다고 자부할 수 있는가?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이유는 무엇이며, 누구의 책임이라고 생각하는가? 혹시 ‘적극적으로 취재해서 보도하면 안됐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가?
 
타사 기자들은 손발이 묶인 《한겨레》 기자들을 공공연하게 조롱한다. 내부에서는 《한겨레》가 ‘신적폐’ ‘구태언론’이라는 자조 섞인 얘기가 나온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뒤 '민주당 기관지'라는 오명을 종종 들었지만, 이 정도로 참담한 일은 없었다.
 
박용현 편집국장 뿐만 아니라 국장단의 책임도 함께 묻는다. 국장단은 현 정권에 대해 비판적인 보도를 하지 못하는 상황을 적극적으로 방기했다. 주니어 기자들 사이에서는 “인사청문회 티에프가 있었다는 얘기를 마치 도시전설처럼 듣고 있다”는 자조섞인 우스갯소리가 나온다.
 
과연 이런 보도 참사가 일어나기까지 에디터의 역할은 무엇이었나. 타사 보도를 묵묵히 지켜보기만 하다가 관련 출입처에 있는 기자에게 “너무 안 썼으니까 한번 모아서 쓰자”는 것이 에디터가 할 말인가? 조 후보자의 행위 중 “과연 위법이라 할 수 있는 행위가 있느냐”는 데스크의 질문은 “절차적 불법은 없었다”는 조 후보자의 변과 비슷하다.
 
‘합법’의 울타리 안에서 소외되고 차별받는 이들에게 주목해온 《한겨레》가, 사회적 공정성과 정의를 외쳐온 《한겨레》가, “위법하지 않으니 기사화하기 어렵다”는 변을 하고 있다. 일말의 부끄러움조차 느끼지 못하는 국장단에 분노를 금치 못한다. 
 
현장에서 조국 보도에 대한 항의가 제기될 때마다 ‘밀실’과 같은 유리방에서 어떤 논의가 오갔는지도 묻고 싶다. ‘50대 진보 기득권 남성’을 대변하기 위한 신문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에 대해 국장단은 심각하게 고려해본 적 있는가. 50대 남성에 의한, 50대 남성을 위한 신문을 만들어오며 일각의 ‘절독’요구에 흔들릴 정도로 독자층을 취약하게 만든 건 국장과 국장단 자신들이다. 
 
국장과 국장단의 무책임한 결정은 ‘무능력’도 함께 남겼다. 제대로 된 검증을 못해본 탓에 검증의 기본 작업인 등기부등본 한 번 떼어본 적 없는 주니어 기자가 허다하다. 10년 뒤, 20년 뒤에 권위적인 정부가 들어선다면 지금의 주니어 기자들이《한겨레》의 존재감을 증명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보는가. 당신들은 조국을 지키는 게 아니라 ‘해사 행위’를 하고 있는 것이다. 후배 기자들이 취재역량을 기를 수 있는 기회를 선배 기자들의 정무적 판단으로 무참히 짓밟았다. 후배들에게 왜 이런 연판장을 돌리지 않느냐고 물었던 선배들은 ‘지금까지’ 뭘 하고 있었는지 되묻고 싶다. 더 이상 “우리 땐 이런 취재도 했지”라는 말은 하지 말라. 이는 “회사 내 세대 착취”라고 불러도 무방하다. 
 
대체 어떤 ‘절독’이 두려운가. 안일한 보도를 비판하는 독자도 적잖다. “정론직필 해야 할 《한겨레》가 어쩌다 관제언론이 되었느냐”는 전화를 받는 일도 있었다. 특정 집단의 독자 의견만 ‘선택적으로’ 대표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2030 취재원들은 “우리가 이렇게 분노하는 것 《한겨레》에 나갈 수나 있겠어요? 《한겨레》는 정권 비판 제대로 못하지 않나요?”라고 의구심을 표한다. 
 
30년 전 《한겨레》의 창간사를 다시 읽는다. 
 
“한겨레신문은 결코 어느 특정 정당이나 정치세력을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 않을 것이며, 절대 독립된 입장 즉 국민대중의 입장에서 장차의 정치·경제·문화·사회문제들을 보도하고 논평할 것이다.”
 
그토록 강조하는 ‘한겨레의 논조’가 대체 무엇인지 묻고 싶다. 정권에 따라, 대상이 누구인지에 따라 검증 기준과 수위가 변하는 것이 바로 ‘한겨레의 논조’인가. 일부 ‘586 진보 기득권 남성’의 목소리만이 《한겨레》가 말하는 ‘국민’인가. 사회의 불평등과 불공정, 지도층의 위선을 어떤 언론보다 앞서서, 날카롭게 비판해온 것이 《한겨레》가 고집스럽게 지켜온 논조 아니었나. 정치, 경제 권력에서 독립된 언론이라는 것이 창간 이후 그토록 자랑스럽게 목소리를 내온 ‘송건호 정신’ 아닌가. 
 
한 때, 우리에게 《한겨레》는 ‘저널리즘’과 동의어였다. 우리는 오늘 ‘한겨레’의 존재 이유를, ‘저널리즘’의 가치를 함께 잃었다. 검찰개혁에 대한 보도도, 공정한 인사 검증도 《한겨레》가 할 일이다. 어설픈 변명으로 일관하면서, ‘조국 지키기’에 나서지 말라. 
 
절망적인 마음으로 이 글을 써내려가는 이유는 그럼에도 희망을 가지고 《한겨레》를 바꿔보기 위해서다.  지금이라도 잘못을 인정하고, 언론으로서 역할을 다 하자는 것이다. 
 
더 이상 우리를 부끄럽게 만들지 말라. ‘기자’의 이름으로 언론자유를 억누르겠다면 떠나라. 앞선 선배들처럼 청와대로, 여당으로 가라. 《한겨레》와 언론자유, 그리고 당신들이 말하는 정의는 우리가 지키겠다. 
 
이에 우리는 요구한다.
 
1. ‘조국 후보자 관련 보도’는 《한겨레》의 보도 참사다. 박용현 국장과 국장단은 이 사실을 인정하고 스스로 직에서 사퇴하라.
 
2. 문재인 정부 출범 뒤 검증팀을 꾸리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지 편집국 구성원들 앞에서 상세히 밝혀라. 일방적인 통보가 아니라, 사유를 구체적으로 밝힌 뒤 후속 질문을 받아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는 자리를 조속히 마련하라.
 
3. 《한겨레》기사가 언론 본연의 역할과 괴리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일부 에디터들로만 구성된 독단적인 편집회의다. 편집회의 내용을 전면 투명하게 공개하고, 기사 배치와 구성에 대한 현장 기자들의 의견을 직접적·상시적으로 수렴할 수 있는 제도를 당장 마련하라.
 

2019년 9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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