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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女성추행' 플라시도 도밍고, 추가폭로 "女동료, 옷 속에 손 넣어 가슴 움켜져"

  • 장영권 기자
  • 승인 2019.09.05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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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권 기자] 오페라의 거장 플라시도 도밍고(78)로부터 성범죄를 당했다고 주장하는 여성이 또 등장했다. 앞서 도밍고는 수십년 동안 동종업계 여성을 성추행했다는 언론 보도로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4일(현지시간) 도밍고의 성추행 의혹을 집중 보도해온 AP통신은 도밍고와 함께 무대에 섰던 앤절라 터너 윌슨이 추가 피해 폭로에 나섰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윌슨은 워싱턴오페라의 1999~2000년 시즌 '르 시드'에서 두번째 여성 주연으로 캐스팅됐다. 남자 주인공은 도밍고였다. 

윌슨에 따르면 어느 공연 전날 저녁 윌슨과 함께 화장 중이던 도밍고는 의자에서 일어나 윌슨의 뒤에 섰다. 그러더니 갑자기 윌슨의 옷 속으로 손을 뻗어 신체를 만졌다. 당시 윌슨은 28세였다.

그는 AP에 "아팠다. 부드럽지 않았다. 그는 나를 세게 더듬었다"고 밝혔다. 이어 "누가 도밍고가 자신의 가슴을 움켜쥐기를 바라겠는가? 그러고 나서 난 무대로 가서 도밍고와 사랑에 빠진 연기를 해야 했다"고 털어놨다. 

수십년 동안 동종업계 여성 성추행한 플라시도 도밍고 / 플라시도 도밍고 페이스북
수십년 동안 동종업계 여성 성추행한 플라시도 도밍고 / 플라시도 도밍고 페이스북

도밍고는 단둘이 공연 관련 영상을 보고 저녁을 먹자며 끊임없이 그를 아파트로 초대했다. 그는 초대를 거절하면서 도밍고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말끝에 '마에스트로'(maestro·거장)를 존칭으로 붙였다고 회상했다.

공연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도밍고는 노크도 없이 그의 분장실로 들어와 키스를 요구했다. 도밍고는 "이건 어려운 역할이다. 힘을 내려면 키스를 해야 한다"고 우겼다고 한다.

윌슨은 자신이 결혼했다고 강조했지만 도밍고는 계속 신체 접촉을 요구했고, 결국 뺨에 키스하는 것으로 사건은 일단락됐다. 

AP는 1999년 10월4일 공연을 시작한 르 시드의 리허설 당시 윌슨이 쓴 일기장을 받았다. 윌슨은 도밍고와의 관계에 대해 '신이시여 제발 (상황이) 더 나빠지지 않게 해주세요'라고 적었다. 

윌슨은 도밍고의 성추행 파문이 일어난 뒤 도밍고의 팬들이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실제로 도밍고는 성 추문 보도 직후 공연에서 박수갈채를 받았다고 알려졌다.

그는 "팬으로서는 이렇게 매력적이고 관대한 사람이 그런 짓을 할 수 있는지 정당화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48세인 윌슨은 댈러스 지역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그는 지난 8월 도밍고가 1980년대 후반부터 8명의 오페라 가수와 무용수 한 명을 성추행했다는 AP 보도를 본 뒤 미투(나도 당했다)에 동참하기로 했다.

그는 "내가 이 기회를 침묵으로 넘겨버리면 20배 더 힘들어질 것이라는 걸 알았다. 매번 '미투'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어두운 곳으로 달려가는 데 지쳤다"며 "음악과 예술은 멋지다. 나는 이 사업이 젊은 여성들에게 최소한 공평한 기회를 줄 수 있는 진실성을 갖길 바란다"고 말했다.

도밍고는 성악가, 지휘자, 오페라 총감독을 넘나들며 업계에서 1인자의 지위를 지켜왔다. '도밍고 콩쿠르'로 알려진 권위있는 성악 콩쿠르 '오페랄리아 콩쿠르'의 창립자이기도 하다.

성 추문 이후 미국은 빠르게 대응했다. 도밍고가 총감독으로 있는 로스앤젤레스 오페라는 그를 조사하기로 했다.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와 샌프란시스코 오페라는 도밍고의 공연을 취소했다. 하지만 유럽 음악계는 '무죄 추정의 원칙'을 고수하며 별다른 반응을 내놓지 않고 있다.

도밍고의 대변인은 "AP가 도밍고를 깎아내리기 위해 벌이고 있는 캠페인은 부정확하고 비윤리적이다. 이 새로운 주장은 모순으로 가득 차 있다"고 반박했다.

한편, 플라시도 도밍고는 루치아노 파바로티, 호세 카레라스와 함께 세계 3대 테너의 한 사람으로 불린다.

플라시도 도밍고는 올해 나이 80세로 1941년 1월 21일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태어났고, 어릴 때 성악가였던 부모를 따라 멕시코로 이주하였다. 멕시코시티 음악원에서 피아노와 지휘를 배우다 나중에 성악으로 전향하였다. 그는 처음 사르수엘라(스페인 민속오페라) 극단에서 데뷔하였고, 1961년에 바리톤으로 데뷔했으나,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에서 테너인 알프레드 역으로 출연한 후 테너로 전환했으며, 얼마 동안은 바리톤도 병행하였다.

1962년부터 1967년까지 텔아비브ㆍ마르세유ㆍ뉴욕 등의 극장들을 전전하던 그는 1968년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에서 프랑코 코렐리의 대역으로 '아드리아나 르쿠브뢰르'의 마우리치오 역을 불러 대성공을 거두었다. 이후 베르디가 창조한 돈 카를로ㆍ오텔로ㆍ라다메스 등의 역할, 푸치니 및 베리스모의 주요 작품과 프랑스 레퍼토리 작품들에 출연하면서 빛을 발하였다.

1980년대 들어서는 어린 시절 공부했던 지휘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여 오페라와 교향악단을 지휘하기도 했다. 1990년대에는 '라 토스카', '라 보엠' 등의 오페라 지휘를 중심적으로 했고, 빈국립가극장 무대에서 클라우디오 아바도(Claudio Abbado) 지휘의 바그너의 오페라 '로엔그린'에 출연하며 바그너에 도전하였고, 독일 오페라까지 그 폭을 넓혀갔다.

플라시도 도밍고는 모차르트에서 비발디까지, 베를리오즈부터 푸치니, 바그너까지 어떤 테너 가수도 따라갈 수 없는 111가지 역을 노래했다. 93개의 전막 공연을 포함해 100개가 넘는 오페라를 녹음했으며, 그중 8개는 그래미상을 받았다. 또한 로마에서 방영된 오페라 '토스카'는 117개국에서 10억 명의 시청인구를 기록했다. 그는 1991년 처음 내한공연을 가졌으며, 1992년, 1995년, 2001년과 2009년에 내한공연을 가진 바 있다.

현재 워싱턴 오페라의 예술 감독이자 로스앤젤레스 오페라의 창립자로 예술 감독을 병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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