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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한지수-유우성-황상기, “‘추적60분’이 유일하게 귀 기울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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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톱스타뉴스 진병훈 기자) 8월 30일 ‘추적60분’이 1,326회로 대단원의 막을 내리게 됐다. 1983년 2월 27일 첫 방송을 시작한 ‘추적60분’은 대한민국 최초의 시사탐사 프로그램으로 지난 36년간 현대사의 기록을 담았다고 볼 수 있다. 결혼 예물로 고가의 시계를 주고받던 시절, 우리 사회의 허영심을 고발하면서 큰 화제를 낳았다.

인신매매의 현장을 고발했고 당시 금기였던 종교 영역에도 도전했다. 사회의 어두운 면을 쫓다 보니 선정적이라는 비판도 받았다. 쇠사슬에 묶여 감금된 사람들이 모자이크도 없이 고스란히 방송에 나간 것이다. 하지만 정신질환자 보호시설에 대한 정부의 법제 마련이 나오는 계기가 됐다. 담배의 유해성을 잘 인식하지 못했던 시절, 과학적인 실험을 통해 검증하기도 했다. 방송 이후 전매청은 일간지에 사과 광고를 내기도 했다.

1994년, 11년만에 다시 문을 연 ‘추적60분’은 우리 사회의 안전불감증을 비판했다. IMF 외환위기가 시작됐을 때는 약한 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였고 정치와 경제 등 거대 권력을 겨냥했다. 노무현 정부의 친서민 정책 임대주택 사업을 실태를 고발했고 방송을 본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담당 장관과 청와대 참모진을 심하게 질타했다. 이후 참여정부는 임대주택 사업에 대해 실태 조사에 들어갔다. 

제작진은 아마도 참여정부를 거대 권력으로 보고 ‘추적60분’의 취재 내용 덕분에 임대주택 사업 실태 조사에 들어간 것으로 해석한 것 같다. 그리고 ‘추적60분’의 영향력을 언급했다. 다만 이명박과 박근혜 정부 당시 그 영향력이 없었다는 게 아쉽다. 모두가 알고 있는 것처럼 참여정부는 당시 야당과 언론에 의해 일방적으로 공격을 받았고 비극을 맞아야 했다. 야당과 언론이 제기했던 일방적인 의혹들은 SNS가 활성화된 지금에 와서야 100% 진실이 아니라는 것이 하나씩 드러났다.

‘추적60분’은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노동자 이야기를 들려주며 큰 관심을 받았다. 2010년 5월 5일 방송에서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가 백혈병으로 숨진 故 황유미 씨 이야기가 전파를 탄 것이다. 딸의 죽음을 보상받기 위한 아버지 황상기 씨의 노력도 큰 관심을 받았다. 황상기 씨는 스튜디오에 특별히 출연해 소회를 밝혔다. 황상기 씨는 당시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한 국회의원 사무실에 갔으나 비서관에게 “삼성을 상대로 함부로 할 수 없으니 다른 곳에서 알아보라”는 말을 들어야 했다.

그러다 제보를 받는다는 뉴스 자막을 본 황상기 씨는 마지막으로 추적60분이 찾아왔다고 한다. 시위 현장에서 삼성전자 측이 물리적으로 괴롭혔으나 추적60분 제작진이 카메라를 들고 찾아오면 금세 태도를 바꿨다고도 했다. 추적60분 방송 이후 노동자들로부터 제보가 쏟아졌다. 피해를 본 사람들을 위한 후원도 들어왔다. 정준희 교수는 수신료로 운영된 추적60분이 경제 권력을 견제해 왔다는 점을 강조했다.

2009년 11월 11일 방송 <온두라스에서 온 편지>의 제보자 한지수 씨도 특별 출연했다. 목격자에서 살인범으로 몰렸던 그녀가 살인누명을 벗었던 과정이 그려졌다. 2013년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의 유우성 씨도 특별 출연했다. 보수언론과 국정원이 놓은 덫에 빠졌던 유우성 씨는 눈물을 흘리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제작진은 당시 중국 현지 탐사 취재를 통해 국정원의 증거 조작을 밝혀냈다.

원하는 삶을 찾아 온두라스로 향했던 한지수 씨는 약 3개월 연수를 통해 다이빙 강사 자격증을 땄다. 그 무렵 룸메이트 댄이 집에 데리고 온 마리스카가 새벽녘 호흡 곤란 증세를 보이며 사망했다. 이중국적이었던 댄은 다른 여권을 들고 출국해 버렸다. 사건 이후 강사 자격증을 따고 이집트로 떠난 한지수 씨는 사건 발생 약 1년 후 이집트에서 출국하기 위해 공항으로 갔다. 그때 인터폴이 1년 전 마리스카의 죽음을 물었다.

한지수 씨는 이집트 구치소에서 온두라스 구치소로 건너가 교도소까지 가게 됐다. 진실을 밝히기에는 역부족이었던 그녀는 살인죄 혐의로 징역 30년이 구형됐다. 실제 수감된 온두라스 감옥에서 자포자기했던 한지수 씨. 그때 추적60분이 온두라스로 찾아와 한지수 씨 사건을 취재한다. 방송을 본 한 국회의원이 한지수 씨 사연을 언급했고 대한민국에서 처음으로 정부특별지원팀이 파견됐다. 한지수 씨는 그 파급력에 놀랐다고 한다.

정부특별지원팀의 노력으로 합당한 법적 도움을 받고 풀려난 한지수 씨는 무죄 선고를 받았던 그 소회를 밝혔다. 오히려 더 도와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했던 추적60분에 대해 “무한한 존경을 가지고 있고 너무 아름답고 강하고, 그래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유우성 씨는 출근 중에 국정원 직원들이 들이닥쳤던 그 끔찍했던 상황을 회고했다. 국정원 직원들이 언급한 것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였다. 간첩으로 활동했기 때문에 잡혀 들어왔다는 말을 들은 유우성 씨는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았던 기분이었다고 전했다.

KBS1 ‘추적60분’ 방송 캡처
KBS1 ‘추적60분’ 방송 캡처

가족이 없었던 유우성 씨는 친하게 지내던 목사에게 편지를 썼다. 2천 원짜리 우표도 살 돈이 없었던 유우성 씨는 교도관과 수감자들에게 입에 담지 못 할 험담을 듣기도 했다. 1심에서 유우성 씨의 결백이 밝혀지자 변호인들은 언론을 찾아갔으나 어느 곳도 보도하지 않았다. 당시 2013년이었던 상황을 회고했던 유우성 씨는 “왜 보도하지 않았는지 여러분들은 알 것”이라고 말했다. 그때 추적60분이 중국으로 건너가 취재를 시작했다.

제작진은 공소장에 적힌 내용을 취재해 증거가 조작된 사실을 밝혀냈다. 유우성 씨는 KBS조차 믿을 수 없었다고 한다. 당시 수사관이 “너는 개인이지만 나는 국가다. 개인이 국가를 이길 수 있을 것 같나?”라고 들은 말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우성 씨는 “국가에는 정의로운 국민이 있었고 추적60분이 있었다”고 밝혔다. 2심에서는 추적60분 방송을 증거로 제출했다. 유우성 씨는 “남에게 쉽게 하지 못하는 말을 오랜 역사를 가진 추적60분이기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2013년 여름, 추적60분은 3개월간 취재를 통해 국정원 증거 조작을 밝혀냈다. 그러나 방송 직전 프로그램 결방 통보를 받았다. 당시 통합진보당 사건이 있었기 때문에 시국이 맞지 않는다고 해서 연기됐던 것이다. 8번에 걸쳐 방송한 4대강 사업은 이명박 정부의 핵심 사업이었다. 4대강 사업을 방송하려고 했던 추적60분은 2주째 자연 다큐멘터리로 대체되기도 했다. 담당 PD들은 현수막을 걸고 항의했지만 사측에서는 이마저도 허락하지 않았다.

천안함 침몰 원인을 찾기 위한 노력도 외압을 받아야 했다. BBC 다큐멘터리의 이중 편성과 방송 내용을 수정하라는 요구도 받았다. 1996년 10월 13일 방송된 <한총련 북에 간 대학생들>은 국정원이 준 자료로 친정부 방송을 하기도 했다. 한총련 재판을 앞둔 방송이라서 다분히 의도가 보였다. 당시 제작진의 출연 거부로 MC 고성국 씨가 혼자서 방송했다. <쌍용양회 사과 상자> 편도 외압으로 인해 방송되지 못했다. 당시 제작진은 잠복 취재 및 현장 급습으로 불법자금 수수 현장을 고발했다.

유우성 씨는 앞서 “추적60분이 현재 종영이 아니라 지금 시대에 맞춰 더 좋은 프로그램과 더 업그레이드된 모습으로 가까운 시일 내에 저희들을 다시 찾아뵐 것이라고 믿고 싶다”고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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