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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 의친왕의 아들인 이우 왕자는 누구?…“히로시마 원폭에 피폭사한 뒤 야스쿠니 신사에 강제 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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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톱스타뉴스 이창규 기자) 채널A ‘천일야史’서 대한제국의 황족인 이우 왕자가 등장하면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1912년에 태어난 이우 왕자의 호는 염석, 상운이며, 의친왕의 차남으로 알려져있다. 일제에 순종적이던 형 이건과 달리 일제에 반항적이었기에 의친왕의 총애를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17년에는 흥선대원군의 장손 영선군의 양자가 되어 일제 때 왕가의 일원으로서 양아버지 이준용이 갖고 있던 공(公)의 지위를 계승했다.

생전에는 왕자로 불린 적이 없으며, 어렸을 때는 이우 공자, 공위를 계승한 뒤에는 이우 공 전하로 불렸다.

일제가 이우를 일본의 황족과 결혼시키려고 하자 먼저 친일파 박영효의 서손녀 박찬주와 결혼을 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우는 조선인과 결혼하고자 했고, 친아버지 의친왕 역시 일본인과 결혼하는 것이 낫다고 봐서 성사된 결혼이라고.

이우 왕자 / 인터넷 커뮤니티
이우 왕자 / 인터넷 커뮤니티

그는 박찬주와의 사이에서 이청, 이종이라는 두 아들을 뒀다. 장남인 이청은 이우의 사망 이후 일시적으로 공위를 계승해 이청 공 전하로 불렸다.

미국 마케트 대학교를 졸업한 뒤 설계 사무소의 엔지니어로 근무했으며, 귀국 후에는 석파 학술 연구원을 설립해 흥선대원군에 대한 연구 작업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차남 이종은 브라운 대학교 유학 중인 1966년 미국서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한편, 이우는 대한제국 황족들이 그러했듯 1935년 일본육군사관학교 45기로 졸업했고, 1936년부터 일본군 복무를 시작했다.

중일전쟁 발발 직후에 만주로 파견되어 복무했으며, 태평양 전쟁 발발 후에는 말레이시아, 필리핀 등을 순시했다.

1945년 6월 일본 본토 결전에 대비해서 히로시마 제2총군 교육 참모로 부임하라는 명령을 받았으나, 본인의 병과 아들의 병 때문에 7월에야 히로시마에 부임했다.

그는 히로시마로 떠나기 전 운현궁과 사동궁 식구들 앞에서 “일본으로 들어가면 나는 죽는 것과 마찬가지다. 내 손으로 처와 두 아들을 모두 죽이고 가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발언은 이상현 작가의 ‘조선의 낙조’에서 이우의 둘째 여동생이 증언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그리고 히로시마에 부임한 이우는 8월 6일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 폭탄의 폭심지로부터 700m 떨어진 곳에서 피폭당했고, 다음날 오전 5시경 사망했다.

일제의 패망 직후 서울 운동장에서 장례식이 거행되었고, 무덤은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의 흥선대원군 묘역인 흥원에 있다. 하지만 1959년 일본의 야스쿠니 신사에서 멋대로 영새부에 그의 이름을 올렸고, 그는 현재 전범들과 함께 합사된 상태다.

독립운동을 했다는 설이 있지만, 직접적인 물증이나 증거가 없으며 독립운동을 지원했다는 증거도 없다. 다만 그의 민족의식에 관한 이야기는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이우 왕자는 더불어 상당한 미남으로도 유명한데, 영화 ‘덕혜옹주’에서는 고수가 이우 역을 맡았다. 비중이 크진 않았으나 실제 이우와 닮은 모습으로 등장해 화제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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