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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항시인 이육사, 문재인 대통령이 가장 좋아하는 시인…그의 생애와 대표작은?

  • 이창규 기자
  • 승인 2019.08.15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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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규 기자] 저항시인 이육사가 지난 3월 이후 다시금 실시간 검색어에 올라 주목받고 있다.

이육사는 1904년 5월 18일 경북 안동서 태어나 1944년 1월 옥중에서 사망했다.

그의 본명은 이원록 또는 이원삼이며, 나중에 이활로 개명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이육사라는 이름은 필명이다.

그가 필명을 그리 지은 이유는 바로 그의 수감생활 때문. 1927년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 사건에 연루된 그는 대구형무소에서 3년간 복역했다.

이 당시 그의 수인번호가 264였던 것. 그래서 그는 자신의 호를 육사(陸史)로 짓는다.

이육사 / 연합뉴스
이육사 / 연합뉴스

출옥 후 베이징대학 사회학과에 입학한 후에도 그는 독립운동을 멈추지 않았다. 1933년 귀국한 뒤 ‘황혼’을 발표하며 등단한 그는 루쉰의 소설 ‘고향’을 번역하기도 했다.

1937년에는 동인지 ‘자오선’을 발간해 ‘청포도’, ‘교목’, ‘절정’, ‘광야’ 등을 발표했다.

그러던 중 1943년 형사에게 체포돼 베이징으로 압송됐으며, 이듬해 베이징 주재 일본 총영사관 교도소서 옥사했다.

그의 독립운동에 대한 노력이 인정돼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수여됐다. 이육사의 묘는 고향인 안동시에 위치해 있다. 2004년 이육사 문화관이 세워졌으며, 안동에서는 강변도로가 이육사로로 개칭되기도 했다.

이육사의 동생인 이원조는 좌파 문인으로 활동하다 해방 후에 북한 정권에서 고위직을 맡았으나, 남로당 숙청사건으로 인해 박헌영과 함께 숙청됐다. 그는 광복 이후인 1946년에 이육사의 사후 작품집을 출간하기도 했다.

한편, 과거 의열단에 가입해서 활동했던 이육사는 슬하에 딸인 이옥비 씨를 두고 있다. 이옥비씨는 현재 이육사문학관 근처의 목재고택에 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더불어 지난 2월에는 ‘런닝맨’에 그가 쓴 ‘광야’의 구절인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가 언급되기도 했는데, 그만큼 이육사가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는 존재라는 걸 간접적으로 드러낸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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