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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절 정부경축식 행사, 문재인 대통령 경축사는? 역대 정상 대북정책 메신저…오늘(15일) 오전 10시 천안 독립기념관, 지상파·JTBC 등 중계

  • 장필구 기자
  • 승인 2019.08.15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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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필구 기자] 광복절을 맞아 역사에 대한 누리꾼들의 관심이 뜨거운 가운데, 문재인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식 경축사에서 어떠한 발언을 내놓을지도 초미의 관심사다. 이와 관련해, KBS2 ‘지식채집프로젝트 베짱이’는 지난 13일 방송분에서 정부 광복절 행사 시 역대 대통령들의 경축사를 통한 한반도 소통 역사를 재조명했다.

오늘(15일)은 ‘제74주년 광복절’이다. 일본의 경제 보복 조치로 촉발된 한일 갈등이 한 달 넘게 이어지는 가운데, 이날 광복절에도 ‘반(反) 아베’를 외치는 시민들의 집회·행진이 서울 도심을 비롯해 전국 각지 곳곳에서 열릴 예정이다. 오전 10시에는 충북 천안 독립기념관에서 ‘제74주년 광복절 정부경축식’이 개최되는데, 해당 장소에서 광복절 당일 경축식 행사를 치르기는 2004년 이후 15년 만의 일이다.

KBS2 ‘지식채집프로젝트 베짱이’ 방송 캡처
KBS2 ‘지식채집프로젝트 베짱이’ 방송 캡처

지난 1945년 8월 15일, 라디오를 통해 일본의 항복 선언이 전해졌다. 그리고 70년 넘게 이어졌던 정부 광복절 경축식마다 역대 대통령들은 경축사를 ‘남북의 메신저’ 삼아 ‘통일’을 언급하면서 북한에 메시지를 보내왔다. 경축사에서 대북정책의 방향을 제시했고, 이에 따라 북한 역시 대남정책 방향을 결정해 왔다는 분석이다. 

1948년 광복절날에 현 광화문광장인 서울중앙광장에서 이승만 초대 대통령을 중심으로 ‘제3회 광복절 기념식 및 대한민국 정부 수립 선포식’이 열렸다. 며칠 후인 9월 9일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부가 수립됐다. 임을출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남북 간의 분단이 지속되고 있는 한 ‘우리는 영원히 해방을 못 한 상황이다’, ‘진정한 자주독립 국가를 만들지 못했다’, 이런 인식이 있다”고 설명했다.

박정희 제5~9대 대통령은 1970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남북 간에 가로놓인 인위적 장벽을 단계적으로 제거해 나갈 수 있는 획기적이고 보다 현실적인 방안을 제시할 용의가 있다는 것을 밝히는 바이다”라며 북측에 손을 내밀었다. 당시 대통령의 발언에 국민들은 당황을 했는데, 1.21 사태와 울진·삼척 무장공비 침투사건 등 북한의 계속되는 무장 도발로 남북관계가 극도로 긴장 상태였기 때문이다. 실상은 냉전의 주변부에 있는 약한 국가 입장에서 국제 질서 재편에 순응할 수밖에 없는 속사정이 있었다. 심용환 성공회대 역사교육과 외래교수는 “인위적은 남북 대화로 나갔던 부분은 분명히 있다”고 해석했다.

1972년 7월 4일 발표된 ‘남·북 공동성명’은 “서로 상대방을 반대하는 무력행사에 의거하지 않고 평화적 방법으로 통일을 실현해야 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해방 이후 최초의 남북 합의다. 김경재 남북이산가족협회 회장은 “그때 감동은 했다. 아, 세월이 밝아지는가 보다,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길은 생길지도 모르겠다는 그런 기대는 했다. 그런데 몇 년 후 두 번인가 세 번인가 남과 북이 사람 백 명을 교환해보고 그 다음 북한에서 문을 닫아버렸다”며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냈다.

노태우 대통령은 1988년 광복절 기념식 경축사에서 김일성에게 ‘주석’이라는 최고 예우 호칭을 사용해 눈길을 끌었다. 노 대통령은 “북한의 김일성 ‘주석’에게 6천만 동포의 염원에 따라서 민족의 통합을 실질적으로 추진해 나가기 위해서 빠른 시일 안에 나와 마나 회담할 것을 제의한다‘고 전했다. 이후 1991년에 남북 사이에 화해와 불가침 또는 협록과 교류에 관한 합의서인 남북기본합의서가 체결됐으나, 1994년 7월 8일 김일성이 사망하면서 그 권력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승계됐다.

1990년대 초부터 수면 위로 떠오른 북한 핵 문제로 계속되는 군사적 긴장 상태 속에서 단절된 남북 관계 분위기 가운데 임기를 시작한 김대중 대통령은 1999년에는 “남북 간의 평화와 협력을 위한 포용 정책을 계속해서 추진하겠다”, 2000년에는 “적화통일도 흡수통일도 전쟁과 파멸을 가져올 것”, 2001년에는 “햇볕 정책은 확고한 안보의 바탕 위에 북한과 평화 공존, 평화 교류를 추진해 나가면서, 장차 서로가 안심할 수 있을 때 평화통일을 이룩하자는 정책”이라고 발언했다.

당시 북한 측은 김대중 대통령의 정책을 의심의 눈길로 바라봤다가 점차 마음의 문을 열게 됐고, 이 과정에서 특히 중요한 역할을 한 게 금강산 관광이라는 전문가의 의견이다. 금강산 관광 가이드였던 정성혜 씨는 “북한 사람들하고 같이 이야기 나누고 등산도 하고 같이 (산을) 내려오고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눴었다. 한반도의 평화가 이렇게 찾아올 수 있구나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2000년 6월 13일 평양 순안공항에서는 분단 55년 만에 첫 남북정상회담이 치러졌다. 두 정상의 만남을 전 세계가 주목했고, 평화통일을 위한 6·15 남북공동선언이 발표됐다. 인도적 문제 해결 또는 경제협력 등 5개 항에 합의가 이뤄지면서, 남북관계는 합의의 시대에서 실천의 시대로 전환할 수 있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3년 광복절 기념식에서 “지난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은 남북한만의 합의가 아니다. 세계를 향한 평화의 약속이었다. 이 약속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우리는 현재 추진 중인 각종 협력 사업을 계속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에 따라, 2004년 개성공단을 본격 가동하기 시작했고, 2005년 5월 배우 김태희가 참여하는 개성공단 준공 기념 패션쇼를 개최했다. 앞서 2013년 8월 15일 광복절에는 평양에서 ‘전국노래자랑’의 MC인 송해의 북 측의 전성희가 공동 사회를 본 ‘평양노래자랑’이 기념비적인 행사로 치러졌다. 그리고 2007년 노무현 대통령이 육로로 북한을 방문, 10·4 남북공동선언을 통해 백두산 관광 또는 개성공단 확대 등에 합의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2010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역대 축사에 없던 ‘통일세’ 등 전에 없던 새로운 통일 대비책을 제시했다. 당시 언론은 김정일 건강 악화설을 집중 조명했는데, 이윽고 김정일은 전면적인 체재 대결을 선언해 분위기가 악회됐다. 박근혜 정부에서도 대북 제재와 봉쇄 정책이 이어지고, 지난 2016년 2월 10일 개성공단이 전면 폐쇄되기에 이르렀다. 이에 고립된 북한은 핵·미사일 개발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2017년 북핵 문제 심화로 전쟁 가능성까지 제기되던 시기, 취임 4개월 차의 문재인 대통령은 광복절 경축사에서 “북핵 문제의 역사는 제제와 대화가 함께 갈 때 문제 해결의 단초가 열렸음을 보여줬다. 한반도 평화 정착을 통한 분단 극복이야말로 광복절 진정으로 완성하는 길”이라고 발언했고, 그로부터 8개월 후에 판문점에서 김정은 국방위원장과 만나 11년 만에 남북의 두 정상과의 조우라는 역사적 장면을 이끌어냈다. 이후 2018년 9월 평양공동선언, 2019년 6월 남북미 3자 정상 회동이 뒤따랐다.

대통령의 연중 메시지 중 가장 무게감이 크게 여겨지는 광복절 경축사. 문재인 대통령이 이번 2019년 제74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어떠한 발언을 내놓을지 온 국민의 관심이 쏠린다. 이번에는 대북정책 뿐 아니라 일본을 향한 메시지 또한 던질 것으로 전망된다. 경축식 TV 중계는 지상파 방송국과 JTBC 등을 통해 시청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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