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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김현종, “일본 수출규제 관련 미국에 중재 요청한 적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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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톱스타뉴스 진병훈 기자) 일본의 경제 도발이 외신뿐 아니라 태국 방콕에서 열린 동아시아정상회의(EAS)에서도 지지를 받지 못한 가운데 자국 언론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반도체 핵심 소재인 고순도 불화수소를 생산하는 일본 모리타 화학공업 야스오 사장이 현지 언론 인터뷰에서 “지금은 견디고 있지만 한계가 다가오고 있다.”고 밝혔다.

모리타 화학공업은 삼성전자와 SK 하이닉스에 불화수소를 납품해 왔다. 야스오 사장은 7월 2일 신청한 수출 허가가 아직도 나오지 않고 있다며 불만을 털어놨다. 수출 서류도 훨씬 복잡해지고 양도 늘어난 상황에서 일본 업체들의 피해는 불 보듯 뻔할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가 벨기에에서 반도체 핵심 소재를 확보했다는 소식까지 이어지자 일본 업체들의 두려움은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8월 12일 tbs FM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는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을 초대해 일본 수출규제에 대한 입장을 들어봤다. 국가안보실은 북핵 문제, 한일 갈등, 한미 동맹 등 외교와 안보 이슈를 관할하는 곳이다. 통상교섭본부장이었던 김현종 차장은 “국가안보실과 통상의 공통분모라면 상대 국가와 협상해서 국익 증대에 이바지하는 목적은 같다”고 말했다.

김현종 차장은 15년 전 <한미FTA를 말한다>라는 책을 통해 일본과의 FTA 협상을 깼다고 밝힌 바 있다. 통상교섭본부장이었던 그는 미국과의 FTA를 체결하면서 FTA 주의자라는 소리까지 들으며 자칭 진보 진영의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런데도 일본과의 FTA를 깰 수 있었던 이유는 제2의 강제 병합이 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김현종 차장은 “당시 일본과 부품 소재 분야에서 격차가 컸다. 핸드폰을 하나 만들 때도 약 50%가 일본산 부품이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부품 소재 특별법을 만들고 투자를 많이 하면서 경쟁력도 키웠지만 우리 경제를 흔들 만큼 위험한 요소였다. 아직 갈 길이 멀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직접 제2의 강제 병합이 될 것이라고 보고했다. 또 FTA는 관세를 제거하지만 비관세 무역 장벽이 남아 있었다. 예를 들어 동등한 조건의 활어차지만 일본에 들어가려면 까다로운 조건이 넘쳐났다. 김현종 차장은 “일본산 활어차가 국내에 들어오려면 쉽지만 우리 활어차가 들어가려면 10가지 이상 까다로운 통관 절차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와이셔츠 칼라에 들어가는 핀에도 규격이 있다. 1970년대 김우중 회장이 와이셔츠를 일본으로 수출하려고 했지만 그 핀의 길이와 넓이 등 애로가 많았다. 2018년 현대와 기아가 일본에 수출한 차는 97대로 100대도 안 됐다. 삼성 스마트폰도 2억 8천만 불에 비하면 중국은 약 40억 불, 미국은 약 50억 불을 수출했다. 법으로 명시도 되지 않은 비관세 무역 장벽이 너무 심했다”고 덧붙였다.

더불어 “롯데건설이나 삼성물산도 건설업으로 나가 있는데 정부가 발주한 프로젝트 중에서 수주한 것이 한국 학교 외에는 특별한 것이 거의 없었다. 지방정부에서 등록하기도 까다로웠다. 관세를 협상한다고 해도 아무 소용이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한 가지는 당시 아베 부총리의 DNA 때문이었다.

김현종 차장은 “아베 신조 총리 부친이 아베 신타로다. 여기서 한자 ‘신’은 에도 막부를 무너뜨린 사무라이 집안이라는 뜻이다. 에도 막부를 쓰러뜨린 신사쿠 다카스기의 스승이 요시다 쇼인으로 그의 수제자들 중에는 야마가타 아리토모와 이토 히로부미가 있었다. 이들이 주장하는 것이 바로 정한론이었다”며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도 심한 우려를 표했다고 한다.

이어 “부품 소재 면에서 절대적으로 불리한데 제2의 강제 병합을 만들 필요가 없었다. 지금은 우리가 부품 소재 분야에서 10년 동안 약 16%의 기술력이 향상됐다”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상황이 달라진 것일까? 지금도 격차가 다 해소된 것은 아닌데도 문재인 대통령은 “우리는 이길 수 있다”고 확신했다. 

김현종 차장은 “일본의 전략물자가 1,194개로 자세히 살펴보면 영향을 미치는 건 한 줌밖에 안 된다. 구체적인 숫자는 밝힐 수 없지만 생각보다 많지 않은 것이다. 우리 전방 기업들의 산업이 건재하니 중소기업도 같이 살 수 있는 상생 관계도 마련되어 있다. TV, 반도체, 핸드폰 등 언제든지 뺏길 수 있는 모방 상품들을 배제하고 더 나아간 경제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는 점”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경제 체계를 만들어야 다른 국가에서 TV, 반도체, 핸드폰 등을 만들어도 우리의 핵심 장비를 통해 가능하게 한다. 즉 수출이 많아지면서 국가 경쟁력도 키울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우리 기업들에 인센티브를 줘서 핵심 기술 분야에 M&A를 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또 “일본이 취한 보복 조치를 보면 반도체에 들어가는 화학 제품들이다. 우리가 만약에 미국에 있는 유명한 다우케미칼 같은 회사를 인수했다고 하면 많은 문제가 풀릴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현종 차장은 “중공업 화학 드라이브에서 투자할 때 해외에 있는 우리 과학자들을 모셔오는 것도 중요하다. 중국도 월급을 몇 배로 올려주고 10년을 보장해주면서 스카우트를 하고 있다. 우리도 5G, 인공지능 등 4차 산업혁명에 이바지할 수 있는 기술자들을 데려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튜브 tbs TV ‘김어준의 뉴스공장’ 방송 캡처
유튜브 tbs TV ‘김어준의 뉴스공장’ 방송 캡처

여러 언론들은 김현종 차장이 미국에 중재를 요청하기 위해 방미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김현종 차장은 중재를 요청한 일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우리나라의 대법원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대해 삼권분립을 설명했다. 65년 한일협정을 뒤집은 것도 아니고 반인도적인 부분에 대해서 개인의 청구권이 살아있다고 설명한 것뿐”이라고 말했다.

이어 “1882년에 있었던 조미 수호 통상 조약은 한국과 일본 간에 문제가 있으면 미국이 중재한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루스벨트 대통령은 ‘조선이 나라의 구실을 해야 한다’는 전제가 있었다고 밝혔다. 조선이 약해서 중재를 안 해도 된다는 식이었다. 결국 가쓰라-태프트 밀약으로 이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현종 차장은 “중재라는 것은 결국 한 쪽 편을 들어야 하는 것이다. 중재를 요청하는 순간 계산서가 날아온다. 2000년도 우리는 일본 GDP의 5분의 1이었는데 지금은 3분의 1까지 따라왔다. 인구를 생각한다면 큰 차이는 없으며 중재를 요청할 일이 아니었다”고 강조했다. 

결국 김현종 차장은 우리의 입장을 설명하러 간 것뿐이며 미국이 한미일 공조와 일본 위주의 아시아 외교 정책 중 어떤 것을 선택할 것인지 그 입장을 확인하러 방미를 한 것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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