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uantcast

[이슈] 아베와 일본 우익의 뿌리 '일본회의' 탄생 배경과 목적을 다룬 '일본회의의 정체'

  • 김명수 기자
  • 승인 2019.08.11 00:36
  • 댓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명수 기자] 아베가 한국 때리기에 갑자기 나선 것에는 배경이 있다. 다름아닌 북한의 핵실험이 중단됐기 때문이다.

일본 내에서 극우파의 결집을 통해 집권하고 정권을 유지하고 있는 아베 입장에선 북한이라는 위협이 사라지면서 보수파를 결집시키고 중도파를 위협할 수 있는 결정적 수단이 사라진 셈이다.

개헌을 통해 자위대를 일본의 군대로 명문화시키고 일본의 재무장을 시도해 군국주의를 부활시키려던 일본의 극우파의 계획은 문재인 대통령이 북한과의 대화를 통해 남북긴장을 완화시키고 북한의 핵실험을 중단시키면서 주춤거리고 있다. 아베를 위시한 일본의 극우파로서는 누구보다 문재인 대통령이 눈엣가시가 아닐 수 없다.

국내의 일부 우익도 일본과 동일한 상황이다. 북풍으로 안보정권을 유지해왔던 우익은 남북관계가 완화되고 남북간 평화정착 프로세스가 수립된 것이 불만일 수 밖에 없다.

아베와 일본의 극우파의 정체를 알기 위해서는 '일본회의'라는 일본의 극우결사체에 대해 반드시 알아야 한다. 지난 2016년 아오키 오사무가 집필해 2017년 국내에서 번역된 '일본회의의 정체'를 읽어봐야 할 이유다.

아오키 오사무의 '일본회의의 정체'
아오키 오사무의 '일본회의의 정체'

 

교도통신사의 사회부와 외신부 및 서울 특파원을 지낸 아오키 오사무는 '일본회의 정체'를 통해 아베 내각 19명 중 15명 속해 있는 이 조직을 파해쳤다.

일본회의의 태동

아오키 오사무에 따르면 일본회의는 1997년 5월 30일 '일본을 지키는 국민회의'와 '일본을 지키는 모임'이 통합되면서 결성됐다.

'일본을 지키는 국민회의'는 우파인사가 총결집한 단체였고, '일본을 지키는 모임'은 우파계 종교가 결집된 단체였다.

오사무는 기본적으로 '친미애국' 중심의 전후 일본 우파가 무엇보다 '반공'을 최대 연결점으로 삼아왔으나, 냉전체제가 붕괴하면서 일본 우파진영이 '최대의 적'을 상실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고 말한다.

1990년 전후로 소련과 사회주의 정권이 붕괴하면서 냉전체제가 종식되면서 일본의 우파도 목표를 상실했다는 것.

이에 새롭게 목표를 설정하고 재결집할 필요가 발생하면서 일본회의가 태동했다는 것이다.

일본회의의 방향성

일본회의가 설립대회에서 역설한 '기본운동방침'의 핵심은 다음과 같다.

1. 황실에 대한 존승 2. 헌법의 개정 3. 국방의 충실 4. 애국 교육의 추진 등이다.

일본회의가 현실에 미치는 영향을 보기 위해선 '일본회의' 설립과 거의 동시에 '일본회의 국회의원간담회'가 발족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작가는 말한다.

97년 5월 29일 일본회의 국회의원간담회 설립총회가 호텔 뉴오타니에서 개최되었고, 당일 참가한 국회의원은 대리출석을 포함해 115명이었으며, 발족 이후 한달도 지나지 않아 입회자 수가 두배 증가해 204명에 이르렀다. 중의원 133명, 참의원 71명. 자민당이 대부분인 184명이었다.

일본회의는 단순한 시민결사체가 아니라 이념과 정책을 현실정치의 장에서 실현하려는 목적을 가졌으며, 단순한 정치단체도 아니며, 현실정치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로비 단체임을 설립 당시부터 선언했다고 작가는 전한다.

일본회의의 영향력

일본회의에 대해 야후재팬의 검색결과를 보면 국회의원 260명이 가입한 단체로 소개된다.

지난 2014년 출범 3차 아베 신조 내각을 마이니치신문이 보도한 사진을 보면 일본회의 회원이 컬러로 표시되어 있다. 23명의 내각 장관 중 아베를 포함해 15명이 일본회의 참여자다.

일본회의의 뿌리

오사무는 일본회의의 원류는 신증종교단체인 생장의 집이라 할 수 있으며, 생장의 집 출신자들에 의한 정치활동이 일본회의로 이어지면서 전후 일본 우파운동의 원류가 됐다고 말한다.

현재의 종교단체인 생장의 집은 일체의 정치활동을 하지 않고 있고 일본회의와는 조직적 관계를 전혀 맺지 않고 있으나, 생장의 집 신자들이 과거 우파 학생운동을 조직했다는 것이다.

오사무는 현재 일본회의를 지탱하는 주축은 이세 신궁을 본종으로 하는 신사본청을 정점에 둔 신도 종교집단이라 말한다. 종교단체로서의 신도와 신사계에는 엄청난 동원력과 자금력, 영향력이 있다며, 일본 전국 각지에 뿌리를 내린 8만여 곳의 신사가 있고, 이를 관리하는 신사본청은 일본 종교계에서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막강하다는 것.

일본회의의 설립 과정과 목적

메이지 유신부터 2차대전의 패전까지 신도신사는 국가가 관리하고 국가의 비호를 받았으며, 천황 중심주의와 군주체제를 강력하게 뒷받침하며 사람들을 무모한 전쟁으로 내모는 구동장치로 작동했다.

1946년 1월 1일 천황이 신년 칙서를 발표하여 '천황은 살아 있는 신이고, 일본 국민은 다른 민족보다 우월한 민족이며, 따라서 세계를 지배해야 할 운명을 지녔다'고 한 것은 '가공적인 관념'이라고 단언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 우파세력과 신도 신사계 내에서는 전후체제에 대한 울분과 전쟁 전 체제에 대한 동경과 회귀 욕구가 오랫동안 지속됐다.

이러한 신사본청은 일본회의에도 관여하고 있으며, 거대한 주축 중 하나다. 신사본청은 신도정치연맹(신정련)을 결성해 보수 정계를 지원하고 있다.

신정련에 따르면 신정련 국회의원간담회의 회원 총수는 중의원 223명과 참의원 81명을 합해 304명에 달하며 아베 신조 총리도 간부직을 맡고 있다.

3차 아베 내각의 각료 20명 중 17명이 신정련 국회의원간담회의 일원이다. 오사무는 정권 자체가 신정련과 일체화하고 있다고 말한다.

신정련은 홈페이지에 다음과 같은 정책목표를 명시했다.

1. 세계적으로 자랑스러운 황실과 일본의 문화전통을 소중히 하는 사회건설을 지향한다.
2. 일본의 역사와 특성을 고려한 자랑스러운 신헌법의 제정을 지향한다.
3. 일본을 위해 고귀한 생명을 바친, 야스쿠니의 영령에 대한 국가의례 확립을 지향한다.
4. 일본의 미래에 희망을 품을 수 있는, 마음이 건강한 아이들을 키우는 교육 실현을 지향한다.
5. 세계로부터 존경받는 도의 국가, 세계에 공헌할 수 있는 국가 확립을 지향한다.

앞의 3항목은 결국 과거로의 회귀다. 신정련이 4항과 5항에 집중했더라면 과거의 잘못에 대한 반성부터 했어야 하지만, 일본은 아직 과거에 대한 진정한 반성을 하지 않고 있다.

2016년 1월 신사에서는 일본회의가 주도하는 '아름다운 일본의 헌법을 만드는 국민 모임'의 포스터가 붙고 신사 경내에서 헌법개정 찬성 서명 활동이 전개됐다.

이 서명운동의 서명지에는 '헌법의 좋은 점은 지키고, 적절하지 않은 점은 새롭게', '세계 평화와 번영에 공헌하는 일본의 사명, 그것을 반영한 헌법이야말로 바로 지금 요구된다'와 같은 표현이 적혀 있었다.

행간에 숨은 맥락은 결국 자위대와 관련된 헌법9조의 폐기와 일본군의 해외 파병 등 전쟁활동의 가능이지만, 문구 그 자체만으로는 숨은 의도가 드러나지는 않는다.

국민회의는 1981년 10월 결성됐으며 그 뿌리는 원호법제화운동이었고, 일본을 지키는 모임은 1974년에 결성됐다.

일본의 우파는 근본적으로 평화헌법을 부정하며 강렬한 반감을 갖고 있다. 우파의 지향점이 패전 이전의 시대 즉 일본제국주의의 부활이며 일본의 군사대국화와 이에 기반한 패권이기 때문이다.

1991년 6월 국민회의는 '신헌법제정 선언'을 채택하고 '신헌법의 대강 작성'에 나선다.

'신헌법'이란 용어는 개헌, 자주헌법, 무효복원 등의 다양한 이슈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용어였다.

신헌법연구회가 2001년 발표한 '헌법전문'에는 천황과 국민이 하나되어 국가를 발전시켰으며, 메이지 이래의 입헌주의 정신과 역사를 언급하고 있다.

1995년 전후 50년을 맞아 무라야마 도미이치 정권은 전쟁을 하지 않는다는 부전결의 채택을 시도했으나, 일본의 우익은 이를 사죄결의라 판단해 맹렬히 반대했다.

결국 부전결의에 다시는 전쟁을 하지 않는다는 내용은 담기지 못했다. 이 결의안에는 일본이 과거에 행한 행위와 타 국민에게 안겨준 고통을 인식하며 깊이 반성하다는 문구가 포함됐지만, 과거 전쟁에 대한 서로 다른 역사관을 극복하여 역사의 교훈을 겸허히 배운다는 식의 주어 없는 문장이 담겼다.

중의원에서 가결된 국회결의 전문은 아래와 같다.

'본원은 종전 50주년을 맞이하여 전 세계 전몰자와 전쟁 희생자를 진심으로 추모한다. 또한 세계 근대사에서 발생한 수많은 식민지배와 침략적 행위를 생각하며, 일본이 과거에 행한 그러한 행위와 타 국민, 특히 아시아 각국 국민에게 안겨준 고통을 인식하며 깊이 반성한다. 우리는 과거 전쟁에 대한 서로 다른 역사관을 극복하여 역사의 교훈을 겸허히 배우고 평화로운 국제사회를 건설해나가야 한다. 본원은 일본 헌법이 내세우는 항구 평화의 이념 아래 세계 각국과 협력하여 인류공생의 미래를 개척해나가기로 결의한다.

본래 이 결의에 담으려 했던 내용은 과거 전쟁이 침략전쟁이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아시아 각국의 식민지배를 언급하려는 것이었으나 중의원 결의는 결국 침략전쟁을 인정하고 사죄하는 것에는 실패했다.

이 결의안의 핵심은 일본이 식민지배나 침략을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근대사의 식민지배와 침략행위라는 주어 없는 표현으로 전쟁과 식민지배를 일반화하면서 일본은 책임있는 주체에서 빠져나갔다.

이러한 주어 없는 화법은 한국의 정치인에게서도 자주 발견되곤 한다.

국내에서는 '주어 없는' 화법 혹은 '유체이탈' 화법이라고 누리꾼 사이에서 자주 사용됐다.

아베 내각의 목표

일본의 우익은 오래전부터 일본 헌법 개정을 추진해 왔으며 그 목표는 메이지 헌법으로의 회귀임은 분명하다.

아베 내각은 개헌이라는 확고부동한 목표를 향해 달려왔다.

그러나 지난 7월 21일 참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은 9석이 감소하고, 개헌을 위해 필요한 3분의2 의석 확보에 실패했다.

TV를 장악한 보수진영과 아베가 그토록 노력했지만 일본의 시민은 다행스럽게도 아직 깨어 있었다. 그러나 이번 개헌선 저지는 아슬아슬한 상황이었다는 점도 틀림없다.

일본의 정치계의 근간이 되고 있는 일본회의는 종교 우파조직이지만 그들의 주장은 제국주의적이며 패전이전으로의 회귀를 주장하고 있다.

오사무는 일본회의가 아베 정권을 좌우하거나 지배한다기보다는 양자가 상호 공감하고 공명하면서 전후체제 타파라는 공동목표를 향해 움직이고 있다고 설명한다.

아베는 위로부터 전후체제를 타파하려 하고, 일본회의는 아래로부터 풀뿌리운동으로 전후체제를 타파하려 한다.

일본에는 이러한 우파의 움직임을 견제할 좌파가 없다. 그렇기에 이토록 오랫동안 우파가 집권을 거듭하고 있다.

오사무는 일본 사회 전체가 병에 걸렸고, 일본회의는 그 심각한 상황을 상징한다고 말한다.

오사무는 일본회의와 우파의 정치사상은 자민족 중심주의, 천황 중심주의, 국민주권의 부정, 국가 중시와 인권의 경시, 정교분리의 부정 등이라 설명한다.

오사무는 일본회의를 한 마디로 전후 일본 민주주의 체제를 사멸의 길로 몰아넣을 수도 있는 악성 바이러스로 정의한다.

오사무가 걱정하는 바는 이러한 악성 바이러스가 광범위하게 확산됐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경고해야 할 언론마저 심각할 정도로 둔감하다는 것.

민주주의를 지켜내기 위해서는 언론이 바로서야 하는데, 일본의 TV방송은 이미 아베가 장악한 상태다.

일본 국민들의 정치관심은 한국과 비교할 때 무척 낮은 편이어서 이대로라면 언젠가는 아베가 개헌선을 확보하게 될 수도 있다.

지난해의 강제징용 대법원 판결이 반도체 수출규제를 불러왔고, 다시 화이트리스트 배제 결정이 이어지면서 국내에서는 NO JAPAN, 일본 불매운동이 광범위해졌다.

그러나 이제 무차별적인 반일이 아니라 일본 내의 극우파에 대한 반대라는 점을 분명히 할 때다.

No JAPAN이 아니라 No 아베라는 선긋기를 통해 일본 내의 깨어 있는 시민들이 힘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할 때다.

이러한 구분짓기는 아시아 전체의 평화를 위해 중요한 부분이다.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