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uantcast

[이슈종합] 故 정두언의 인생사…3선의원→4선실패→첫 번째 극단적 선택→MB저격수→일식집사장→정치평론가→사망까지

  • 장영권 기자
  • 승인 2019.07.17 11:57
  • 댓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장영권 기자] 3선 의원→4선 실패→첫 번째 극단적 선택→MB저격수→일식집사장→가수→정치평론가→사망.

고단했고, 열정적이었으며 단호했고, 파란만장했던 故 정두언 전 의원의 명복을 빕니다.

인생의 크고 작은 여울을 넘나들었던 진정한 보수의 정치인인 정두언의 사망 소식은 급작스럽게도 찾아왔다.

지난 16일 정두언 전 새누리당(자유한국당 전신) 의원이 숨진 채 발견되면서 많은 국민들은 충격에 휩싸였다.

경찰과 소방당국에 따르면 정두언 전 의원은 이날 오후 4시 25분께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인근 북한산 자락길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정두언 전 의원은 오후 2시 30분께 북한산 자락길에서 자신의 운전기사가 운전한 차에서 내려 산 쪽으로 올라간 것으로 전해졌다.

이어 오후 3시 42분께 정두언 전 의원의 부인은 그가 자택에 남긴 유서를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의 요청을 받고 소방당국이 함께 수색에 나서 정 의원을 발견했다. 발견 당시 정 의원은 숨진 상태였다.

故 정두언 전 의원 페이스북
故 정두언 전 의원 페이스북

경찰은 유서가 발견된 점 등으로 미뤄 정두언 전 의원이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보고 정확한 사망 경위 등을 파악하고 있다. 정두언 전 의원은 가족에게 미안하다는 취지의 유서를 남겼다고 경찰은 전했다.

경찰 관계자는 "폐쇄회로(CC)TV 확인, 현장 감식과 검시 결과, 유족 진술 등을 종합하면 현재까지 타살 혐의점은 발견되지 않았다"며 "부검 일정은 조율 중"이라고 밝혔다.

정두언 전 의원의 시신은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 안치됐다. 빈소는 17일 이곳에 차려진다.

빈소가 차려지기 전임에도 김용태 자유한국당 의원, 정청래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 정태근 전 새누리당 의원, 하태경 바른미래당 의원이 병원을 찾았다.

정태근 전 의원은 "(정두언 전 의원이) 오늘 같이 밥 먹자고 했는데 내가 어머니께 간장게장 사줘야 해서 안 된다고 했다"며 "연락하겠다고 했는데 그게 마지막 대화였다"고 울먹였다.

정두언 전 의원과 함께 시사 프로그램에 출연 중인 배우 김승우도 병원을 찾아 오열했다. 정두언 전 의원의 보좌관은 정두언 전 의원에 대해 "걱정이 많은 스타일이셨다"며 "최근에 현 정부 경제정책에 관해 고민이 많으셨다"고 말했다.

정두언 전 의원은 서울시 부시장을 지내다가 2004년 17대 총선을 시작으로 19대 총선까지 서울 서대문을에서 내리 당선됐으며, 20대 총선에서 낙선했다.

낙선 이후에는 종합편성채널 시사·예능 프로그램의 진행과 패널로서 활발하게 활동했으며 마포에 음식점을 개업하기도 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 '왕의 남자'로 불렸던 정두언 전 의원은 이 전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의 불출마를 요구하는 '55인 파동'에 앞장선 후부터 정치적 입지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정두언 전 의원은 저축은행으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2013년 1월 법정 구속돼 10개월간 구치소에 수감됐으며 2014년 11월 무죄 확정판결을 받았다.

유족은 부인과 1남 1녀가 있다. 발인은 19일 오전 9시이며 장지는 경기 성남 분당 메모리얼파크다.

故 정두언 전 의원 페이스북
故 정두언 전 의원 페이스북

정두언 전 의원은 지난 2018년 2월 한국일보와 인터뷰한 내용에서 아내와의 이혼과 첫 번째 극단적 선택을 했던 상황을 술회했다.

당시 정두언은 3선 국회의원으로 복귀한 이후 4선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찾아온 극심한 우울증때문에 스스로 목을 맸지만 신은 그를 데려가지 않았다. 정치 인생의 동반자이자 동업자였던 아내와 이혼하고 이후 방송을 통해 날카롭고 객관적인 평론가로서의 삶을 살았다.

그 고단한 정치 인생의 시련속에서 첫 번째 극단적 선택을 했었다. 당시 정두언은 “내가 악몽을 꾼 건가. ‘여기가 어디지’ 싶더라고. 가죽벨트로 맸는데”라며 “힘든 일이 한꺼번에 찾아오니까 정말로 힘들더라고. 목을 맸으니까. 지옥 같은 곳을 헤매다가 눈을 떴어. 한동안은 여기가 어딘지 가늠이 안되더라. 내 딴엔 짱짱한 걸 찾는다고 벨트를 썼는데…, 그게 끊어진 거야”라고 회상했다.

故 정두언 전 의원의 파란만장했던 정치 인생의 시작은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의 권유로 국무총리실에 사표를 제출하고 정계에 입문한 2000년이었다.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을 선거구에 출마했으나, 새천년민주당 장재식 후보에 4%차로 석패했다. 이때의 패배로 그는 우울증 등의 심리적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던 그에게 국회의원 이명박이 찾아와 서울특별시장 선거캠프 합류를 권했다. "이명박의 컨셉이 시대정신에 부합한다"는 판단을 내리고 승낙한 다음 이명박의 서울시장 출마를 거의 혼자서 준비하다시피했다. 그 결과 이명박은 서울시장에 당선됐다. 이후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서대문구 을에 출마해 당선되면서 본격적인 정치판으로 뛰어 들었다.

나무위키 자료에 따르면 2007년 제17대 대통령 선거를 앞둔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선출 전당대회에서 친이계의 핵심으로 이명박 캠프에서 활동하였다. 당내 경선 과정에서 상대한 박근혜 후보의 검증에 나서 "박근혜와 최태민의 관계를 낱낱이 밝히면 박근혜 좋아하시는 분들은 밥도 못 먹게 될 것"이라는 폭로성 발언을 하기도 했는데, 이는 9년 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드러나며 재조명받기도 했다.

2007년 12월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된 후, 대통령 당선자 보좌역이 되면서 MB 정권의 핵심 실세 대접을 받았다. 당시 언론에선 이명박 당선인을 따르는 친이계는 이명박의 큰형이자 포항에서 내리 당선되면서 영남을 대표하는 이상득계, 이명박의 6.3 항쟁 동기이자 과거 민주화운동 경력이 화려했던 이재오계, 서울시장 시절부터 함께하면서 당내 소장파를 이끄는 정두언계로 나뉘어져 있다고 분석할 정도.

故 정두언 전 의원 페이스북
故 정두언 전 의원 페이스북

그러나 이명박 정부 초기에 소장파 의원들과 함께 이명박의 친형인 이상득 의원에게 MB정권을 위해 2008년 총선에 불출마하라고 요구했고, 그 후로도 이상득 및 그 측근들의 권력사유화를 계속 비판하다가 결국 권력 핵심에서 밀려나고 말았다. 이 때문에 이명박 당선의 1등 공신임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권 내내 변방에서 돌았으며 심지어 불법사찰까지 당했다. 이때 야당 쪽에 영포목우회 관련 정보를 넘겼다는 의혹을 받고 여권에서 융단폭격하자 눈물의 기자회견을 하기도 했다.

이후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한나라당 후보로 서울 서대문구 을에 출마하여 당선됐고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면서 3선 타이트을 달았다. 이때 솔로몬 저축은행 비리 건으로 이상득과 함께 기소됐으나 2014년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정두언은 이 때문에 10개월간 구치소에 수감되어 있었으며, 무죄 확정 후 6,500만 원가량의 형사보상금을 받았으나 전액 기부했다고 전해졌다.

2015년 10월 25일 박근혜 정부의 역사 교과서 국정화 문제에 대해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자유민주주의에 역행한다는 이율배반적인 자기 모순이고, 전략적으로도 큰 실책”이라고 비판하면서 "나라가 군정 종식은 됐어도 왕정 종식은 못 했다"라는 발언을 해 주목받았다. 그리고 여당의 ‘친박 TK 패권주의’를 비판하며, "바늘 하나 들어갈 틈 없이 확고부동하다. 이들이 당을 주도하니 당이 수도권에 관심이 없고 민심을 알지도 못한다.", "그러니 수도권 의원들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고 불평하기도 했다.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낙선하면서 극심한 우울증으로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고, 이후 인터넷 강의 독학으로 심리 상담사와 분노조절장애 상담사 자격을 취득하면서 극복 의지를 보였었다.

20대 총선 이후 사실상 정계은퇴를 하면서 방송을 통해 정피평론가의 삶을 살았다. 특히 2016년 10월 박근혜 정권 몰락의 신호탄이 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고 나서는 더 강경하게 박근혜와 친박을 비판해 오다가, 남경필 경기도지사와 김용태 의원이 새누리당을 탈당한 바로 다음 날인 2016년 11월 23일 원외 인사 몇 명과 함께 전격적으로 새누리당을 탈당했다. TV조선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더이상은 이 당에 남아 있는 것조차 치욕스러워서 탈당한다', '보수의 가치인 자유 민주주의를 다시 일으켜 세워야 한다, 독재가 보수는 아니잖아요'라는 취지의 말을 남겼다. 또한 MBN의 시사예능프로인 판도라에 고정 패널로 출연하면서 박정희는 보수가 아니라며 "독재가 어떻게 보숩니까? 자유민주주의가 보수지. 종북이 진보라는 말도 잘못된 거에요"라고 말하면서 소신있는 정치평론가의 이미지를 심었다.

故 정두언 전 의원 페이스북
故 정두언 전 의원 페이스북

뿐만아니라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월간 정두언'이라는 코너를 통해 보수계의 시각에서 정치 판세를 분석·논평하고 있다. 김현정의 뉴스쇼는 격주로 '월간 정두언'과 '월간 정청래' 코너를 운영하는데, 정두언 전 의원과 정청래 전 의원은 같은 프로그램에 출연함에도 서로를 매섭게 비난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2017년 4월 뉴스쇼에서 월간 정두언과 월간 정청래를 동시편성하며 두 사람이 처음 뉴스쇼에서 만나게 되었는데, 두 사람은 기존의 날선 태도에서 벗어나 판도라에 함께 출연하는 인연으로 서로에 대해 잘 알게 되었다면서 서로를 존중하는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이렇듯 대한민국 민주주의 정치 역사에서 '진짜' 보수 정치인으로 통했던 故 정두언 전 의원의 급작스러운 사망 소식에 많은 국민들은 안타깝고 서글픈 마음에 정도언 전 의원의 페이스북과 트위터에 조의를 표하고 있다.

더불어 현재 보석으로 풀려나 가택연금중인 이명박 전 대통령이 17일 고(故) 정두언 전 새누리당(자유한국당의 전신) 의원 측에 "할 일이 많은 나이인데 안타깝다"는 조문 메시지를 보냈다.

이 전 대통령의 변호인인 강훈 전 청와대 법무비서관은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이날 오전 이 전 대통령과 통화해 빈소에 가는 이재오 전 의원에게 이 같은 메시지를 전달했다"고 밝혔다.

강 전 비서관은 "이 전 대통령이 '보석 조건 때문에 외출이 안 돼 직접 문상을 가지 못해 유감'이라는 말도 유족 측에 함께 전달해달라고 했다"고 했다.

이어 "이 전 대통령이 직접 문상가려면 법원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재판부가 재판으로 연락이 닿지 않는 상황"이라며 "문상 여부에 대한 의중은 이 전 대통령에게 직접 묻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법원은 지난 3월 이 전 대통령을 석방하면서 주거지를 제한하고 변호인과 직계 혈족 외에는 접견·통신을 금지했다. 이에 따라 최측근인 이 전 의원 등도 이 전 대통령과 직접 통화는 할 수 없다.

이 전 의원은 이날 오전 서울 신촌 세브란스 병원의 정 전 의원 빈소를 방문한 뒤 취재진과 만나 "(이 전 대통령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본인이 그렇게 그 영어의 몸이 되지 않았으면 한 번 만나려고 했는데 참으로 안타깝다'는 말씀을 전해주셨다"고 밝혔다.

이 전 의원은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이 전 대통령이 정 전 의원을 만나겠다는 이야기는 감옥에 가기 전에도 수시로 했다"며 "저를 비롯해 정 전 의원과 가까운 사람들은 우리와 가까웠던 점, 우리와 함께 일했던 점, 서로 힘을 모아서 대선을 치렀던 그런 점, 그런 점만 기억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한편,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17일 정두언 전 새누리당 의원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애도했다.

조 수석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정두언 전 의원님 별세. 사적으로 교유한 분은 아니지만, 그간의 정치 행보와 방송 발언 등을 보면서 저런 분과는 같이 손잡고 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고 언급했다.

이어 "깔끔한 성품의 보수 선배로 느껴졌다"며 "그리고 한국의 자칭 '보수'가 이 분 정도만 돼도 정치 발전이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나의 불민(不敏)함에 대해서 종종 따끔한 비판을 하셨지만, 사실을 왜곡하는 중상이나 할퀴고 후벼 파는 식의 비방이 아니어서 성찰의 기회로 삼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권력투쟁의 한복판에서 정상과 나락을 경험하면서 마음의 상처가 깊어지신 것 같다"며 "비극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과 평안을 빈다"고 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