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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벨’ 막은 ‘드레퓌스 사건’이란?…유대인의 억울한 간첩 혐의 벗기다

  • 한수지 기자
  • 승인 2019.05.19 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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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지 기자] 드레퓌스 사건의 내막이 궁금증을 모은다.

19일 방송된 KBS1 ‘골든벨’에서 49번으로 드레퓌스 사건에 대한 문제가 출제됐다. 이 문제에서 최후의 1인 학생은 아쉽게 정답을 맞추지 못해 골든벨을 울리지 못했다. 

드레퓌스 사건은 작가 에밀 졸라를 필두로 12년 만에 유대인 드레퓌스의 억울한 혐의를 벗겨낸 역사적 사건이다.

1894년 10월 참모본부에 근무하던 포병대위 A.드레퓌스가 독일대사관에 군사정보를 팔았다는 혐의로 체포되어 비공개 군법회의에 의해 종신유형의 판결을 받았다. 파리의 독일대사관에서 몰래 빼내온 정보 서류의 필적이 드레퓌스의 필적과 비슷하다는 것 이외에는 별다른 증거가 없었으나 그가 유대인이라는 점이 혐의를 짙게 했던 것이다. 

그 후 군부에서는 진범이 드레퓌스가 아닌 다른 사람이라는 확증을 얻었는데도 군 수뇌부는 진상 발표를 거부하고 사건을 은폐하려 했다. 드레퓌스의 결백을 믿어 재심(再審)을 요구해 오던 가족도 진상을 탐지하고, 1897년 11월 진범인 헝가리 태생의 에스테라지 소령을 고발했지만, 군부는 형식적인 심문과 재판을 거쳐 그를 무죄 석방했다. 

드레퓌스 사건 / 네이버
드레퓌스 사건 / 네이버

그러나 재판결과가 발표된 직후 소설가인 E.졸라가 공개한 ‘나는 고발한다(J'Accuse)’라는 제목의 논설로 사건은 재연되었다. 졸라는 드레퓌스에게 유죄판결을 내린 군부의 의혹을 신랄하게 공박하는 논설을 대통령에게 보내는 공개장 형식으로 1898년 1월 13일자 ‘오롤’지에 발표했다. 이를 계기로 사회여론이 비등하여 프랑스 전체가 ‘정의·진실·인권옹호’를 부르짖는 드레퓌스파 또는 재심파(再審派)와 ‘군의 명예와 국가 질서’를 내세우는 반(反)드레퓌스파 또는 반재심파로 분열됐다. 

전자는 자유주의적 지식인을 비롯하여 사회당·급진당이 가담하여 인권동맹을 조직했고, 후자는 국수주의파·교회·군부가 결집하여 프랑스 조국동맹을 결성했다. 마침내 이 사건은 한 개인의 석방문제라는 차원을 넘어 정치적 쟁점으로 확대되면서 제3공화정을 극도의 위기에 빠뜨렸다. 

1898년 여름 군부는 어떤 새로운 증거서류에 의거하여 드레퓌스의 유죄를 확언했으나, 그것이 날조로 판명되고, 체포된 증거서류 제출자는 자살함으로써 반(反)드레퓌스파에게 큰 타격을 주었다. 이에 정부도 재심을 결정했으며, 또 이때 반드레퓌스파에 대항하면서 공화정 옹호를 내세운 발데크 루소내각이 성립돼, 사태는 재심파에게 유리하게 돌아갔다. 

1899년 9월에 열린 재심 군법회의는 드레퓌스에게 재차 유죄를 선고했으나, 대통령의 특사로 석방됐다. 무죄 확인을 위한 법정 투쟁을 계속한 끝에 그는 1906년 최고재판소로부터 무죄판결을 받고 복직 후 승진도 했다. 자유주의적 재심파의 승리로 끝난 이 사건은 프랑스 공화정의 기반을 다지고, 좌파 세력의 결속을 촉진하는 계기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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