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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한인섭 교수 "유시민 자술서는 전두환 군부의 고문 증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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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톱스타뉴스 김명수 기자) 심재철 의원과 서울대 77학번 동기인 한인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유시민-심재철 논란에 대해 입장을 밝혔다.

한인섭 교수는 페이스북에 [유시민, 심재철, 1980] 제목의 글을 게시했다.

한인섭 교수는 게시글에서 당시 전두환 군부에 의한 정치인과 학생들에 대한 고문과 불법 구금이 어마어마했다고 밝혔다.

한인섭 교수 / 페이스북
한인섭 교수 / 페이스북

당시의 자술서는 고문과 강압에 의한 것으로 법정증거에서도 배척되는 것이라며 전혀 자발성이 없는 것이라고 밝혀, 심재철 의원이 공개한 합수부 진술서가 무가치한 것이라고 간접적으로 반대 의사를 표한 셈이다.

특히 당시의 학생들과 정치인 및 재야 운동가들의 동향은 이미 전두환 군부의 정보망에 다 있던 것이라며 밀고라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된다고 주장했다.

한인섭 교수는 당시의 조직사건들이 그렇듯 군부가 짜 놓은 프레임에 끼워 맞추는 수사 방식이었을 뿐이며, 이미 민주화운동에 대한 재심 과정에서 당시 사건들로 인해 구속되고 유죄판결을 받았던 사람들은 무죄 판결로 바뀌었고, 고문조작을 자행한 정권은 내란죄로 단죄되었다고 밝혔다.

특히 자술서의 내용은 고문의 심각성을 재는 바로미터라며, 고초/고문의 정황증거를 밀고자라는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고 했다.

당시의 진술서는 양심에 반해 강제로 쓴 글이며 이를 30년뒤에 공격에 이용한다는 것도 말이 안된다는 것이다.

앞서 심재철 의원은 1980년 서울의 봄 당시 유시민 이사장이 합동수사본부에서 조사를 받으며 쓴 진술서가 77명의 민주화운동 인사를 겨눈 칼이 됐다고 비판했고, 유시민 이사장은 비밀조직 구성원은 모두 지켰다고 반박하는 등 두 사람은 공방을 이어가고 있다.

한인섭 교수의 글
한인섭 교수의 글

한인섭 교수가 게시한 글 전문

[유시민, 심재철, 1980]
전두환이 권력장악의 완성수순으로 5.17비상계엄 확대하고, 예비검속하여 재야, 정치, 학생들을 엄청 잡아갔고, 어마어마한 고문과 장기불법구금을 자행했다. 그때 조서도 작성하고, 자술서도 쓰게 한다. 말이 자술서이지, 강제타술서와 실질적으로 같다고 평가한다. 그래서 민주화된뒤에, 그때 자술서는 뭐라 썼던 법정증거로 배척된다. 고문과 강압에 의해 쓴 것이므로.
그런데, 그때 그 자술서에 뭘 담았느냐, 혹 동료를 고자질한게 아니냐고 뜬금없이 논란되고, 옆에서 불불이는 사람도 있다. 정리한다.

1. 그 자술서는 강제타술서임. 자발성 전혀 없음.
2. 어떻게 썼던 당시 학생, 정치, 재야운동의 동향은 전두환 군부의 정보망에 이미 다 들어 있었음. 
3. 그 자술서대로 사건윤곽 잡은 게 아니고, 첨부터 군부가 짠 프레임에 억지끼워 맞추는 것이었음. 유. 심이 뭐라 주장하든 상관없음. 신군부집권에 가장 유리한 프레임대로.
4. 민주화이후 재심과정에서, 1980 서울의봄, 5.17, 5.18과 관련된 모든 구속.유죄건은 무죄판결로 바뀌었음. 그때 고문정권은 내란죄로 단죄된 것이고.
5. 그러니 거기서 뭘 썼던, 그런 것 갖고 상대 흠집내기나 비난할 게 전혀 못됨.

마지막으로 남는 건, 그때 한글자도 쓰지 않고 버텨야지, 동료 이름은 절대 쓰지 말아야지...그래야 투사이고, 민주화운동가라 할 수 있는게 아니냐는 그런 아쉬움의 찌꺼기 같은 것...그런데 그건 사람이 아니라 감각없는 좀비인간. 기계인간이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둘 다 극도의 폭력과 위축감 속에서 나름 최선을 다하려 애썼다고 본다. 몇십년뒤의 정치노선 갖고, 소급해서 그때 누가 잘못했니 하는 비난자료로 쓰지 말 일이고.

나는 독재시대 재판자료, 변론자료 많이 정리하고 책도 내고 했다. 자술서도 자주 들여다봤다. 그러면서 자술서에 타인에게 불리한 내용이 가득 들어 있으면, 그 사람도 별수 없네, 이렇게 독해하지 않는다. 그 분이 얼마나 고초에 시달렸으면, 안쓰고 견딜 수 없었구나. 이 고문한 나쁜 놈들...이렇게 판독하면서, 그때 그의 고통을 같이 느껴보려 애쓴다. 자술서의 내용은 고문의 심각성을 재는 바로미터다. 유, 심의 강제타술서에 뭔가 마뜩잖은 몇 줄을 찾아낸다 해도, 그건 고초/고문의 정황증거이지, 그들이 밀고자라는 증거는 될 수 없다.

그리고, 그 자술서 다 공개해서 대중에게 판단받으라는 말도 한다. 30년전의 타술서를, 당시의 공포스런 수사환경도 잘 모르면서, 사건 맥락도 모르면서, 정치공격용으로만 악용될 그 자료를 호기심의 먹이로 줄 수는 없는 것이다. 양심에 반해 강제로 쓴 글로 당시 피해를 봤는데, 다시 30년뒤 반양심분자로 공격하기 위해 그자료를 공개하라고? 이중의 참혹함이요, 안될 말이다.

난 1980년 때 대학4학년이었고, 대학신문 기자였으므로, 유/심의 활동을 일상적으로 볼 수 있었다. 둘 다 훌륭했고, 멋있었고, 닥쳐올 고난의 불안 속에서도 각오하고 임한 학생리더였다. 1980.5.17 이전의 그들의 행적은 존중받아 마땅하다. 그리고, 이후 수사.법정에서의 태도에 대해서는 그 고초에 대해 함께하지 못했음에 미안하고, 그리고 이후의 정치행적은 각자 판단받을 대목이다.

요컨대, 1980년 정보부,보안사에서 쓴 강제타술서는 개개인의 인간됨 여부를 평가할 자료 자체가 될수도 없는 것이고, 타술서를 강제한 군부집단들이 얼마나 비인간적이고 참혹한 인권유린자였음을 확인하는 자료로 정리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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