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uantcast

[이슈종합] 고문과 조작으로 한맺힌 세월을 보낸 故김홍일 전 의원 영면…발인은 23일

  • 김명수 기자
  • 승인 2019.04.22 10:58
  • 댓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명수 기자] 故김대중 전 대통령의 장남으로 알려진 故김홍일 의원은 뇌물을 수수했다고 의원직을 상실하기까지 했고, 많은 이들은 뇌물을 받은 김대중의 아들 정도로 기억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뇌물수수 자체가 조작된 것이라는 주장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고(故) 김홍일 전 의원 빈소 / 연합뉴스
고(故) 김홍일 전 의원 빈소 / 연합뉴스

박지원 의원이 다시 한번 그 상세한 내막을 공개했다.

박지원 의원은 오늘 아침 '김어준의 뉴스공장'과의 전화통화를 통해 "나라종금 사건에 대해서 故 김대중 대통령님이 엄청나게 한탄을 하셨습니다. 사실 저도 그때 서울구치소에 함께 있었던 분인데, 故 김홍일 의원의 대학 선배이고, 고향 선배인 최측근이 계셨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검찰에게 회유를 받고 허위진술을 해 주고"라며 "故 김홍일 의원에게 나라종금으로부터 돈을 받아서 서울신문사 뒤에 있는 서울호텔 로비에서 현금 3,000만 원, 그때는 5만 원 권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3,000만 원을 든 백을 故 김홍일 의원에게 주었더니 들고 차에 탔다' 이렇게 자기가 목격했다고 진술을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집행유예 3년을 받아서 의원직을 상실했는데요"라고 밝혔다.

이어 "사실 故 김홍일 의원은 그때 당시 주위에 모든 분들이 압니다. 혼자 일어서지도 못하고, 혼자 걷지도 못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현금 3,000만 원이 든 백을 들고 걸어갔단 말이냐? 그래서 故 김대중 대통령께서는 오죽하면 저에게 하신 말씀이 '나는 우리 홍일이가 유죄판결을 받고 의원직을 상실하는 한이 있더라도 3,000만 원 백을 들고 걸어가는 모습을 한 번 보았으면 원이 없겠다' 하고 한탄을 하셨습니다. 그러시면서 '사법부가 어떻게 자기들이 눈으로 볼 수 있는 홍일이의 상태를 보고 이것을 유죄로 인정할 수 있느냐?' 하고 엄청난 한탄을 하셨습니다"라며 허위 증언 자체가 성립될 수 없는 증언이었음을 밝혔다.

김홍일 전 의원에게 3천만원 현금을 주었다던 사람은 누구일까?

당시 기록을 보면 김홍일 전 의원은 99년부터 2001년까지 안상태 전 나라종금 사장에게 1억5천만원을 받은 혐의를 받고 대법에서 유죄가 확정됐다.

2003년 6월 2일자 경향신문 '막바지 치닫는 나라종금 수사' 보도에 따르면 "김의원은 검찰 조사에서 자신의 혐의 사실을 전면 부인했지만 검찰은 사법처리에 자신감을 내비치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김의원과 안전사장의 연결고리 역할을 하는) 정학모 전 LG스포츠 사장의 진술 태도에 상당한 변화가 있었다”며 김의원의 혐의사실을 상당부분 확인했음을 시사했다."라는 대목에서 정학모 전 사장이 그런 증언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부고를 살펴보면 정학모 전 lg스포츠 사장은 2009년 11월 2일 별세했다.

결국 당시의 진실을 알려줄 수 있는 유일한 증언자는 이미 사망해 진실은 역사 속으로 묻히게 됐다.

고(故) 김홍일 전 의원 빈소 / 연합뉴스
고(故) 김홍일 전 의원 빈소 / 연합뉴스

박지원 의원은 '김현정의 뉴스쇼'에서도 다시 이 일화를 언급했다.

김현정 앵커는 고문의 후유증으로 병마와 싸우던 故 김홍일 의원의 1980년 고문 당시의 회고록을 읽었다.

“끌려온 첫날 수사관이 들어오더니 다짜고짜 두들겨팼다. 하루를 한마디 말도 없이 구타만 했다. ‘니가 김대중의 아들이냐? 너는 절대로 여기서 살아나가지 못해. 어차피 송장으로 나갈 테니까 피차 힘들게 하지 말고 묻는 말에 답해.’ 내 이름은 빨갱이 새끼였다. 연청 사무실 아르바이트 여학생이 쓴 메모를 간첩이 쓰는 난수표로 인정하라고 했다. 사정없이 구타하지만 급소는 교묘하게 피했다. 까무러치기를 여러 번. 차라리 죽이라고 소리쳤다. ‘죽여달라고? 허허, 이놈이. 여기서는 죽는 게 가장 호강하는 거야. 너 좋으라고 죽여줘?’ 나는 혹여 고문에 못 이겨 허위 자백을 할까 두려워 수사관 눈을 피해 자살을 기도했다. 책상에 올라가서 머리를 시멘트 바닥으로 처박고 뛰어내렸다. 이때 목을 다쳤다.”

故 김홍일 의원은 이 고문의 후유증으로 얻은 파킨슨병으로 수년을 앓다가 결국 별세했다.

故 김홍일 의원은 1971년에는 서울대 내란 음모 사건의 배후로 지목되 고문을 받고 또다시 80년에 김대중 내란 음모 사건으로 고문을 받아 고문 후유증이 상당했다.

박지원 의원은 "고문 후유증으로 거의 30여 년 동안 활동이 제약되고 또 마지막 15년간에는 거의 움직이지 못하는 그런 불행한 생활을 하시다가 가셨습니다"라며 김홍일 의원의 한맺힌 삶을 전했다. 

박지원 의원은 김홍일 의원에 대해 "김홍일 의원은 한마디로 말씀드리면 ‘김대중 대통령의 인생 동반자이자 정치적 동지’였습니다. 암울한 시기에 김대중 대통령님께서 연금 등 여러 가지 박해를 받았기 때문에 또 주위분들이 전부 끌려가서 고초를 당했기 때문에 유일하게 출입하고 만날 수 있는 분이 김홍일 의원이어서 아무래도 모든 것을 김홍일 의원과 상의하지 않았나"라며 김홍일 의원에 대해 평했다.

이어 김대중 대통령이 김홍일 의원에 대해 "내가 왜 정치를 했던가, 내가 왜 대통령이 되었는가. 결국 나는 성공했다고 볼 수 있겠지만 우리 아들들, 특히 우리 큰아들 홍일이를 보면 가슴이 미어져서 살 수가 없다"라고 말했다며 미안해했었다는 소식을 전했다.

특히 김대중 대통령 집권기간 김홍일 의원은 거동과 언어가 이미 많이 불편한 상태였음을 전했다.

박지원 의원은 "김대중 대통령이 대통령 당선돼서 집권 5년간 김홍일 의원은 거의 혼자서 일어나거나 또는 걷는. 또 언어가 굉장히 불편했습니다"라며 김홍일 의원이 고문 후유증으로 이미 그 당시에 무척 힘든 상태였음을 전했다.

특히 김대중 대통령이 일요일에 점심을 가족들하고 하는데 김홍일 의원이 목포 지역구에 대해서나 자기 정치적 전망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도 김대중 대통령이 알아듣기 어려울만큼 이미 말하는 것에도 많은 장애가 있었다는 소식을 전했다.

김홍일 전 의원의 장지는 어떻게 될까?

김 전 의원측 관계자는 21일 "유가족이 상의해 김 전 의원 장례를 '4일 가족장'으로 치르기로 했다"며 "김 전 의원은 광주 5·18 국립묘지에 모실 것"이라고 밝혔다.

김 전 의원의 입관식은 22일 치러진다. 23일 오전 6시에는 함세웅 신부가 집전하는 장례미사를 봉헌한 뒤 7시 발인식을 한다. 장지는 광주 5·18국립묘지다.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으로 모진 고문을 당한 김 전 의원은 3차 5·18 민주화운동 관련자 보상심의위원회에서 5·18 관련자로 인정 받았다.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