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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ull리뷰] ‘가려진 시간’ 친구가 며칠만에 어른이 되어 돌아왔다 (종합)

  • 채희지 기자
  • 승인 2019.03.25 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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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희지 기자] “너만 나를 믿어주면 돼“

(영화 내용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15회를 거치는 동안 단 세 편만이 대상의 영광을 누린 미쟝센 단편영화제에서 지난 2012년, 단편작 ‘숲’으로 10인의 심사위원 만장일치 대상을 수상하며 주목받은 엄태화 감독.

이듬해 인터넷 공간과 현실을 오가며 이 시대 청춘들의 이야기를 담아낸 영화 잉투기로 “한국 독립영화 역사의 또 한 챕터가 시작되었다”(박찬욱 감독), “어떻게 다르게 표현할지에 대한 고민이 묻어있는 작품”(최동훈 감독) 등 호평과 찬사를 받으며 평단과 관객 모두를 사로잡았다.

판타지적 장르와 소재를 통해 기존 한국영화에서 쉽게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시도에 나선 엄태화 감독은 두 인물 간의 특별한 교감을 섬세한 감성으로 그려내며 공감대를 더했다.

누구도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세계와 이야기지만 충분한 현실성을 불어넣은 묘사, 여기에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 남자를 알아주는 한 소녀의 순수한 믿음이 주는 아련하고 따뜻한 정서는 엄태화 감독 특유의 섬세한 연출이 더해져 보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탁월한 연출력을 자랑하며 기대되는 신인 감독으로 이름을 알린 엄태화 감독은 2016년 상업 영화 데뷔작 ‘가려진시간‘으로 관객을 찾았다.

가려진 시간은 화노도에서 일어난 의문의 실종사건 후 며칠 만에 어른이 되어 나타난 ‘성민’(강동원)과 유일하게 그를 믿어준 소녀 ‘수린’(신은수), 세상은 몰랐던 그 둘만의 특별한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친구들과 산으로 놀러갔다가 홀로 돌아온 소녀 ‘수린’이 어렵게 꺼낸 이야기로 시작하는 이 영화는 논리적으로 이해되거나 이성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사건 앞에서 진실을 외면한 세상과 그와는 반대로 서로에 대한 믿음을 끝까지 지켰던 ‘성민’과 ‘수린’의 이야기를 판타지적 설정과 현실적 전개를 넘나드는 색다른 방식으로 풀어낸다.

낯선 환경 속 외로운 소녀와 그녀에게 먼저 다가온 소년, 두 사람이 서로에게 마음을 열며 자기들만의 방식으로 교감하는 과정은 풋풋하고 꾸밈없던 모두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하며 영화의 감성을 아련하게 채운다.

하지만 산속에서 이상한 일을 경험하게 된 후 홀로 깨어나 혼란스런 수린 앞에 불과 며칠 만에 어른이 된 성민이 나타나며 극은 새로운 국면으로 나아간다.

겉모습은 전혀 다르지만 그 안에 담긴 표정, 감정, 마음을 느끼며 그가 성민임을 확신하는 수린의 진심과 그의 이야기를 들으려조차 하지 않는 어른들의 의심, 이들의 엇갈린 시선은 스토리의 긴장을 만드는 동시에 ‘믿음’과 ‘관계’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깊은 감정의 파동을 만든다.

영화 초반에 ‘상담기록을 바탕으로 만들어졌습니다’라는 문구가 뜬다. 이 때문에 많은 관객들이 이 영화는 정신병을 앓고 있는 사람의 이야기를 영화를 만든거구나 라고 느껴지지만 사실은 픽션으로 ‘가려진 시간’이라는 영화속에 나오는 책도 실제로 존재하는 책이 아니다.

남들과 다르게 흐르는 ‘가려진 시간’에 갇혔던 ‘성민’의 외로움과 두려움, 이를 보듬어준 단 한 사람 ‘수린’의 이야기를 섬세하게 그린 가려진 시간은 믿음보다는 의심에 익숙한 세상을 살아가는 모두를 위한 따뜻한 위로가 되어 가을 극장가에 잊을 수 없는 여운과 감동을 전할 것이다.

성민 캐릭터를 맡은 강동원은 홀로 어른이 된 인물의 미묘한 특징과 내면을 섬세하게 포착해냈다. ‘가려진 시간’을 지나 다시 세상으로 돌아왔을 때의 낯섦과 두려움, 그리고 자신을 믿어주고 보살펴주는 수린을 통해 조금씩 웃음을 되찾는 치유의 과정, 용의자로 의심받고 쫓기는 위태로운 심경까지, 강동원은 순간마다 변화하는 성민의 다양한 감정과 심리를 소년 같은 눈망울과 표정으로 담아내며 인물에 대한 공감대와 감정이입의 폭을 넓힌다.

이 작품에서 성민을 믿어준 유일한 인물인 수린 역은 300:1의 오디션 경쟁률을 뚫고 발탁된 신인 신은수가 맡아 풍부한 감성과 신비로운 매력으로 완벽히 소화해냈다.

엄태화 감독은 “오디션 때 일부러 본인을 어필하려고 하지 않는 모습이 좋아보였고, 귀여운 모습 안에 대범함이 숨겨져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또한 외로움의 정서가 담긴 수린의 이미지에 잘 어울렸고, 단순히 예쁜 외모가 아닌 얼굴 자체에 이야기가 담겨있었다. 촬영하는 매 순간 놀라웠고 순간 집중력이 대단한 배우이다”라고 전했다.

‘사도’에서 세손 역으로 주목받은 이효제가 가려진 시간에서도 강동원의 어린 시절을 연기하며 두 번째 인연을 이어간다. 외톨이인 수린에게 먼저 다가가 특별한 교감을 나누는 어린 성민 역의 이효제는 밝은 매력과 탄탄한 연기력으로 깊은 인상을 남길 것이다. 또한 아저씨, 카트 드라마 미생에 이르기까지 남다른 악역 연기로 강렬한 존재감을 선보여온 배우 김희원이 가려진 시간에서 겉으로는 무뚝뚝하지만 누구보다 수린을 아끼는 의붓아버지 도균 역을 맡아 새로운 연기 변신을 선보인다.

그리고 영화, 드라마, 연극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작품으로 연기 내공을 다져온 배우 권해효가 형사 백기 역으로 분했으며, 밀정에서 일본 경찰 하시모토 역으로 화제가 된 엄태구가 성민의 친구 태식 역을 맡아 숲, 잉투기에 이어 다시금 친형인 엄태화 감독과 호흡을 맞춘다.

<가려진 시간>은 새롭고 낯선 세계와 익숙하고 현실적인 공간의 조화를 위해 로케이션 선정부터 미술, 소품에 이르기까지 많은 신경을 기울였다. 극 중 가장 중요한 배경이 되는 가상의 섬 ‘화노도’는 읍, 면의 소박한 모습부터 섬 중심부에 위치한 번화가 도심, 그리고 우거진 수풀과 나무로 둘러싸인 신비로운 숲까지, 전형적인 섬의 이미지에서 벗어난 다양한 공간들을 담아낸다. 특히 그중에서도 주요한 공간인 숲에서의 촬영은 극 중 늦여름 설정이지만 실제 촬영은 한겨울에 진행해야 했기 때문에 상록활엽수림이 있는 완도 수목원에서 이뤄졌다. 영하 18도에 이르는 혹한의 날씨 속에서도 반팔과 반바지 등 얇은 의상을 입은 채 촬영에 임한 배우들의 노력과 수고가 더해져 푸른 여름의 계절과 정서를 고스란히 담아낼 수 있었다.

네이버 영화 제공
네이버 영화 제공


한편 성민과 수린이 서로 교감하고 마음을 나누는 공간과 소품들은 극의 주요한 오브제(Objet)이기 때문에 가장 공들여 제작과 준비에 임했다.

특히 둘만의 아지트인 폐가는 실제 있을 법한 느낌을 주기 위해 ‘외국에 유학갔던 누군가가 다시 고향에 돌아와 조각을 위한 공방으로 썼던 공간’이라는 전사(前事)를 바탕으로 세트를 제작, 공간에서도 스토리가 묻어나는 특별한 볼거리를 만들어냈다.

또한 성민과 수린의 강한 유대감을 이어주는 장치인 비밀 암호 노트는 애니메이션 윙크토끼를 탄생시킨 홍학순 작가가 참여해 기호와 그림을 오가는 가려진 시간만의 상징을 완성해냈다. 여기에 성민이 경험하게 되는 가려진 시간의 묘사는 관객들에게 새로운 여운과 재미를 선사할 것으로 기대된다.

판타지장르의 영화 ‘가려진 시간’은 2016년에 개봉해 누적관객수 511,369 명 (2019.03.24,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을 기록, 관람객 평점 8.24, 기자·평론가 평점 6.68, 네티즌 평점 8.45점을 기록했다.

‘가려진 시간’ 속 세계는 바람의 흐름과 나뭇잎 하나의 움직임, 그리고 대규모로 동원된 보조출연자의 행동 하나까지 신경을 기울인 끝에, 현실에 존재하지 않지만 성민의 외로움이 담긴 특유의 공간으로 그려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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